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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그리스도Ⅲ-8 연대성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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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동성당 [chang4] 쪽지 캡슐

2012-02-01 ㅣ No.5199




세상 속의 그리스도Ⅲ-8 연대성의 원리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사회 지도층에 걸맞는 책무를 다하자

우리나라 부호들이 부를 쌓아온 과정이 깨끗하지 못했고 권력계층 역시 이들과 밀착해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인식돼 있다. 또한 군 면제자를 '신의 아들'로, 단기병을 '장군의 아들'로 부르고 있다. 실제로 재벌가 자제들의 병역 면제율은 33%로 일반 국민 6.4%의 5배 이상이다.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 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다. 민주주의의 모범국가이자 의회 민주주의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경우 왕실이 존치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국민의 80% 이상이 왕실의 존치를 계속 지지하고 있다. 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2차 세계대전에, 포클랜드전쟁 당시 영국의 왕위계승 서열 2위였던 앤드류 왕자가 직접 전투기를 몰고 참전 했을 만큼 영국 왕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시민 대학살의 전제조건으로 명망가 6명의 목숨을 요구하자 당시 부자와 시민 등이 자원을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왕비가 의인들의 죽음이 임신중인 태아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간언을 해 시민대학살도 피하고 목숨도 건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은 죽음을 앞둔 의인 6명의 형상을 그린 로댕의 작품. 최민호의 아이스크림, 시민위해 죽음 택한 부자와 시장, 2011.1.18

 

여전히 작위가 수여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의 명문가 자제들이 입학하는 이튼스쿨에는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해 참전했다. 전사한 천여명의 자교 출신 전사자의 이름이 적힌 묘비가 있다. 이처럼 영국은 지도계층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안을 들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선 사람이 빌 게이츠의 아버지인 빌 게이츠 시니어였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위렌 버핏, 빌 게이츠, 록 펠러 등 명문 부호들이 엄청난 액수의 기부를 하고 있을뿐 아니라 미국 400대 부호들을 대상으로 재산 절반을 기부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상징인 미국의 국민들이 부자들을 증오하거나 미워하거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부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을 나름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조, 사회지도층에 걸맞는 책무를 다하자, 한의신문, 2010.11.26)

 

개인에게 주어지는 밑천

「덤벼라, 빈곤」은 '의자 뺏기 게임' 소개를 시작으로 빈곤의 이유를 설명한다. 10명이 8개의 의자를 두고 다툰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 의자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음악이 멈추는 순간, 8명은 앉고 2명은 서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이때 앉지 못한 이유를 ‘음악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거나, '아침을 먹지 않아 기운이 없었다' 등으로 생각 한다면, 그것은 개인책임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의자에 앉지 못한 이유를 의자의 개수가 부족한 데 둔다면, 그것은 본인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의자가 8개밖에 없기 때문에 2명은 탈락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의자 개수 때문이라는 생각은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고방식에 해당한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주목해 왔다. 그래서 '본인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라는 원인과 ‘더 노력하면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해결책밖에 나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모두들 '어떻게든 앉자'라는 생각으로 그저 공부 또 공부에 열심히 학원다니기, 뭐든 배우기를 외치며 한도 끝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일자리를 예로 들어보자. 정규직 사원의 의자는 몇 개나 있을까? 2010년3월 기준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49.8%이고, 여성 노동 인구의 비정규직 비율은 63.5%이다. 열심히 하면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그러는 사이에 의자 개수는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10명 중 5명밖에 앉을 수 없는 실정이다.

정규직 사원이 되려는 이들도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밑천, 즉 조건이 다르다. 부자이고 좋은 부모님 밑에서 성장해 스스로도 자신만만한 사람은 돈과 인간관계, 마음가짐이라는 밑천을 갖췄다. 반대로 가난한 집에 태어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은 밑천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밑천'을 더 늘리기 위해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밑천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유아사 마코토는 일본 도쿄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빈곤 퇴치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8년 말부터 도쿄 히비야 공원에 텐트촌을 마련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노숙자들에게 숙식을 제공 하고 취업 상담을 해 왔는데, 그의 이런 활동은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현재 비영리단체인 '반빈곤 네트워크'와 소외 계층 자활지원센터 '모야이'에서 활동중이다. (유아시 마코토. ‘덤벼라 빈곤’ 한겨레신문, 2010.12.13)

 

9억원 버는 박씨- 1800만원 버는 한씨 ‘똑같은 부담액'

서울에 사는 최씨(67세)는 서울과 지방에 각각 7억, 5억원짜리 건물과 19억원 상당의 땅을 갖고 있다. 건물 월세 등 지난해 번 임대소득만 1억2000만원이다. 여기에 주식 배당금으로 지난해 1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렇게 해서 최씨가 지난해 매달 벌어들인 돈은 2000만원 가량이나 되지만, 한 달에 내는 건강보험료는 고작 3만9970원이다. 최씨가 월 150만원을 받고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 배당금으로 지난해 8억9000만원을 번 박씨(52)도 월급 150만원 받는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료를 3만9970원만 내고 있다.

