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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순 주교황청 한국대사 특별기고: 모든 것 내려놓음에서 시작하는 교회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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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30 ㅣ No.86

한홍순 주교황청 한국대사 특별기고

모든 것 내려놓음에서 시작하는 교회의 새로운 도전





- 베르골료 추기경이 교황이 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복음화하는 교회의 근본 사명을 수행할 것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뜻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교황청 숙소 발코니에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CNS】


2월 11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 발표, 2월 28일 교황 사임과 동시 사도좌 공석, 3월 4일부터 진행된 추기경단의 교황 선출 준비 총회, 3월 12일 콘클라베 개회에 이어 3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기까지 한 달 동안 전개된 교황청의 동정, 이후 새 교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일은 벅찬 감격 그 자체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자기 비움

종신직인 교황직을 스스로 내려놓은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어느 누구도 예상 못한 것이거니와 오로지 하느님과 교회 사랑에서 우러나온 그분의 자기 비움(kenosis)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일컬어 보수주의자라며 비판의 날을 세워온 이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어떤 의미에서 교황의 자진 사임은 교황직 수행의 전범(典範)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혁명적인 사건으로 교회 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교회는 오로지 하느님께서 맡기신 인류 구원 사명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항상 개혁을 이뤄 나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교회라는 배는 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배를 가라앉게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월 27일 마지막 일반 알현 때 하신 강론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요청에 꼭 알맞은 바로 그러한 분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세우셨다.

3월 13일 저녁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신자들에게 첫 인사 말씀을 하시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해서 "안녕히 주무십시오. 편히 쉬세요"로 끝낸 교황의 말씀은 참으로 소탈한 어투여서 그 자체가 감동으로 모두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씀 가운데 한 마디도 자신을 가리켜 교황이라고 하지 않고 로마의 주교라고만 한 것은 바로 자신의 교황직무 수행 자세를 가늠하게 해 주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인사 말씀 끝에 "이제 여러분을 축복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주교가 백성을 축복하기에 앞서 여러분이 주님께 빌어 저를 축복하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제 침묵 중에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말씀하시면서 교황께서 신자들을 향해 머리를 깊이 숙이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와 모든 신자들이 서로 섬기며 이루는 친교를 체험하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신선한 충격은 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가 교황명으로 등장한 것이다. 교황께서 3월 16일 언론인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친히 들려주신 배경은 이러하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세요"

"교황 선출 당시 제 옆에 상파울루 전임 교구장이며 교황청 성직자성 전임 장관인 클라디오 움메스 추기경이 있었습니다. 득표수가 3분의 2를 넘어가자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때 제 가까운 친구인 움메스 추기경이 저를 포옹하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제 안으로 들어왔어요.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니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개표가 끝날 때까지 숱한 전쟁을 생각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평화의 성인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제 마음으로 들어온 겁니다. 그 분은 제겐 가난의 사람, 평화의 사람, 하느님의 창조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분이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과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지 않아요. 안 그래요? 그분은 우리에게 이러한 평화의 정신을 주는 분, 가난한 사람입니다.… 아. 가난한 교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제가 얼마나 바라는지요!"



- 한홍순 대사 부부가 22일 교황이 교황청 주재 외국 대사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2일 교황청 주재 외국 대사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좀 더 자세하게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한 까닭을 말씀하셨다. 그 첫째 이유로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이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셨다. 아울러 특히 부유한 나라들에 널리 퍼져 있는 심각한 정신적 빈곤 상태를 강조하셨다. 즉 베네딕토 16세가 '상대주의의 독재'라고 부른 이러한 정신적 빈곤은 자신만을 궁극적 척도로 삼아 결국 사람들 간의 공생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따라서 둘째 이유는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일하라고 촉구한다는 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진리 없이는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사람 마다 자신만을 척도로 삼는다면 참된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교황은 로마 주교에게는 폰테피체(Ponte fice)라는 명칭도 있는데, 그 말은 '다리(Ponte)를 놓는 사람', 곧 하느님과의 다리 그리고 인간들 간의 다리를 놓는 사람을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들 간의 대화가 모든 사람들 간의 다리를 놓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교황은 여기서 종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사람들 간의 다리를 놓을 수 없거니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하느님과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교황은 특히 종교 간 대화, 특히 이슬람과의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지적하셨다.

교황은 교회는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증진하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직도 교황청과 외교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과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희망을 피력하셨다. 구체적으로 거명하시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교황은 무엇보다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처럼 물질적ㆍ정신적 빈곤을 퇴치하는 일, 평화를 촉진하고 다리를 건설하는 일,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신다.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삼으신 교황은 결국 프란치스코처럼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삶의 양식을 교회에 제시하며 자신부터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계신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 되신 다음에도 평소 청빈한 예수회 수도자답게 해오시던 검소한 생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베드로좌에 오르신 교황으로서도 그대로 이어 가신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교황직 수행의 전통적 격식을 매우 간소화한 것이다. 교황의 복장과 차림새만 해도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명으로 선택한 것에 걸맞게 매우 검소하다. 교황 즉위식 미사도 '로마 주교의 베드로 직무 시작 미사'로 명칭을 바꿔 매우 검소하게 거행했다. 교황직 시작 미사에 참석하려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는 로마로 오지 말고 그 여행 경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권고하기도 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세우신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복음 선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이외의 모든 것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오로지 자신을 복음화하고 교회를 복음화하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교회의 근본 사명을 수행하라는 하느님의 도전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각 지역 교회부터 이 도전에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 정진석 추기경(가운데)과 정부 경축사절단이 19일 교황직 시작미사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을 첫 알현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강대수 과장(왼쪽부터),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 추기경, 강봉석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 한홍순 대사.

[평화신문, 2013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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