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09년 9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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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09-10-26 ㅣ No.103

Allocucio - September, 2009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레지오 단원의 삶에 미치는 묵주기도의 역할

 

교회는 성모님의 호칭을 다양하게 부릅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경의를 표하며 성모 호칭 기도를 바칩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직접 자신의 호칭을 달리 알려 주신 것도 있는데 그 호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 호칭 중에 2개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루르드에서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무염시태)’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 명칭은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 계획의 핵심을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 마리아 께서는 은총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천상 은총의 어머니’, ‘구세주의 모친’ 또는 세상에서나 우리들 각각에게 희망의 영원한 표지가 되는 호칭으로 불리셨습니다. 마리아는 우리들 각각 또는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시는 은총이십니다. 악이나 사탄과 싸울 때 마리아는 창세기에 나오는 여인이며 승리의 표지가 되십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이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라는 명칭은 은총과 구원의 완전한 세계와 하느님의 아들이자 성모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인간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위해 계획하신 것이라는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모든 호칭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레지오에서 사랑받고 있는 호칭입니다.

 

그러나 파티마의 마리아께서는 3명의 작은 어린이 목격자들에게 또 다른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묵주기도(매괴)의 모후’입니다. 이것은 성모님만이 묵주기도를 바치 신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루르드나 파티마, 또 다른 많은 곳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한 예를 보여주십니다. 성모님께서 묵주기 도라는 용어로 정의를 내리셨는데 이는 과연 무슨 의미를 두신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신비(일생)에 열중함으로써 성모님의 존재나 정체성이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한 순간부터 예수님과 하늘나라에서 함께 계시는 현재까지 변함없이 예수님과 관련되지 않은 적은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복음을 읽어 보면 마리아는 아드님에 대한 신비에 깊이 동화되어 계셨습니다. 복음사가인 루카는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라고 묘사 하였습니다(역주 :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알리고 목자들이 예수님을 경배 하러 온 일).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는 말은 단지 그 모든 일을 생각만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이 마리아의 전 생애에 걸쳐 매우 깊게 모든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의 일생인 이러한 신비와 같이 사셨습니다. 유년 시절의 예수님을 성전 에서 찾은 이야기에서 루카는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이 구절들을 근거로 볼 때 성모님만큼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기도하고 그 삶을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모님만큼 묵주기도를 하고 그 신비(예수님의 일생)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께서는 하늘에서도 묵주기도를 충심으로 계속 바치시며 살아 계십니다. 예수 님의 모든 신비의 마지막 단까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치십니다. 예수님에 관한 모든 일은 마리아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서 자신에게 위대한 역사 를 베푸신 것을 마리아께서는 아주 명확하게 아십니다. 자신 안에 있는 진실, 선함과 아름 다움의 모든 것이 아드님이 이루신 구원의 사랑에 따른 유일한 결실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마리아의 마음과 생각 자체가 완벽한 복음입니다. 마리아께서는 묵주기도를 통해 마리아가 경험하셨던 예수님과 그 분을 통해 성삼위와 같은 진정한 삶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삶이 복음과 성삼위의 사람들로 사는 경건하고 확실한 계 기가 되도록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계속 되풀이해서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것은 아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레지오의 정신이 성모님의 정신이고 성모님이 묵주기도의 모후이시므로 묵주기도가 레지오 단원의 영성의 핵심이라는 것도 아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성모님께서 레지오의 모든 회합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도록 하셨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레지오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시도록 하는 특별한 방법입니다. 묵주기도는 단지 주님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과 생각을 고양시킵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의 아드님으로서 인성을 갖고 우리에게 나타나 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쉽고도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묵주기도에 관하여 내리신 교황 교서(2002. 10. 16.)의 다음 구절로 지금까지 간단하게 설명한 묵주기도에 대한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성 모님의 체험에서 시작된 묵주기도는 더 없이 훌륭한 관상 기도입니다. 이러한 관상의 차원 이 없으면 묵주기도는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를 분명하게 지적 하셨습니다. “관상이 없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아져 기도문만을 반복하는 위 험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본질상 고요한 운율과 생각을 할 수 있는 느릿한 속도로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 가장 가까이 계셨던 성모님의 마음과 눈길로 기도 하는 사람이 주님 생애의 신비를 더 쉽게 묵상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 신비의 헤아릴 길 없는 부요가 드러나게 됩니다.”

 

묵주기도가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관상 기도라는 그 고유한 본질을 더 잘 드러내 주는 몇 몇 측면들을 밝히자면, 교황 바오로 6세의 이 드높은 생각을 잠시 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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