 

같은 건보료를 내는 세 사람의 소득비교

이들이 내는 한 달 건강보험료는 임금 소득 따져 모두 똑 같이 3만9970원

- 최아무개씨(67세) : 월 소득 총액 1950만원(임대소득 1000만원, 주식배당금 800만원, 임금소득 150만원)

- 박아무개씨(52세) : 월 소득 총액 7550만원(주식 배당금 7400만원, 임금소득 150만원)

- 한아무개씨(50세) : 월 소득 총액 150만원(임금소득 150만원)

 

최씨와 박씨가 내는 건강보험료는 소득이라고는 월급 150만원이 전부인 한씨(50세)의 건강보험료와 같다. 한씨는 돈이 없어 아직도 전셋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소득이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50배까지 차이가 나는데도 다달이 내는 건강보험료가 같은 이유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건강 보험료가 '근로소득'(월급)만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직장가입자는 월 급여의 5.33%에 해당하는 금액의 절반을 보험료로 낸다. 나머지 절반은 사업자가 낸다. 이를 두고 임대 · 금융소득 등을 포함한 종합소득과 재산을 따져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지역가입자와 형평성에서 차이가 날뿐더러, "능력에 따라 부담한다"는 사회보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4조는 '사회보장제도의 급여 수준과 비용 부담 등에서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장 건보료' 이의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 2010.12.14)

 

행복을 빼앗아간 병

한부모 가정 주부가장인 박씨(45세)는 가사도우미에 우유 배달까지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아이와 함께하며 나름 행복했지만 삶의 나락에 떨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2008년 초등생이던 아이가 다리 골절을 계기로 톡소카라증, 증식유리체망막병증 등 여러 후천적 난치병에 걸린 사실이 확인되면서 간병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삶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시에 긴급지원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고 병원비는 쌓여갔다. 그런데 박씨가 수족염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제서야 시는 지난 3월 그를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했다. 첫 생계비 지원액은 9만원, 지금은 허리 디스크 증세가 겹쳐 30만원(의료·교육비 등 제외)을 받고 있다. 이 생계비는 아이 병원비로 다 나간다. 11월부터 지급된다던 난방비는 한 번도 못 받았고, 간식비 5만원도 지금껏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10년 결산 - 보장 받기도 어렵고 내용도 비현실적, 평화신문, 2010.12.19)

 

세금체납 100위권 강남서 싹쓸이

서울에서 세금 체납액이 가장 많은 개인과 법인 100위까지가 모두 강남 3구에 몰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9월 CBS가 서울지역 소재 24개 세무서별 세금 체납현황을 분석한 결과, 강남구에 위치한 삼성, 강남, 역삼, 서초, 송파가 1위에서 5위까지를 모두 강남권에 있는 세무서가 쉽쓸었다. 10위에 오른 반포를 포함할 경우 강남권 체납액은 3조292억원으로 전체 7조 4,492억원 가운데 40%가 넘는 비중을 보였다. 강남권 지역은 절대 체납액이 많다보니 체납액 순위 100위안에 드는 개인과 법인 모두 강남권에 소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금체납도 양극화 ….100위권 강남서 싹쓸이, 노컷뉴스 2010.9.22)

한국은 짧은 기간에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세계에서 유례없는 모범국으로 꼽힌다. 그러나 고도의 압축 성장에도 그늘진 단면은 있다. 바로 ‘도덕성 상실’이다 우선 물질 만능주의의 폐해를 낳았다. 법을 어기더라도 땅이나 아파트를 사고팔면 가만히 앉아서 수백, 수십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었으니 한탕주의와 탈법이 적지 않았고 투기로 돈을 번 사람들은 "남들도 다 하는데"라고 변명했다.

