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대림 제4주일] 그 이름 예수 (루카 1,26-38)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7-12-24 ㅣ No.72

 

[대림 제4주일] 그 이름 예수 (루카 1,26-38)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주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시켜 다윗 임금에게,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2사무 7,1-5.8ㄷ-12.14ㄱ.16)
다윗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8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가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 16,25-27)
형제 여러분, 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알리자,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한다. (루카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대림 제4주일 제1독서(1사무7,1~5.8ㄷ~12.14ㄱ.16)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네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8~9)

 

사무엘 2권 7장 8절부터 16절까지는 그 유명한 '다윗 계약'(david's covenant)이 주어지고 있다. 

하느님의 대변자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다윗과 맺으신 편무(片務)

계약인 다윗 계약은  만왕의 왕, 만방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육적, 혈통적 후손으로

오셔서 영원히 왕 노릇하실 것을 암시하는 계약이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복음이요 약속인 여자의 후손 언약(창세3,15) 이후 맥맥히 이어온

그 이전의 모든 구약의 계약을 총망라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다윗 계약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사무엘 2권 7장 8절, 9절다윗 개인의 영광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그 다음 7장 10절, 11ㄱ절이스라엘의 평화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7장 11ㄴ절~16절다윗 가문의 왕권 보존과 성전 건축에 대해 약속하시는 내용이다.

 

한편 이러한 다윗 계약은 하느님의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는 명령으로 시작된다.

즉 하느님께서는 계약의 대상'나의 종 다윗'으로 명명하신 것이다.

 

사무엘 2권 7장 8절 이후로는 하느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오늘의 모습까지 이끌어

오셨으며,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높이실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에

'나의 종'이란 칭호는 과거의 신실한 다윗의 행적을 보여주는 영예로운 호칭임과

동시에 그가 하느님 대전에서 언제나 섬기는 자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을

암시해 주는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울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자세를 상실했기 때문에 왕의 지위를 박탈당했다(1사무15,22).

그러나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영원한 왕권을 세우셨다

(이사42,1; 마태12,18).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그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자로 세우고자 뜻하셨기 때문에

그를 이미 '나의 종'으로 확정하여 부르고 계신 것이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취하여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기 때문임을 밝힌다.

 

여기서 본문 서두에 나오며, '나는'으로 번역된 1인칭 대명사 '아니'(ani)는 강조 용법이다.

이것은 '너를 ~데려다가'로 번역된 '레카흐티카'(leqahthika)이미 1인칭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니 레카흐티카'(ani leqahthika)를 번역하면,  

'나, 곧 내가 너를 취했다'가 되며, 이것은 하느님의 절대 주권적 행사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양 떼를 따라다니던 목장에서'로 번역된 '민 한나웨 메아하르 핫촌' (min hannaweh meahar hatson; min~에서, hannaweh 목장, meahar 따라다니던, hatson 양떼를)에는 '~로부터' 뜻의 출신을 나타내는 전치사 '민'(min)이 맨 앞에와 메아하르에 두 번 쓰였는데,

이것은 다윗의 과거 이력을 말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과거 다윗은  벽촌 베들레헴에서 이사이의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양을 치던 목동으로서, 지금의 이스라엘의 왕의 신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천한 신분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리에 있던 다윗을 친히 취하여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신 것이다. 

 

한편 '영도자'로 번역된 '나기드'(nagid)'현저하다', '보고하다' 라는 뜻의 

'나가드'(nagad)동사의 수동 사역형에서 파생한 명사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선포되어진 자','지명되어진 자'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도자('지도자'; ruler)는 스스로 권위를 쟁취한 자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지목되어 공적으로 '선포되어진 자'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은 왕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앞절에 나온  

'나의 종'이란 호칭에서 암시되는 바와 같이 계약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사울 왕도 '나기드'(nagid)란 호칭으로 불리웠던 것을 보게 되는데 

(1사무9,16; 10,1), 그는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왕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통치권을 행사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떠나 자의로 왕권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결국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그 직분을 잃게 된 것이다. 

 

더욱이 본문에서 다윗이 다스릴 백성은 그의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 이스라엘'로 소개되어 있다. 

이것은 다윗의 직분이 청지기(관리인)의 사명인 것을 확실하게 나타내 준다.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본절 서두에 나오는 '내가 ~있으면서'로 번역된 '와에흐예'(waehyeh) 

와우 계속법으로서 '와우'(wau) 접속사'하야'(haya) 동사 

미완료형이 합하여진 형태이다.

 

이 와우 계속법은 앞절에서 '너를 ~데려다가(취하여)'로 번역된 완료형  

'레카흐티카'(leqahthika)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완료형으로 번역해야 하며,  

뒤에 '물리쳤다'로 번역된 와우 계속법인 '와아크리타'(waakrithah) 

완료형의 의미로 번역해야 한다. 

