옥수동성당 게시판

영만이의 해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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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만 [BLUEYES] 쪽지 캡슐

1999-05-14 ㅣ No.255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가 재작년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마땅한 아르바이트가 없어 비가 오는 날 우산 파는 일을 했었다.

 

다행히 그 해 여름은 비가 짧고 굵게 자주 와서 장사가 괜찮았다.

 

여름동안 잘만하면 다음 학기 등록금은 다 못벌어도 비슷하게까지는 만들수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7월 초, 아무역 앞에서 우산을 팔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도

 

평범한 그녀가 나타났다.

 

"우산 하나 주세요"

 

"예...2500원 입니다."

 

"그렇게 비싸요. 저쪽은 2000원이라고 그러던데"

 

그 말은 뻥이다.

 

내가 알기로 자판대에서 파는 우산은 3000원이었다.

 

아마 가격을 깎으려는 너무 상투적인 방법이다.

 

"그럼 저쪽가서 사세요."

 

"네? 무슨 우산장사가 그래요."

 

"아니 싼데 가서 사시라구요."

 

"별....흥"

 

나는 그녀가 자판대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판대에서 뭐라고 얘기하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자판대 앞에 우산 놓는 통이 비어있었다.

 

아예 우산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자존심때문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시 오지 않았다.

 

버스정류소까지 걸어가기는 너무 멀었고 택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점점 더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역 안이라고는 했지만 그녀의 옷은 점점 젖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2000원에 드릴께요."

 

"예? 누가 우산 산데요."

 

"그럼 마세요."

 

"아니요....그게 아니라......하나 주세요."

 

그녀는 나에게 정말로 2000원만 달랑주고 빗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때가 우산속의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다.

 

이틀 후 또 비가 억수로 왔다.

 

잽사게 우산 50개를 챙기고 아무역으로 달려갔다.

 

퇴근시간이라 수월치않게 짧은 시간에 다 팔 수 있었다.

 

우산을 미처 가져오지 못한 사람들은 전화나 핸드폰으로 가족들을 부르는 것

 

같았다.

 

가끔씩 남여 둘이서 우산을 같이 쓰고 가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아무리 우산이 50개라도 무슨 소용인가.

 

같이 쓰고 갈 애인 하나 없는 나는 정말 우산장수인가보다.

 

"우산 하나 주세요."

 

"네?"

 

이틀전 상투적인 방법을 쓰던 그녀였다.

 

"우산이요?"

 

"옆에 하나 있잖아요."

 

그거는 내가 집에 쓰고 갈 우산이었다.

 

갈등의 시간이었다.

 

그녀의 집에는 아무도 없나?

 

아니면 전화 걸 돈도 없나? 아니지 우산 살 돈은 있는데 전화 걸 돈이 없을리가

 

없다.

 

이틀전보다 비는 더 심하게 오고 있었다.

 

"그냥 가지세요."

 

"어머, 내가 거지예요. 여기 2500원이요."

 

그녀는 내게 황급히 돈을 주고 우산을 가지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자판대에 가서 일간스포츠를 샀다.

 

비가 그칠 때까지 보려고 하는게 아니라 한장으로 삼각모자를 만들어 머리에 쓰고

 

한장은 가운데 구멍을 뚫어 머리를 넣어서 몸에 걸쳤다.

 

나머지는 손에 들어 만세를 부르는 포즈를 취했다.

 

버스정류소를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거기에는 우산속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이 우산 아저씨거였어요. 미안해요. 파는 건 줄 알았어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너무 오래 써서 버릴거였으니깐..."

 

"예? 화나셨어요?"

 

"뭐....남자가 그 딴 일로 화까지...하...하....하....(졸라 열받네)"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 우산을 같이 쓰려다 버스가 와 나를 힐끔 한 번 쳐다

 

보더니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그 때가 우산속의 그녀를 두번째 보았을 때다.

 

또 이틀 후 비가 왔다.

 

이번에도 그녀가 우산을 사러 나타났다.

 

이번에는 둘이 서서 같이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동안 비는 거의 이틀 건너 왔고 그 때마다 그녀는 우산을 사러 왔고, 그 때마다

 

우리의 대화시간은 늘어났다.

 

나중에는 우산을 같이 팔기까지도 하였다.

 

그녀는 꼭 우산을 3000원에 팔았다. 그래도 이상하게도 내가 팔 때보다 더 빨리

 

팔렸다.

 

방학이 끝날무렵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 희선씨. 이제 저 그만 나와요."

 

"예?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아니라 이제 학교로 돌아가야해요."

 

"학생이셨어요? 저 몰랐어요."

 

"제가 얘기 안 했나요?"

 

그리고 보니 우리 둘은 너무 상대편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회사 다닌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내가 당연히 우산장수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게 방학동안에 마지막 만남이었다.

 

일주일후 학교에서 첫 수업을 받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희선씨가 곧 나타나겠구나. 헉 아니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여기는 학교지.'

 

비는 그치지를 않았다.

 

'그 정신빠진 여자가 우산을 또 잊어먹었을 거고 어떻하지'

 

'이런 비가 점점 더 쏟아지네.'

 

'역에 올 때가 되었는데'

 

나는 더 이상 교실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우산을 들고 뛰어 나갔다.

 

"야 경호야 그거 내 우산이야 임마"

 

상현이의 목소리를 뒤로 남긴체 빗속을 뚫고 나갔다.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녀가 역문앞 근처에 조용히 서 있는것 빼고는........

 

우리는 6개월 후 학생과 회사원의 신분으로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안계시고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다른 거는 다 이해해도 부모님중 한 분이라도 안 계시는 걸 용납치

 

않았다.

 

그녀를 부모님에게 소개시켜주던 날, 부모님은 그녀를 냉대하셨고 나는 그 날

 

술에 모든 것을 빼았겼다.

 

그녀는 나를 부축하여 그녀 방으로 나를 안내햇고 나는 거기서 술이 확 깨고

 

말았다.

 

그녀의 작은 부엌에는 나에게 지금까지 샀던 우산이 쭉 서 있었다.

 

각각의 우산에는 출생신고서가 붙어있었다.

 

첫번째 우산에는 '7월 1일샐', 두번째 우산에는 '7월 3일생', 세번째 우산에는

 

'7월 7일생', 네번째 우산에는..........

 

그 우산들은 우리의 사랑이 낳은 애기들이었다.

 

그 후 나의 결심은 보모님을 설득시켰고 지금은 둘이서 비가 오는 날이며 우리의

 

애기들을 돌아가면서 같이 데리고 나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의 애기들은 다락방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해요? 햇볕 쨍쨍할 때 다락에 있는 우산 다 갖다 버려요."

 

"그래도.....그 우산들은..."

 

"빨리 갖다 못버려요. 다 녹슬고 냄새나잖아요."

 

여자는 결혼하면 추억을 빨리 잊는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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