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성당 게시판

내가 혼자 살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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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승 [hwang350] 쪽지 캡슐

2000-05-27 ㅣ No.483

요즘들어 왜 혼자 사느냐는 물음을 자주 듣게 됩니다.

제 주위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는데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그만큼 많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혹시라도 궁금하면서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봐 못 물어보시는 분,대충은 알면서도 자세한 내막을 모르시는 분,궁금하다고 자꾸 캐물으시는 분,차마 말로는 다 못하겠고 글로 띄워 놓으니 다들 보시고 다만 어떤 선입관은 갖지 말아 주십시오.그저 제 인생이고 현실일 따름입니다.

 

어린 시절 집안이 무척 어려웠습니다.부모님께서 조그만 가게를 하고 계셨으나 따로 집이 없었고 가게에 방이 붙어 있어 늘 가게 손님들 오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어려서부터 그동네 금방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고 그때마다 전 한 살위인 누나와 한 방을 썼습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컨만 부모님의 다툼은 어린 제게 공포 그 이상이었습니다

누나와 다락방에서 꼭 껴안고 울었던 기억,밑에선 깨부수고 소리지르고 말리고.아름답고 소중했던 기억보다는 애석하게도 그런 아픈 기억이 제겐 더 많이 남습니다.

초등학교3년때 그날도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시고는 아침 늦게야  아버지께서 저희를 깨우셨습니다.밖에서 아침을 먹으며 물었습니다.어머니는 어디계시냐고.그 때했던 아버지의 변명이 거짓말이 었음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자주 그랬으니까.

오래 지나도록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한동안 할머니가 큰집에서 오셔서 집안일을 해 주시고 친척들이 많이 오고 가며 평소 못보던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그해 겨울 새어머니가 들어오시고,오래간만에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친어머니와 연락을 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아버지에게 들키고 우린 마치 천벌을 받을 것처럼 두려웠습니다.아버지께선 아무말씀도 없었는데도 마치 큰 잘못을 한듯이.주위 사람들이 늘 하던말들 크면 다 이해할 수 있을꺼야.지금은 공부 열심히 하고 새어머니 말 잘들으렴.그 사람들이 절 얼마나 불쌍히 여겨서 그랬을까요? 새어머니도 다행히 천주교 신자였습니다.아버지는 어머니가 성당 다니시는 게 그렇게 못마땅해 하시더만 이젠 그렇지 않았습니다.다만 부모님 모두 조당에 걸려 성체를 모실 수 없게 되고 성당도 나가시지 않고.누나도 저도.밤에 몰래 울면서 성모님께 기도드렸습니다.어머니 잘 지내게 해달라고.그후 한동안 어머니를 볼 수 없었습니다.아니 마음에서 멀어지더군요.불효막심하게도 마치 어머니를 생각하면 벌을 받을 것처럼.결코 새어머니가 싫진 않았습니다.그 좁은 집에 들어와 우리들 밥 해주시고 빨래 해주시는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첨엔 어려웠지만 나중엔 쉽게 어머니라 불렀습니다.다만 일상생활 버릇이며 예의며 엄하신 새어머니 잔소리에 눈치를 많이 봤을 따름입니다.항상 그렇게 눈치보며 살고 기가 죽어 살았던 기억 납니다.내색 않으려 어머니 앞에선 웃었지만.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그동안 얼마 되지도 않는 가족사진 앨범마다 다 꺼내시더니 몽땅 짖으시더군요.아버진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시고 그걸 보던 전.여기도 있어요 여기도 하며 고이 간직하던 마지막 어머니 사진까지 내놓았던 기억납니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병신같은 짓이었나

시간이 많이 흐러가고 제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여전히 집은 많이 어려웠고

방과후 가게 보는 일은 제 일이 되었습니다.틈틈히 공부해가며 몰래 티비보며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부모님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받아온 제 자신이 기특했습니다.누나는 갈수록 집 밖을 나가지 않고 갈수록 말수가 줄어들고

혼자 괜히 울고,불쌍했습니다.난 아무렇지 않은걸.

중학교를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늘 가고 싶어하던 동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어버지는 어머니와 그랬듯이 새어머니와도 자주 싸우시더군요.돈 때문에(후에 그문제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그나마 절 지켜 주던건 저의 친구들과 신앙이었습니다.그런 믿음을 성모님꼐서 알아주셨습니다.

딱3년전 오늘 학교 수녀님께서 절 부르셨습니다.누군가에게 전화가 와서 제 얘길 했다고.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굳굳이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인데 신앙심도 깊고 착하고 어쩌고 마치 다큐멘타리에 나오는 어려운 아이들 얘기 마냥 제겐 딴 세상 얘기로 들렸습니다.스스로에게 늘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암시를 줘왔기에

수녀님께서는 제게 부담이 될 정도의 도움을 주시더군요.졸업때까지 전액 장학금에 식권도 주시고 게다가 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셨습니다.사랑의 선교 수사회.

