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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떠나는 성지순례[2] 뽀르지웅쿨라,리보또르또,산다미아노,까르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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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5-09-26 ㅣ No.1903

7. 8월30일(화) 맑음. 뽀르지웅쿨라(Porziuncula,작은몫)에서 미사 봉헌,

리보또르또(Rivo Torto)오두막, 산다미아노(San Damiano), 까르첼리( Le Carceri )

 

 

천사들의 모후 복되신 동정마리아 성당.뽀르지웅쿨라(작은몫) 작은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지은 성당.

전대사축일:8월2일.(*뽀르지웅쿨라에서는 성지에 대한 예의와 보존으로 사진을 찍지 않음)

 

 

뽀르지웅쿨라.가까이에서 본 모습.(안에는 작은몫,뽀르지웅쿨라와 건너감 경당이 있다)

 

 

뽀르지웅쿨라에서 장미정원으로 가는 길에 프란치스코성인의 성상에서 사는 비둘기가 기둥위에 앉아있다.

 

 

백합을 들고 계신 성녀글라라의 성화의 진본이 뽀르지웅쿨라에 있었는데

옆에 성녀아네스로 보이는 분과 함께 계신 성화였다.

 

 

리보또르또성당: 리보또르또 움막을 보호하기 위하여 움막위에 지은 성당.

 

 

리보또르또 움막.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초기 형제들과 뽀르지웅쿨라로 옮기기전에 사셨던 움막.

 

 

리보또르또 움막안에 성프란치스코의 자리에 성상과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리보또르또 성당 안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상.(벽은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보았는지 새로 칠을 해 놓았다)

 

 

리보또르또 성당 바깥쪽에 있는 나병환자와 성프란치스코 상

(프란치스코성인은 여기에 있던 성녀막달레나 나병환자 진료소에서 환자들을 돌보셨다고 한다.)

 

 

산다이마노로 가는 길 표지판위에 성모자 성화가 있다.

 

 

산다미아노성당. 성녀 글라라께서 입회하여 선종할 때까지 42년간 봉쇄의 생활을 하셨던 곳이다.

 

 

산다미아노성당. 오른쪽 벽을 자세히 보면 덧붙여 지은 자리가 보인다.

 

 

산다미아노 성당에 있는 다미아노 십자가.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예수님께서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려"는 말씀을 하신 십자가 원본은

성녀글라라의 유해를 산타끼아라(성녀글라라)대성당으로 옮길 때 함께 옮겨갔다고 한다.

 

 

성녀글라라께서 쓰시던 가대. 가대위에는 성모자의 벽화가 그려져있다.

 

 

산다미아노 성당 창문에서 내려다본 아시시의 모습.

1240년 사라센 군대가 침입했을때 성녀께서 성체께 대한 굳은 신심으로

성체현시대를 들고 나가자 군대가 물러갔다고 한다.(성녀글라라는 성체현시대의 주보성인이시다)

 

 

산다미아노성당의 성체등을 놓았던 자리.

 

 

 

 

산다미아노 성당의 제대 위 천장화: 가운데 성모자, 왼쪽은 성프란치스코, 오른쪽은 성녀글라라.

 

 

산다미아노성당의 수도원 침실에 드나드는 문쪽으로 성녀글라라께서 계셨던 자리.

십자가와 화분으로 표시를 해놓았다. 너무 소박하고 검소한 곳이었다.

 

"42년의 수도생활 중 28년이란 세월을 병상에서 보냈으면서도
"저를 창조하신 주님, 찬미받으소서" 라고 자신을 창조하시어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으며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와도 같이 사랑해 주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오롯한 응답의 삶을 사셨으며,
공동침실 한쪽 문 옆에 글라라가 누워 있었던 자리는 글라라 성녀의 극도의 가난한 삶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던 생애를 말해 주고 있다.

 

글라라는 관상이란 더 많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임을 몸으로 가르쳐준다.
사실 관상이란 하느님을 맞대면하는 것이기에, 사랑이신 하느님을 맞대면하려면
사랑을 통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산다미아노 수도원의 아름다운 정원.

 

 

산다미아노수도원의 십자가 : 십자가 양쪽으로 성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 스태인드글라스가 있다.

 

 

성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 스태인드글라스 - 산다미아노수도원

 

 

성녀글라라와 가난한 자매들 스태인드 글라스-산다미아노수도원

 

 

앞에서 보았던 성녀글라라가 샤용한 가대 천장화인데 윗쪽 윗쪽에  있는 전등자리는

성녀께서 병상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바닥에 구명을 뚫어 아래층 성당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까르첼리 은둔소 입구에 있는 성프란치스코의 상

 

 

까르첼리 은둔소로 들어가는 입구

 

 

까르첼리 은둔소의 모습

 

 

까르첼리 은둔소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벽에 시에나의 성베르나르디노의 예수성명(IHS)신심의 문장이

부조로 되어있으며 이 은둔소의 수련원장이셨다고 한다.

 

 

절벽과 같은 곳에 지어진 까르첼리 은둔소.

 

 

까르첼리 은둔소안에 있는 시에나의 성베르나르디노의 십자가(축일:5월20일)

 

 

까르첼리 은둔소에 있는 성프란치스코의 동굴.(성인이 계셨던 자리에 화분을 놓았다)

성인께서 1210-11년 사순절을 지내려 올라 오셨다고 하며 관상과 활동에 대해 성소를 탐색하던 시기이다.

"그의 가장 포근한 안식처는 기도였다."

 

 

까르첼리 은둔소에 있는 악마가 도망쳤다는 구멍.

 

 

까르첼리의 레오형제 동굴입구

 

 

까르첼리에서 말씀의 전례를 거행한 곳.

 

말씀의 전례
열왕기 상권 19,11-13
11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앞으로 나가서 야훼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
그리고 야훼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일어 산을 뒤흔들고
야훼 앞에 있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12 지진 다음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가 들려왔다.
13 엘리야는 목소리를 듣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

.

 

"야훼께서는 바람 가운데도, 지진 가운데도, 불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조용하고 여린 소리로 다가오시는 야훼 하느님!"


까르첼리에서 부르는 태양의 찬가는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까르첼리의 맛세오 형제 동굴입구.

 

 

까르첼리 은둔소를 내려오며..

 

 

 

예수님 손과 성프란치스코의 손, 타우 십자가, 백함- 아시시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순례자숙소에서

 

 

아시시를 떠나기 아쉬워하며 순례자 숙소에서 움브리아평원의 모습들 담았다.

 

 

트라시메노호수, 첼레, 라베르나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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