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인쇄

정말자 [noans] 쪽지 캡슐

2000-12-24 ㅣ No.1960

 

 

아기 예수님의 이천 돐을 맞을 준비로 모두들 들떠 있는

대림 4주일 이면서 성탄 이브인 오늘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투정과 분노가

너무나도 사치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지면서

그녀의 생각이 자꾸 난다.

 

보라색 대림초에 불을 당기던 어느 날

모처럼 그녀를 찿았을땐

그녀의 병상은 이미 비어 있었고

그녀 대신 그녀의 남편이 짐을 꾸려놓고

퇴원 수속 중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며 외출 나간 그녀

그것이 바로 퇴원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아 갔을 땐

보라색 제의로 갈아입은 예수님 성상을 마주보며

그녀는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고

우린 조용히 앉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후 우리를 알아본 그녀는 입안에 말로

"잔치를 베풀어야 되겠네"라며

여전히 반가움을 표시했지만

긴 투명 끝에 앙상하게 마른 그의 체구를 보면서  

난 뭐라고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약 먹으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고

병원에 가기를 더 싫어하는 그녀

약 기운에 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잠시 눈을 떠 입안에 얘기하듯

병원에서 검사 받을 때 너무나 아파서 소리를 질렀는데

"살려달라는 소리도 안들리나봐"하는

그녀의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시후 미소를 머금고 스테파니아가 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환한 모습으로  

밥을 끓여 동치미 국물에 적셔 호호 불며

엄마 입에 넣으며 "한 번만더, 한 번만더"

하면서 자꾸 떠 넣는 모습은

천사의 모습을 연상케하며

경험해보지 못한 신선함이었으나

난 하늘을 쳐다보며 화장실로 향해야 했다.

 

요즘 며칠간 본당에서 성탄 준비를 하면서

그녀의 옛 모습과 얼마 전에 만났던 두 모습이

자꾸 교차하며 스친다.

예전엔 누구보다도 열심히

밝은 모습으로 봉사하던 그녀의 모습과

이제는 너무나도 힘겨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모습이 말이다.

 

이천 돐에 오실 아기 예수님!

특별히 병든 자와 가난한자와 고아와 과부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오실 당신은

너무나도 힘겨워하는 그녀와

아픔을 삼키며 지켜봐야만 하는 그의 가족들에게

새 희망의 빛으로 오시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7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