100억원 이상 고액 추징금 미납자는 오늘을 사는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성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추징금 미납자 중 100억원 이상 미납자는 24명이며 이들이 내지 않은 추징금 총액은 24조1208억원에 이른다. 고액의 세금 체납자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세청 자료를 보면 5000만원 이상 세금을 체납한 사람이 2007년엔 7668명에 체납액은 1조 3311억원이었으나 2009년에는 9792명에 1조6809억원으로 증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 3년간 미 정리 체납액 11조6486억원 중 5000만원 이상 체납한 사람의 체납액은 4조4225억원으로 전체의 38%에 달한다. (투기‥‥수뢰‥‥표절‥‥도덕성 상실은 '우리시대 자화상', 이투데이, 2010.10.13)

 

교회의 가르침

 

연대성은 인간의 타고난 사회적 본성,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권리, 그리고 일치를 향한 개인과 민족의 공동 노선을 특별히 강조한다.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의 상호 의존의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널리 인식되어 있고 모든 단계에서 발견된다. 연대성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제도의 질서를 결정하는 도덕적 덕목에 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개개인과 민족들의 관계를 지배하는 "죄의 구조" 를 극복하여야 한다. 죄의 구조는 법률, 시장의 법칙, 사법 체계의 수립과 적절한 개정을 통하여 연대성의 구조로 정화되고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연대성은 진정한 도덕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 내지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 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 연대성은 정의의 영역 안에 자리 하므로 근본적인 사회적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연대성의 원리는,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인식을 기를것을 요구한다. 인간 생활을 더욱 살기 좋게 해 주는 조건들과 문화, 과학과 기술 지식, 물질 재화와 비물질 재화, 또 인간 조건이 만든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불가분적이고 필수적인 유산 때문에 인간은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나라렛 예수님께서는 연대와 애덕의 관계를 모든 사람 앞에 밝게 비추어 주심으로써 이 관계의 온전한 의미를 밝혀 주신다. "신앙에 비추어 볼 때에, 연대성은 그 자체를 초월하여, 전적인 무상성, 용서, 그리고 화해와 같은 각별히 그리스도교적인 차원을 띠고자 한다. 그렇게 될 때에, 이웃은 단지 자신의 권리를 지니고 있고 다른 이와 근본적으로 평등한 인간으로만 비치 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고 성령의 항구적인 활용을 입고 있는 아버지 하느님의 살아 있는 모상이 되는 것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192-196항)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인간은 그 형제들과 더불어 모든 차원에서 사회의 공동선에 공헌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유의 자각 73항, 교황청 신앙교리성)

 

세상 속의 그리스도

 

