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시]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성모성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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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austin] 쪽지 캡슐

2001-05-15 ㅣ No.6139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

 

 

 

 

숱한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친 밤이면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

 

 

처음

이 낯선 땅에 보내졌을 때에는

세상을 밝히라고

한 번도 사른 적이 없던

크고 빛 고운 생명이,

부서진 조각 위에 터를 닦고

순간에 안식하던

세월을 지나는 동안

그만

유혹의 불길에 다 타고

밑둥에 심지조차 없지만

당신을 위하여

이제 다시 불을 켜겠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낮녘에

다시 되돌릴 수 없이

교만한 빛을 너울대던

촛농을 두 손에 모아

손톱 끝에 불을 지피겠습니다.

아픔이 손마디를 갉아 타들어 올 때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생각하겠습니다.

 

 

세상의 아픔을

눈물로 깨물어 옷자락에 담으신 어머니,

삶의 상처마다

바튼 아픔으로 쏟아야 하는 피가

마침내 굳어지고 졸여져서

먹으로 되기까지,

조용히 아픔에도

다져지고 다져지면,

가슴은 타오르다

재로 다 삭은 어둠이어도

어머니, 당신을 바라는

작은 불꽃으로 다시 피어나겠습니다.

 

 

하늘을 눈감고

죄 많은 흙 속을 피 흘리며 파들다

마침내는 잎새 시들고

가벼운 향내조차 빼앗긴

내 마음 아실

내 혼자 마음 낱낱이 아실

어머니, 당신 발밑에

뉘우침이 무겁던

한 송이

이름 없는 풀꽃으로

다시 피어나겠습니다.

 

 

숱한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친

그런 밤이면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

 

- 초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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