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사랑이라는 이름

인쇄

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1999-09-17 ㅣ No.266

스승과 제자가 한 전쟁터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적으로 만나야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들은 함께 생활했던 교실이며 또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던 교정의 벤치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만난 곳은 전쟁터이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고 말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쏴라!"

먼저 스승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어찌 스승을 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쏘십시오."

제자 또한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돌렸습니다만 스승 역시 사랑하는 제자를 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함께 쏘자."

스승은 방법을 강구해 내었고 제자는 스승이 마련한 그 방안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습니다.  함께 쏘기로 하죠."

하나, 둘, 셋.  구호가 떨어지자마자 요란한 총성이 올려 퍼졌으나 쓰러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스승이었습니다.

제자가 울부짖으며 황급히 쓰러진 스승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제자는 구호 소리에 맞춰 총을 쏘았건만 스승은 쏘지 않았던 것입니다.

스승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는 제자의 가슴에 안겨 스승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글은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제목의 이정하산문집에서 얻어서 적었습니다.



9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