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보편 교회에서의 순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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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odocool] 쪽지 캡슐

2008-08-26 ㅣ No.8020

 



교회사를 읽어 보면 가톨릭 신자로 남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에도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 제국주의와의 결탁이라는 추악한 모습입니다.


그 시작은 교회 내부에서 대주교의 명에 대한 사제의 순명이라는 문제로부터 발생합니다.


1909년 토마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형하자 당시의 서울대교구의 뮈텔 대주교는 안중근이 한국교구청의 신자임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서 서울교구 빌렘(Wilhelm 한국명: 홍석구) 신부가 면회하는 것조차 금하는 명을 내립니다. 안중근 의사를 “암살에 의한 살인자”로 규정하여 오늘날 “테러리스트”로 단정하는 뉴라이트와 똑같은 시각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인 대주교는 교회의 보호와 천주교 선교가 중요하다는 미명하에 일본 당국이 성직자의 접촉을 막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굴복하여 사제로서의 본분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빌렘 신부가 “침묵 속에서 아름다운 순명”을 거부하고 안중근 의사를 만나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하였습니다. 이에 뮈텔 대주교는 빌렘 신부가 순명을 거부하고 정치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2달간 성무(聖務)정지 처분을 내리고 결국에는 빌렘신부를 본국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장에는 한국천주교 명의로 화환이보내지고 대주교와 신부들이 있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형장에는 단 한명의 신부도 종부성사에 참석할 수는 실로 기막힌 상황이 벌어집니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프랑스인 한국천주교회의 교구장들은 3·1운동에 가톨릭이 참여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가톨릭계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신학생들이 운동에 가담하자 한국천주교회는 폭행·협박을 함으로써 한 지방의 공공질서(公共秩序)를 문란하게 하는 불법행위에 가담하였다고 이유로 주동 학생들을 퇴학시키고, 징계 조처로 휴교령까지 내리는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의 해방 전까지 한국천주교와 일본 제국주의의 환상적인 동거에 대해서는 제 손이 더렵혀질 것 같아서 더 써내려가지 않겠습니다.

 

 




역사는 다시 되풀이 되나 봅니다.


2008년 우리 국민은 자신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위해 촛불을 들었고 이에 대해 정부는 불법적인 강경진압을 하였습니다.


이는 한승수 국무총리도 “비교적 객관적”이라고 평가한 국제앰네스티 무이코 조사관의 보고서의 결론을 보아도 잘 나타납니다.


“이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강력하지만 전반적으로 평화적으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자신의 정부의 과도한 무력행사였고, 이에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과도한 무력을 행사한 경찰관의 책임을 물어서 법에 의한 통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고 기소된 시위대들에게 적법한 절차를 제공해야한다.”


평화시위를 폭력시위로 매도, 시위 자체의 원천봉쇄, 공권력에 대한 강경진압, 인신구속에서의 적법절차의 위배 등 90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3. 1. 운동과 촛불시위의 결과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면에서 완전히 일치합니다.


이러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에 대하여 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열어 시민들을 위로하고 평화적인 시위의 모범을 보였음에도 금번 인사발령도 서울대교구 전종훈 신부님이 통상적인 관례와 달리 안식년에 처해 졌습니다.


교구장의 전권사항인 인사권에 행사에 대하여 부당한 인사권의 남용이라거나 니가가라 L.A.식의 조폭적 보복행위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이러한 조치는 일본 제국주의와 타협한 오욕으로 점철된 가톨릭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합니다.


일제시대에도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안중근 의사에 대한 미사를 정치행위로, 3.1 운동을 폭력, 불법시위라고 매도하던 것과 똑같은 논리와 가치관을 오늘날 우리 가톨릭의 장상들이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이것은 일찍이 예수님이 “이스라엘 왕이라고 주장했다.”는 거짓과 위증으로 십자가에 매단 대사제와 바리사이들의 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추악한 논리입니다.


따지고 보면 김수환 추기경은 군사독재와 정면으로 싸울 용기는 부족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을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용인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정도의 지혜는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언론장악 시도, 경찰의 무차별 인권탄압, 사법기관의 자의적인 기소, 국제 앰네스티의 권고 무시 등의 사실로 볼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언제든지 권위적인 독재체제로 이행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가톨릭 신도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일까요?


교황 바오로 2세는 "역사적 과오에는 기독교인들의 분열, 관용하지 못하는 태도, 폭력, 인간 기본권 말살에 대한 무관심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고 말하였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모든 가톨릭인이 신앙과 삶의 분리를 극복하고 교회와 교인의 세속화와 모든 왜곡된 자유와 행복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오늘 이명박 정권의 인권침해와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이 가톨릭 신자로서 의무를 저버린 것이 아닌지에 대하여 곰곰이 반성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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