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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공소에서의 특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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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영 [mymoon] 쪽지 캡슐

2001-06-11 ㅣ No.2097

자동차가 읍내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나는 에어콘을 끄고 네개의 차창을 모두 열어젖혔다.

이곳의 공기는 서울에서 달려오며 느꼈던 어느 곳 보다

더욱 신선하고 맑은 공기가 나를 반기는 곳이어서

차창을 닫고 가기에는 그 공기가 너무 아까운 곳이다.

 

꼬불꼬불 나 있는 이 산길을 넘어서 15분 정도만 더 가면

어머님, 아버님께서 잠들어 계시는

엄마품 같은 나의 고향에 도착한다.

 

오늘은 20여 년 만에 돌아오는 윤4월 18일.

바로 어머님의 제사날이며,

오후 4시에 시골공소에 본당신부님이 오셔서 드리는 토요특전미사에

어머님의 연미사를 신청해 두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출발 할 때는 오후 4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는데

공소에 도착하니 4시 10분 전이라 제대로 맞추어 도착했다.

우리 가족들로는 형님 내외가 이미 와 계셨고,

시집간 둘째 질녀가 아기 둘과 같이 할머니 제사라고 와 있었다.

 

이곳의 공소회장은 형님의 절친한 친구이자

형수님의 오빠인 사형이 맡고 있고,

사형댁인 형수님의 올캐언니가 오르간을 치며 성가를 지도하셨다.

 

미사참석 신자수는 모두 25명 정도 되었는데 거의가 할머니들이고,

남자신자는 공소회장과 형님, 할아버지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었으며,

나까지 포함해서 5명 밖에 안 되었다.

 

신부님은 40세 전후로 되어 보였는데 오늘은 삼위일체대축일이라,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삼위일체의 교리를 알기쉽게 풀어나가셨다.

사랑에는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과 주고받는 사랑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본질이 세가지가 아니고 하나이듯이,

하느님도 성부,성자,성령의 3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이 세분이 아니고,

3위가 서로 사랑으로 일치를 이룬 한분인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교리를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소녀와 조개껍질'에 얽힌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이 공소건물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나는 중학교 때 세례받았음)인 1960년 경에

남녀노소 온 동네의 신자들이 황토흙으로 벽돌을 직접 찍어서 지은 집이다.

말하자면 순수한 황토방인 셈이다.

이제는 낡아서 벽에는 금이 가고 나무창틀은 뒤틀려

제대로 닫히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이 공소에서 내가 중학생으로서 하모니커로 성가를 익힌 다음

(그 때는 싸구려 풍금도 하나 없었으니까),

다른 신자들에게 성가를 지도하였던 곳이며,

어렴풋이나마 하느님의 존재를 느꼈고,

북쪽으로 난 창을 통하여 서울쪽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었던 곳이다.

 

특히 형님과 나, 어머님의 두 아들이 같이 참석하여

어머님의 연미사를 봉헌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인 까닭에

나로서는 너무나 감격하여 미사중에 몇 번이나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참았다.

 

그리고, 나에게 소박한 꿈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곳 공소건물을 나의 사재를 털어서 새로 짓고,

그 한 켠에는 살림방을 넣어서 생활하며,

여생을 시골공소에서 봉사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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