신념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

월리엄 월버포스는 1759년 영국 킹스턴어폰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200년 동안 장사를 해온 유명한 무역상 집안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작고 허약했지만 다정다감하고 열정적이었다. 17살 때 케임브리지대에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인 월리엄 피트를 만났는데, 그는 후에 24살의 나이에 영국 총리가 된다. 자유분방한 사교 생활을 즐기며 다소 방탕한 생활을 하던 월버포스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데 그것은 바 로 그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경건하고 모범적 인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으며 독서를 통해 교양을 쌓았다. 1786년 월버포스는 평생을 두고 실천할 중대한 결심을 한다. 그것은 노예무역을 근절하는 것과 잘못된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해군력을 보유했던 영 국은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데려다 북미 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로 항해 도중 25%가 넘는 흑인이 사망할 정도로 살인적인 노예 수송이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이유로 묵인됐다. 150여년동안 약 200만여명의 노예를 수송했는데, 이것이 국가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노예제도 지지파들은 막강한 상인, 넬슨 제독과 같은 식민지 기득권 세력이나 왕족, 귀족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노예무역 반대론자의 목소리를 '매국'이라는 이름으로 잠재워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무역을 없애겠다고 나선 월버포스의 행동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는 영국이 황금에 눈이 멀어 노예제도를 갖고 있다니 이런 악행을 저지르고도 오래 살아남은 제국은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외치며 의회에서 무려 150차례나 이 문제로 논쟁했다. 약 20년 만인 1807년 드디어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마침내 1833년 영국에 있는 모든 노예를 해방하라는 법령이 선포된다 월버포스가 한 일은 노예무역 근절만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은 노예무역과 아동노동, 대중의 빈곤과 상류층의 정치적 타락으로 혼탁했다.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카지노였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재산으로 도박을 했고, 성적 타락과 매춘, 알코을 중독 등이 만연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복권 시스템을 20년에 걸친 공방 끝에 폐지시켰고, 과다한 노동 시간을 제한하고 어린이노동보호법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사형제도를 개선하고, 가난한 이들이 재판 받을 권리를 넓혔다. 월버포스의 이런 사회개혁 운동은 오랜 시일에 걸쳐 서서히 이뤄졌다. 그의 개혁 운동은 많은 이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사람인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온갖 비난 속에서도 평온을 얻었으며, 매일 자신이 한 일을 일지에 기록하면서 확고한 신념을 다졌다. 세계사에 길이 남을 노예무역 폐지 투쟁은 월버포스 혼자서 했던 것은 아니다. 그와 신념을 함께했던 클래팜(Clapham Sect) 공동체의 힘이 컸다. 이들은 노예해방과 사회개혁 운동과정에서 의회 의원들을 뇌물로 매수하거나 무력, 비방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인도와 서인도제도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법률적 능력, 웅변과 의회 운영 능력 등으로 무장한 도덕적 엘리트 집단이었다. 소수였지만, 이들은 영국 사회 변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월버포스는 정치가의 신념과 열성이 어떻게 세상과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20년 노력 ·투쟁 '노예무역'을 없애다, 한겨레신문, 2010.11.29)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경성의전을 졸업 하고 해방 후 평양도립병원 원장으로 일했다. 평양의과대학 외과 교수로 일하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모와 아내, 자식들을 북에 두고 둘째 아들만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온다. 피난지 부산의 제3육군 병원에서 일하다가 간첩으로 오인 받아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신학대학을 다니다 귀국한 전영창이라는 젊은이를 만나 복음병원을 차리게 된다. 미국에서 후원받은 5천달러를 가지고 교회창고에서 시작한 복음병원은 처음엔 치료비를 받지 않았으나, 병원 식구들의 밥값조차 주지 못할 지경이 되자 할 수 없이 '감사함’을 만들어 돈이 있는 환자에 한해 자발적으로 돈을 받았다. 휴전 후 주변의 도움으로 병원 건물이 생겼지만, 전쟁 때와는 달리 지원금이 없어 치료비를 받아야 했는데, 장기려 박사는 치료비가 없는 이에게 자기 월급을 털고, 가불까지 받아주었고, 가불이 금지되자 됫문으로 도망치게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의학 연구도 열심히 해 195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암 제거 수술에 성공해 1961년도 대한의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1968년에는 환자들에게 치료비 청구서를 내는 괴로움을 덜려고 의료보험제가 거론됐는데, 이를 시작으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작은 의원이라 적자가 계속됐지만, 부산의 또 다른 민간 의료보험과 합치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점점 흑자를 냈다. 1975년에는 청십자조합에 5천명이 가입했다. 그 후 청십자조합은 1985년 전국적으로 지역의료보험이 실시되면서 해산됐다. 1975년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장기려 박사는 부산아동병원을 맡았고, 1979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5년 84살을 일기로 숨을 거뒀다. 비문대로 그는 평생 집도 없이 병원 한구석 방에서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최고의 의사였지만, 떠나는 날 통장에는 달랑 천만원이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선물로 줘 버리고 빈손으로 떠났다. 길을 가다가 걸인을 만나면 주머니를 털어 수표를 건네는가 하면, 영양이 부족해 병이 난 환자에겐 약 처방전 대신 고기 사 먹을 돈을 내주기도 했다. 그가 성자로 존경받은 이유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정성으로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다른 의사들과 힘을 모아 '부산기독 의사회'를 만들어 행려병자들을 치료하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드는 데 적극 동참한 것이 그렇다. 의료보험조합을 만든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의료보험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주머니 사정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 뱅킹 같은 게 없던 때라 조합 직원들이 일일이 조합원 집을 방문해 돈을 거두러 다녀야 했다. 장기려 박사는 조합의 적자를 자신의 퇴직금으로 메우는 바람에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할 때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장기려 박사는 뛰어난 의술을 베푸는 의사이기 전에 항상 겸손하면서도,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고집쟁이로 비치기도 했다. 복음병원을 운영할 때 의사와 직원을 구분하지 않고 직원들의 식구 머릿수대로 월급을 지급했는가 하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자신만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안 된다며 거절했다. 제자들이 자신의 흉상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싫어했다. 그의 뜻을 이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생전에 그가 정 성을 기울였던 간질환자 치료활동 단체인 '장미회'가 국경을 넘어 해외로 활동을 넓히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기려 기념 의료선교센터'가 세워져 젊은 의사들이 가난한 이웃을 위한 무료진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 위해 일평생… '진짜 의사선생님', 한겨레신문, 2010.12.6)

