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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장례식 400만 애도속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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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5-04-09 ㅣ No.131

[한겨레]

 


“고이 잠드소서”지하묘지 안장
조문단배치, 프랑스어 알파벳순으로
새교황 선출에 ‘비밀단체’입김주목
지난 2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8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오후 5시) 로마 시내 바티칸 교황청의 성베드로 대성당 앞에서 엄숙하게 치러졌다.

이날 장례식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최고지도자 80여명을 포함한 주요 인사 2500여명이 참석했으며, 그의 고국 폴란드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신도 400여만명이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한국에서는 이해찬 총리, 김수환 추기경 등이 참석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교황의 장례 미사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단 의장이 집전했으며, 장례식 뒤 교황의 주검은 대성당 지하 묘지로 옮겨져 안장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장례식에 참가한 주요 인사들의 안전을 위해 로마 중심부 영공을 폐쇄했으며, 1만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고 대공미사일과 순찰정 등도 배치했다.

◇장례식 엄수=이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은 장례 미사에 앞서 고위 성직자들만 참석하는 성베드로 대성당에서의 비공개 의식으로 시작됐다. 사제들은 교황의 관 속에 은·동 메달이 담긴 주머니와 그의 생애 업적을 적은 두루마리를 넣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황의 개인 비서를 해온 스타니스와프 지비시 대주교와 전례 담당 피에로 마리니 대주교가 교황의 얼굴에 흰 비단 베일을 덮고 관뚜껑을 닫았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고위성직자들이 관을 메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계단을 내려가 바티칸의 지하 석굴로 향했다. 관은 교황과 교황청의 봉인이 찍힌 붉은 띠로 둘러져 영원히 닫혀진 뒤 아연으로 만들어진 두번째 관과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세번째 관에 차례로 넣어졌다. 이 마지막 관에는 교황의 이름이 새겨졌다.

◇조문단 자리배치 고민=교황청은 고민 끝에 장례식에 참석한 세계 각국 지도자 200여명의 자리를 프랑스어의 알파벳 순서로 배치했다. 프랑스어는 교황청이 오랫동안 외교 언어로 써온 말이다.

미 <시엔엔방송>은 이에 따라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시리아, 이란 등이 미국 조문단과 멀리 떨어지게 돼 어색함을 면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신 모하메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과 나란히 앉게 됐다.

또 이날 장례식에는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무가베는 “인권을 유린하고 사상, 결사, 평화적 시위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으로부터 입국이 금지된 상태로, 정상적으로는 이탈리아에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장례에 참석하면서 중국은 항의 표시로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

◇가톨릭 비밀단체 주목=차기 교황 선출과 관련해 가톨릭 비밀단체 ‘오푸스 데이’(Opus Dei)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단체의 이름은 라틴어로 ‘신의 사역’이란 뜻을 갖고 있다. 차기 교황을 선출할 추기경단에서는 교황청 수석 대변인인 호아킨 나비로 발스 추기경을 비롯해 최소 2명이 오푸스 데이 회원이며, 전세계 정ㆍ재계 유력인사들을 포함한 8만명이 이 단체의 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선택을 위한 천주교도’라는 모임의 프랜시스 키슬링은 “오푸스데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밑에서 전례없는 권력을 누렸으며 다음 교황 아래서도 그런 권력을 잃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교황 선출을 앞두고 있는 추기경단 내에서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오푸스 데이 등 보수 단체의 입김을 강화하면서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반면, 주교들의 역할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편, 한 인터넷 웹사이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련과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는 데 기여를 했으나 남미에서는 군사 독재정권의 편을 들고 핍박받는 민중을 외면했다고 밝혔다. 이 웹사이트는 현 교황청 2인자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칠레 대사 시절 “걸작도 사소한 결함이 있게 마련”이라며 독재자 피노체트를 칭송했던 사례 등을 꼽았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


교황 2000년 중도사임 고려


바티칸, 유서 공개

“하느님, 모두에게 상을 내려주소서.” 지난 7일 교황청이 공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서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 유서는 그가 교황 즉위 다음 해인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모국어인 폴란드어로 써 온 것이다.

유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교황이 80살이 된 2천년에 사임을 고려했고, 하느님만이 물러날 때를 결정할 수 있다며 물러날 때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는 대목이다.

또 교황은 핵전쟁 없이 냉전이 끝난 것을 두고 신의 뜻이라며 감사했고, 삶과 죽음 모두를 신의 뜻에 맡길 것임을 거듭 밝혔다.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다른 모든 것처럼 내 주님의 어머니(성모 마리아) 손에 맡깁니다. 나는 처분할 어떤 재산도 남기지 않습니다. 내가 쓴 일상 용품들은 적절히 분배되길 바라며, 개인적 필기는 태워져야 합니다.(1979년 3월6일)” 1981년 저격범의 총에 맞았다 살아났을 때는 “신이 나에게 다시 생명을 주었고, 그 순간부터 신에게 더욱 속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1992년 3월 교황은 “석관이 아닌 맨땅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적었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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