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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석 [heodang72] 쪽지 캡슐

2002-12-31 ㅣ No.3232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어 올려봅니다.

 

출처는 조 만나스의 "햇살처럼 비껴오시는 당신"입니다...

 

 

 

 

천사와 짐승

 

 

 

마음의 회랑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보았습니다

갇힌 우리 안에서 벌이는 그들의 대결을.

 

그것은 경외심을 넘어서서

두려움이 솟아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사랑과 환희와 선의 화신인

빛의 천사가

오만과 탐욕으로 일그러진 모습의

흉악한 짐승과 벌이는 우리 안의 대결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기이한 광경 너머에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어떤 것

알 수 없지만 아주 낯익은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저의 뼛속까지 소름끼치게 하는 광경을.

천사와 짐승이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황홀한 천사의 모습과 악의 일그러진 조소 뒤에

같은 얼굴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얼굴이었습니다!

 

오, 하느님.

저는 빛의 천사이며

동시에 악의 알을 품는 둥지입니다.

그리스도와 부처가 태어난 마음이며

동시에 악의 정령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입니다.

 

저의 마음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 안에 천국과 지옥을 안고 살아갑니다

제 앞에 펼쳐진 끝없는 바다

그것은 선과 악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격랑의 바다입니다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솟아오르다가도

어느새 끝없는 어둠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저를 구해주십시오

저 자신의 어둠으로부터

잔인함과 탐욕의 숨겨진 소용돌이로부터.

제 안에서 악이 승리의 향연을 벌이거나

악마가 천사를 누르는 일이 결코 없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제게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을 내미십니다

선과 사랑과 환희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시려고.

당신은

당신의 빛 줄기, 당신의 평화

그리고 당신을 닮을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제 마음 안에

당신의 인장을 새겨 놓으셨기에

저는 영원히 당신의 소유입니다

제가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을 때

쓰레기 더미가 되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이미지

당신의 아이, 당신의 것입니다

제가 밤하늘의 별보다 빛나는 까닭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당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을 묶어 놓고 증오와 손뼉을 치고 있습니다

저는 천사가 머물러야 하는 곳에

짐승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다루기에 너무 벅찹니다.

저는 풀고 또 풀어야 할 수수께끼

하나의 물음, 하나의 신비, 하나의 미로

예언자이며 폭군, 해방자이며 배반자

예수이며 유다스입니다.

정의의 사도 라마와 부정한 라바나가

모두 저의 서로 다른 분신입니다.

 

제 스스로 판 이 함정에서 저를 구해 주십시오

사랑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으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저의 지상에서의 여정 내내

이 처절한 대결이 계속됩니다

성전에 흐르는 온갖 성스러움과

세상 안에 요동치는 온갖 악이

바로 여기 제 마음 안에 있습니다.

 

당신의 손을 가만히 잡아 제 이마에 얹습니다

당신의 비추시는 빛을 찾아 더듬거립니다

당신의 힘은 저의 투쟁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며

어떤 악의 손아귀라도

당신 사랑에 이겨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당신을 신뢰하며

새 날을 맞으러 나가렵니다.

거짓이 아닌 진실을 택하며

비겁이 아닌 연민을 지니렵니다.

 

당신이 부르신 대로

빛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힘이 어둠을 뚫고 비출 때

제 안의 천사가 승리의 빛나는 월계관을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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