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밥 해먹기

인쇄

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8-07 ㅣ No.419

엄마가 지난 토요일에 이모님댁으로 가셨다. 삼주에 걸친 꽤 긴 시간을 비우시는 엄마는 아빠의 진지며 집안 단속이 걱정되시어 나와 동생에게 하시는 당부가 거의 세뇌수준이다. 큰언니 해산때며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불안하신가 보다. 그리고보니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반찬 걱정이다. 엄마가 김치며 밑반찬들을 챙겨 주셔서 큰염려는 없지만 찌개하나 새로운 반찬거리 하나가 언제나 큰 문제인 법이다. 오늘은 아직 계속되는 휴가의 여파로 조용한 틈에 아예 인터넷을 뒤져가며 메뉴들을 뽑아냈다. 식당에서 뭘 먹을까와는 다른 것이 오늘 쓴 재료가 남으면 다음날은 그것과 연계되는 메뉴를 생각해내야 하는 것이 문제이다. 어제 끓인 된장찌개에 쓰고 남은 두부 반모와 호박을 오늘은 부치고 내일 어묵국을 끓이기 위해 사는 무는 생선조릴 때에 냄비 바닥에 까는 식이다. 솜씨있는 동생과 혼자 살아본 막내가 거들어 주지만 사년간이나 엄마 밥을 더 먹어본 내가 아빠 입맛에 가까운 편이라 말하자면 주방장 노릇을 하며 심부름을 부탁해야 한다. 다이어리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둔 반찬거리를 보니 시작도 전에 마음만 급하고 매일 잔치집처럼 반찬을 해대면 엥겔계수가 턱없이 높아지고 엄마가 주신 생활비에 내 용돈을 보태야할 테니 걱정이다. 나 역시 잊고 지냈지만 여름에 불 앞에 서서 찌개며 끓이고 반찬하다 보면 땀이 솟는다. 이렇게 돈이며 입맛에 신경쓰며 하는 반찬을 앞에 두고 내 자식이 반찬 투정을 하면 어떤 기분이 될지 짐작이 간다. 그러니 제발 반찬투정 말고 잘 드시기 바란다.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때가 되면 코앞에 내밀어지는 모든 음식들을 말이다. 안그러면? 맞겠지... 나 같은 마누라나 엄마를 만난 불행한 누군가는 말이다. 오늘 저녁에 밥상을 물리고 나면 동생 꼬드겨서 큰 시장에 갈 생각으로 적어둔 메모지를 보니 벌써 어깨가 결리는듯 하다. 장바구니 잊으면 안되는데...

3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