 

경주 최부자집의 집안을 다스리는 가훈인 '육훈(六訓)'

최부자집이 300년 동안 존경을 받는 대목이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사람이 부를 얻으면 권력을 얻고 싶은 것이 심리다. 그러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은 사람들은 결국에 모두 돈과 명예와 권력을 몽땅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명문가의 조건 가운데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권력을 얻고 부와 명예를 얻었더라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최부자집의 1년 소작료 수입은 1만석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확량이 많을 때는 소작료는 자연히 내려간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부 자집 재산이 더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반기는 것이다.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않는다. 당시 농민들은 흉년기가 되면 당장 살길을 찾기 위해 땅을 처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땅값은 내려가게 되어 헐값에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최부자집은 이때는 재산을 절대로 늘리지 않는다. 가진자들의 횡포를 막는 것이다.

넷째, 과객을 후히 대접한다. 최부자집은 매년 과객의 접대로 1,000석의 쌀이 들어간다 한다. 재우고 먹이기도 하지만 떠날 때는 노자까지 쥐어 보낸다.

다섯째,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1671년 삼남 지방에 큰 흉년이 들자 최부자집에서는 곳간을 헐어 굶주린 사람을 위해 연일 죽을 끓인 적이 있는데 지금도 죽을 쑤었던 자리가 ‘활인당’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바로 부자가 존경을 받게 되는 ‘베풂’ 인 것이다.

여섯째,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예전에는 시집온 며느리는 얼마 동안은 곱게 차려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최부자집은 이를 엄격하게 통제하여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 것. 그리고 보릿고개가 시작되면 가족들은 쌀밥을 먹지 않고 수저도 은수저는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요즘 가진자들의 명품 브랜드 유행은 아예 거리가 먼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 500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거북이)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2010년 뉴스위크 <국가 만족도> ‘살기 좋은 나라’ 1위 영국 런던 레가툼 연구소 발표, '삶의 질' 평가 1위. <2009년 세계경쟁력평가 보고서> '대학교육 경쟁력', '교육제도 경쟁력'1위.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2000년 이후 연속 1위.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걱정하던 유럽의 변방 후진국에서 21세기 미래 경쟁력의 성공 모델이 되기까지, 핀란드의 성공 비결을 알아본다.

 

자신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왔던 핀란드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3가지의 S자로 표현한다. 작곡가 시벨리우스(Sibelius)는 '핀란디아 음악으로 자국민의 민족성을 끌어냈다. 그리고 핀란드인은 2억 명이 넘는 소련과 대항하여 싸울 때, 시수(Sisu)의 정신으로 대항했다. 혹독한 추위와 맞서게 한 사우나(Sauna)는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게 이해하고 단합할 수 있었던 수단이다. 회사원 사미유 하비반델먼씨는 "사우나에서는 사장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문을 닫으면 이곳에서는 모두 평등해져요. 사우나의 정수는 수평사회입니다. 특히 사우나에 가게 되면 직책은 배제돼요. 돈이 얼마나 되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사우나에서는 모두 같은 인간이에요. 모두가 같은 입장이죠."

 

핀란드 교육개혁의 실체는 경쟁과 입시를 거부하고 평등교육을 지향하는 교육방식이다. 단 한 사람의 재능도 버리지 않은 것, 이것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탈출구였다. 약육강식의 경쟁을 과감히 무시 하고 협동의 교육 모델을 선택한 핀란드의 교실(교육 전문가 파시 살베리)에서 그들의 교육 원칙을 들었다.

 

핀란드에서는 3가지 역설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학생들에게 덜 가르치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 두 번째는 ‘학생들은 시험을 적게 보면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역설은 "핀란드에서 훌륭한 고등학교 학생일수록 초등학교 교사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24시간 서비스’에 거주하는 카트리나. 그녀는 14살 거식증으로 시작된 우울증 때문에 하루에 두 번 자살충동을 느꼈다. 이후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고 국가와 지방자치의 도움으로 24시간 내내 보호를 받는다. 카트리나는 이곳에서 언제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핀란드의 24시간 서비스는 하루 내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즉 정신적인 재활이 필요한 사람, 특별 장애인,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핀란드는 이외에도 '자살방지 프로젝트, '심장질환예방프로젝트 등의 범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을 돌보고 있다. 핀란드의 생존전략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KBS스페셜, 2010.11.14)

