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성당 게시판

듣게 하소서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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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분 [obp70] 쪽지 캡슐

2008-09-18 ㅣ No.2735

 


 

 

    듣게 하소서 / 이해인 주여 나로 하여금 이웃의 말과 행동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하루의 작은 여정에서 내가 만나는 이의 말과 행동을 건성으로 들어 치우거나 귀찮아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가로막는 일이 없게 하소서 이웃을 잘 듣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임을 내가 성숙하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이기심의 포로가 되어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적당히 듣고 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무심함에서 나를 구해 주소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못 들은 척 귀 막아 버리고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으니까" "잘 몰랐으니까" 하며 핑계를 둘러 대는 적당한 편리주의, 얄미운 합리주의를 견책하여 주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과 사건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앉아야 할 자리에 앉고 서야 할 자리에 서고 울어야 할 때에 울고 웃어야 할 때에 웃을 수 있는 민감하게 듣고 순응하는 삶의 지혜를 깨치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자신을 잘 듣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를 잘 듣는 사람만이 남을 잘 들을 수 있음을, 당신을 잘 들을 수 있음을, 거듭 깨치게 하소서 선한 것을 지향하는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침묵과 고독 속에 자신을 조용히 숨길 줄도 알게 하소서 나는 두 귀를 가졌지만 형편없는 귀머거리임을 몰랐습니다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말만 많이 했음을 용서하소서 들으려는 노력도 아니하면서 당신과 이웃과 세상에 대해 멋대로 의심하고 불평했음을 지금은 뉘우칩니다 매일매일의 내 작은 여정에서 내 생애의 큰 여정에서 잘 듣고 잘 말하는 이가 되도록 밝고 큰 귀와 입을 갖고 싶습니다 말소리만 커지는 현대의 소음과 언어의 공해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겸손히 듣고 또 듣는 들어서 지혜를 깨치는 삶의 구도자 되게 하소서


    08.09.18 베로니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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