학교와5분 거리인 그곳은 제가 갈 수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병들고 갈 곳없는 노인들,장애인들을 위한 집.주님 사랑으로 가득한 이들이 모인 집.저처럼 사지 말짱하고 젊고 주님 사랑 모르는 놈은 갈 곳이 아니었습니다.반대하리라 생각했던 새어머니도 그때까지 누나와 한 방(아니 다락)쓰는 제가 안쓰러웠는지 절 믿으셨는지

절 보내주셨습니다.그 때부터 전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혼자는 아니었습니다.늘 주님께서 곁에 계셔주었고,새 가족들도 생겼습니다.자케오 아저씨,신동이 형,요셉 아저씨그 밖에 많은 아저씨들 그리고 수사님들.봉사자님들까지도 모두 저의 가족이었습니다.그때 뼈절이게 느꼈습니다.난 얼마나 행복한 놈인가.거기 있던 요셉 아저씨는 움직일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항상 침대에 누워 식사를 비롯한 모든일을 주위 사람이 해 줘야만 하는 분이셨습니다.아저씨는 그저 입에 막대기 하나만 문채 티비 채널을 돌리는 게 모든 일상생활이었습니다.그러면서도 가끔씩 농담도 하시고,모든 분ㄷ르이 다 그랬습니다.다리가 없으신 분,말을 잘 못하시는 분,등이 굽은 분등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그 분들의 도움으로 그리고 주님의 도움으로 금방 적응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오시는 손님들 마다 전 스타였습니다.너가 야고보니?신학교 갈 꺼라면서?

그 분들의 사랑 정성 전 너무 감사했습니다.제가 들어가고 얼마 후 사랑의 선교회 창시자이신 데레사 수녀님께서 별고하셨습니다.온 가족들이 슬픔에 잠기고(그다지 슬픔은 아니었는듯)저희 집엔 분향소가 마련 되었습니다.전 그대 야자해서 들기만 한 얘기지만 매일같이 수백명의 조문객이 오가고 방송국,신문사에서 울 집 가족들 다 찍어갔다고 하더군요.김수환 추기경님도 방문하시고.마치 뭐 있냥~

이듬해 그 수도원이 건물이 낡았다는 이유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새검정 신영동에 있는 집으로 전 학교 때문에 그 곳에 더 남아 있었으나 조마낙ㄴ 그 건물이 공사에 들어가 그곳을 나오게 되었습니다.때마침 역시 수녀님의 도움으로 누군가가 저의 거취를 마련해주시겠다고 그래서 그 근처(삼선교)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습니다.그 누군가가 처음엔 몰랐지만 그게 저의 친어머니셨습니다.어머니는 항상 제 생각에 잠못이루셨다고 하시더군요.그러다 제가 동성고등학교 입학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다만 제가 상처 받지 않게 하시려고 익명으로 절 도와주셨다고요.참고로 어머니는 좋으신 분과 재혼하셔서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시고 조당도 풀려서 기도 생활 열심히 하시며 넘 행복하게 잘 지내시더군요.

더구나 그 이전에 누나를 데려가(데려간다는 표현이 뭣하지만 어째든 누나는 호적을 파서 어머니에게 갔습니다)대학도 보내주시고 하숙을 시켜주셨습니다.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건 제가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그리워서였습니다.어머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바로 수녀님과 연락중이셨기 때문에.그 때부터 전 조금씩 정신적,물질적으로 안정을 갖게 되었습니다.어리다면 어린 시절 가장 어려운 점은 외로움이었습니다.힘들고 지칠때 집에 와서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음은 외로움을 넘어 고통이었습니다.특히 아플때(전 이상하게 많이 아팠습니다)기쁠 때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어머니가 도움을 주시면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어머니 역시 가정이 있으므로 절 한없이 도와줄 수는 없었고,무엇보다 밥 문제가.혼자 있어 잘 못챙겨 먹기도 했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수녀님과 주위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겨 나갔습니다.혼자 살면서 많은 자유를 누리며 때론 후회하고 때론 자책하며 나름대로 강인해졌습니다.사실 잘 못한 점이 너무나도 많지만 어린 시절 남보다 조금은 더 많은 고생을 하며 남들이 겪어 보지 못한 아픔을 맛보며 전 커왔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와 지금은 한결 여유있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불투명하기만 하던 제 인생에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 앞날이 열려 잇고,한상 받기만 하던 도운 이젠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앞으로 또다시 어떤 시련이 온다해도.그래서 고통을 느낀다해도 항상 주님만은 함께 계셔주리라 믿습니다.제가필요로 하는 것들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님께 받지 못한 사랑이 제 짧았던 삶중에 가장 안따갑습니다.

전 여전히 많이 사랑이 부족하고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저와 제 주변 모든 사람들과 그 부족한 사랑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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