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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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2-09-15 ㅣ No.980

연중 제24주일(가해. 2002. 9. 15)

                                              제1독서 : 집회 27, 30 ∼ 28, 7

                                              제2독서 : 로마 14, 7 ∼ 9

                                              복   음 : 마태 18, 21 ∼ 3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비가 내리더니 싸늘해진 날씨입니다.  감기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나폴레옹은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명령을 어긴 부하들이 있으면 단호히 여러 사람 앞에서 처벌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원정을 갔을 대 벌판에서 야영을 하게 됐는데 보초들에게 러시아 진영이니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라고 명령했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총살형으로 처벌할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폴레옹이 자정 무렵 순찰을 시작하고 마지막 초소에 이르렀을 때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가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나폴레옹은 아무 말 없이 보초병 대신 그 자리를 지켜 주었습니다.  날이 밝아 올 즈음 잠에서 깬 병사는 나폴레옹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무릎을 꿇고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보초병에게 총을 건네주며 "너와 나 밖에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난 너를 용서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 아침 러시아와 격전이 벌어졌고, 추위에 약한 프랑스군은 밀리기 시작했는데 이 때 한 병사가 앞장서서 적진으로 뛰어들었고 그의 용기 있는 모습에 다른 병사들도 힘을 내 마침내 승리를 했습니다.  그 앞장선 병사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는 전 날 나폴레옹이 대신 보초를 서 주었던 바로 그 병사였습니다.

 

  여러분은 용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용서의 정의를 내린다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국어사전에서 용서는 "관용을 베풀어 벌하지 않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관용은 너그러움입니다.  어쩌면 용서란,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구체적인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에 대해 보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는 "보복하는 자는 주님의 보복을 받을 것이며 주님께서 그의 죄를 엄격히 헤아리실 것이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  자기 이웃에 대해서 분노를 품고 있는 자가 어떻게 주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으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는가?  자기도 죄짓는 사람이 남에게 원한을 품는다면 누가 그를 용서해주겠는가?"라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을 진 종에게 왕은 관용을 베풀어 그의 빚을 탕감해 주었지만, 그러나 그 종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돈을 빚진 다른 이에게 자신이 받은 그 관용을 베풀지 않았고, 결국 그 종은 자신이 진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벌을 받아야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고 하심으로써 우리가 서로 용서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 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잘못은 인간의 일이고 용서는 하느님의 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용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때로는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다면, 서로 앙심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항상 보복하고 지낸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용서는 우리의 인간다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 용서와 사랑을 받은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용서는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에서 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 종의 모습과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생각이나 취미, 행동이 다른 이들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용서는 우리와 다른 생각과 취미, 행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너그러움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용서는 사랑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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