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연중 제16주일 강론(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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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heonheon] 쪽지 캡슐

2000-07-22 ㅣ No.1643

       

      1독서 :  예레미아서 23,1~6

      2독서 :  에페소서  2,13~18

      복   음  :   마르코  6,30~34

       

       

제가 어떤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있을 때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간암에 걸렸는데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의 말로는 길어야 할 달 정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봉사자 자매님과 같이 할머니께 병자성사를 주러 갔습니다.    병원에 가서 병자성사를 주고 난 후에 할머니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보니까 정말 얼마 못 사시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찾아오게 해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무슨 말을 해드려야 좋을지 몰라서 할머니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함께 갔던 봉사자 자매는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이런 저런 위로의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계속 할머니의 수발을 드신 할아버지께서 음료수라도 하나 드시라고 저에게 권했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자 봉사자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 할머니, 할아버지가 불쌍하시죠? "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잔잔하게 들려오는 그 할머니의 말씀이 이랬습니다.  

 " 다 불쌍하지.."

" 다 불쌍하지.." 하는 이 말씀 속에 " " 라는 말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만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여태껏 할머니가 살아오시면서 사람들을 겪어보니까 사람들이 다 불쌍하게 여겨지더라는 것인지 더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그 말씀에는 묘한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 다 불쌍하지.... "

 

  저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고해성사를 하면서 그 사람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느껴지는 게, 알고 보면 다 불쌍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겉만 보면 알 수 없지만 속 깊은 사정을 듣고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된 고뇌와 아픔을 알고 나면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신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딘가 아픈 사람들, 영혼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기에 불쌍하게도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이승에서 완전한 만족과 기쁨,  그리고 평화를 만끽하면서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 그냥 행복하고 재미나게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실패와 좌절, 피할 수 없는 무수한 고통들......

세상살이가 참 만만치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은거라고 남에게 해꼬지 안하고 이왕이면 좀 잘해 주고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 들으며 살아가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그나마 내가 가진 얼마 안되는 것조차 다 빼앗길 것 같아서, 남들은 어떻게 되건 말건 내 살림만이라도 악착같이 챙기면서 살아가야 하는 신세입니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남들에게 죄도 짓고 몹쓸 짓도 하게 되는데, 정말 본의는 아닐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허겁지겁 살아야 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들 알고 보면 참 불쌍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미사 때마다 이런 기도를 바칩니다.  " 주님,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 주님의 자비가 절실히 필요한 불쌍하고 가난한 군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모처럼 사랑하는 사도들과 함께 한적한 곳에 가서 정담을 나누고 싶으셨지만 당신의 도우심을 간절히 청하는 군중들이 애처롭고 측은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뒤로 하시고 불쌍한 군중들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그런 대자대비하신 측은지심(側隱之心) 본받아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준다면 이 세상이 좀 더 밝아지고 살 만해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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