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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청원자 [권상연 야고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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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3-10-01 ㅣ No.3989

 

 

 

3. 권상연 야고보

 

(공주 전주 1791년 12월 8일 41세) 참수

 

 

권상연의 할아버지 권기징은 딸 다섯을 두었는데, 맏딸이 윤지충의 아버지

 

윤경에게, 둘째딸은 유항검의 아버지 유동근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래서 권상연에게 윤지충과 유항검은 고종사촌간이 된다.

 

권상연 야고보가 천주교를 믿게된 사실이 알려지자 친척들은 그를 원수처럼

 

여기고 신주를 폐기한 사실을 목격한 일가의 형 권상희는 이를 좌의정

 

채제공에게 고발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제일먼저 공격하고 나선 사람이 남인의 홍낙안이었다.

 

그는 채제공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두 사람을 처단하도록 촉구하였고,

 

당파와 관계없이 모든 양반들이 일제히 성토하였다.

 

 

좌의정 채제공은 두 사람의 행위를 패륜적 행위라고 규탄하면서

 

진산 군수 신사원에게 체포하도록 명령하였다.

 

 

윤지충과 같은 남인이었던 진산 군수는 두 사람이 지체 높은 양반의 후손임을

 

고려하여 간곡히 타일렀다

 

 

두 사람은 천주교가 이단이 아님을 항변하고 "도중에 마음을 바꿀 것이었다면

 

애당초 천주교를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1791년 12월 8일 조선에 첫 공식적인 박해로 전주 풍남문 밖 전동성당

 

자리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하였고,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가하면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달레한국천주교회사상권335)

 

(순교는믿음의씨앗이되고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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