 

나눔도 닮아갑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제가 없이 살다 보니, 어려운 사람을 돕게 됐어요." 박로사리아(62세)씨는 1993년부터 한국 카리타스 해외 원조 후원을 시작했다.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해외원조 후원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국내에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발달하고 있고 열심히만 일하면 먹고는 사는데, 아프리카처럼 어려운 나라는 기반이 없어 열심히 살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답변이다. 사실 그의 이웃사랑이 해외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소록도, 꽃동네 등을 통해 국내 어려운 이웃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전해왔다. 93년 4000원으로 시작한 후원은 해를 거듭 하면서 조금씩 늘어나 지금은 한 달에 만 원이 됐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을 보고 배운 아들은 회사에 입사하던 2005년부터 어머니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처음에 '꼭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너희가 주어라’(루카9,13)하고 말씀하셨잖아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눔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퍼져 나가는 것 같아요."

그뿐 아니다. 얼마 전, 그는 아들의 돌잔치를 대신해 돌잔치 비용 200만 원을 아이 이름으로 한국 카리타스에 전달하기도 했다. "기부가 휠씬 낫죠!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내 임(31세)씨는 "유산의 위험이 있었지만 무사히 출산을 하고 첫돌을 맞게 되자 감사한 마음이 배가됐다"고 했다. 임씨 역시 월급에서 일부를 기부하는 것은 물론, 다른 해외원조 단체를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털모자를 떠서 보내고, 매달 2만 원씩 후원을 하는 등 나눔에 적극적이다. 대를 이어 오래도록 한결같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너무 큰돈으로 시작하면 어느 순간그 돈이 아까워져서 그만 두게 돼요. 적은 돈으로 시작해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죠. 하다가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부부는 "둘째 때도 돌잔치 대신 기부를 할 계획"이라며 "아이가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평화신문, 아들 며느리 손자도 함께, 2010.1.31)

 

아프리카의 '한국인 슈바이처'

아프리카 수단 아이들을 웃게 했던 한국인 슈바이처, 살레시오회 이태석 신부가 수단 밤하늘의 별이 됐다. 이 신부는 비움의 사제였다. 그에게는 욕심이 없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의사(醫師)는 철학과 신학을 배우고 사제가 됨으로써 의로움을 쫓는 의사(義士)가 됐다. 그리고 서품 이듬해에 한국인 신부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8년 동안 섭씨 40도가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말라리아와 홍역으로 고통받는 원주민과 함께했다. 그는 진료와 교육의 사각지대였던 수단 톤즈 마을에 12개 병실을 갖춘 병원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또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가톨릭신문, 나눔 · 섬김의 사제 고 이태석 신부, 2010.1.24 /평화신문, 아프리카의 '한국인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2010.1.24)

 

묵상 ․ 토론

1. 연대의 정신을 가로막는 요소는 무엇인가?

2. 나는 어떤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나누시오.

 

실 천

○ 내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 우리 각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빛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 약육강식의 경쟁을 만들지 않고 서로 돕고 배려하는 문화를 만든다.

- 자신의 소득과 재산 수준에 맞는 정직한 납세 의무를 다하여 공익에 기여한다.

- 서로를 돌보는 정책을 지지한다. 예를 들어, 교육 · 의료 · 주택 정책에서 부당하게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

- 소외된 사람 · 나라를 돕기 위한 후원단체에 기부한다.

○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사회사목부 : 단체 간의 연대 /사안에 따른 연대

 

 

< 참고 >

- '세상 속의 그리스도 1'편 차례 -

1 빈곤 - 우리시대의 장발장

2 거주권 - 주택공급율과 주거빈곤

3 고용 - 적절한 고용

4 인권 - 인간 기본권

5 공정 무역 - 정의로운 무역

6 사회양극화 - 부익부 빈익빈

7 특별사면 - 유전무죄 무전유죄(법 앞의 평등)

8 연대성 - 사회적 약자와 연대

9 교육 - 온전한 자기 계발

10 납세의 의무와 공동선

11 미혼모

12 재화의 보편적 목적 - 자신을 위해서만 부를 소유하는 것은 죄 (소유문제)

13 세계화 - 소외 없는 세계화

 

 

  출처 :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간행 '세상 속의 그리스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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