이렇듯 본문이 완료형의 의미를 가지는 것을 굳이 밝히는 것은  

사무엘 2권 7장의 시기적인 배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사무엘 2권 7장 1절에서 이미 나오듯이 사무엘 2권 7장의 내용은  

사무엘 2권 6장을 곧바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무엘 2권 8장 이후에  

전쟁이 다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였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엘 2권 7장의 언급은 결국 다윗이 왕에 즉위한 이후  

사무엘 2권 8장에 나오는 데로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 당신께서 그의  

적대자를 물리쳐 주신 것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왜 사무엘서의 저자는 6장과 7장 사이의 오랜 세월동안 발생하였을  

여러 사건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 것일까? 를 묻게 된다.

 

사무엘서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이것은 그대로 지나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로운 시대를 먼저 언급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무엘 2권 8장 이후에 보면, 여러 전쟁 기사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사무엘 2권 7장은 사무엘 2권 8장에 언급된 여러 전쟁들 이후에  

찾아온 평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시기를 사무엘 2권 7장에 먼저 소개한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 2권 8장을 시작하는 '그 뒤에'라는 표현은 사무엘 2권 7장의 내용과

연관된 표현이 아니라, 사무엘 2권 6장을 이어가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말하자면 사무엘서 2권은 6장, 8장, 7장의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매끄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7장을 이런 사건이 기록된 8장에 앞서서 소개한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사무엘 2권 5장에서 언급된 웅장한 '다윗성'(5,9)과  

사무엘 2권 6장에서 언급된 주님의 궤를 모시는 천막(6,17)의 초라함

현격히 대조되고 있는 현실상의 문제를 먼저 결론 짓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자는 하느님의 성전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사무엘 2권 5장 9절에서 다윗성, 5장 11절에서 다윗궁의 건축 사실을  

한 구절로 간단히 매듭짓고, 사무엘 2권 6장에서 성전의 중심이 될 '주님의 궤'를  

다윗성에 안치한 사실을 그토록 상세하게 언급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주님의 궤'가 천막에 머문 것으로 사무엘 2권 6장을 끝내고

바로 사무엘 2권 8장의 전쟁 이야기로 이어졌다면, 독자들에게

다윗은 '주님의 궤'가 천막에 머물러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오랜 세월을 지낸 자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계약 궤의 다윗성 안치 사실을 다룬 사무엘 2권 6장에 바로 이어

사무엘 2권 7장에서는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다윗의 성전 건축에 마음을 쏟았다는 사실

분명하게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이유사무엘 2권 6장 23절에서 사울의 딸 미칼이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는 언급과 관련된 사항을 더 상세하게 확대하려는  

의도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

 

미칼 사건을 끝으로 다윗의 왕가는 사울의 왕가와는 전혀 무관하게 되었으며,  

하느님께서는 인본주의적인 왕 사울의 혈통과는 전혀 관계없는 다윗의 후손으로  

왕위가 계승되게 함으로써, 결국 신본주의적인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려 하셨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다(7,12).

 

이러한 사무엘 2권 7장의 내용이 사무엘 2권 6장과 8장 사이에 배치되어  

들어간 위치를 통해, 성경의 역사는 세상 역사와 같은 연대기적인 기술이 아니라,  

신학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연대기를 초월하여  

기술된 역사라는 사실을 확인 수 있다. 

 

한편, 사무엘 2권 7장 9절의 회상은 하느님의 주도적 역사하심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사무엘 2권 7장 6절과 9절에서 '와에흐예'(waehyeh)  

'그리고 내가 ~(하고) 있었다'라는 말이 쓰여 '말하는 주체 하느님'과  

'행위의 주체 하느님'을 일치시키는 것을 볼 때 확인된다.

 

 

 대림 제4주일 복음(루카1,26~38)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4~35)

 

루카 복음 1장 34절마리아의 말은 그녀가 동정녀였음을 확실히 해 준다. 

'알다'의 의미로 번역된 '기노스코'(ginosko; i know)'배워서 알다',  

'깨닫다', '성적 관계를 갖다' 등 다양한 의미로 쓰여지는 단어인데,  

여기서는 마지막 의미로 쓰였다.

 

이 단어의 용례는 히브리어 '야다'(yada)의 용례와 비슷하다(창세4,1; 19,8; 판관11,39).

이 단어는 현재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과거의 모든 행동을 포함한  

현재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마리아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처녀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단어의 시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제 루카 복음사가1장 35절에서 '성령'으로 번역한 '프뉴마 하기온' 

(pneuma hagion; the holy spirit)이란 단어를 문장의 서두에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방법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역사(役事)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어의 배열 순서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령'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의 창조의 능력을 나타내는 동일한 표현이다. 

 

특히 '덮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에피스키아조'(episkiazo; shall overshadow) 

미래 직설법으로서 구약에서 하느님 임재와 현존의 상징인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을 때'도 사용되었다(탈출40,34~38). 

그런데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있는 모습은  

하느님께서 능력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덮을 것이다'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그의 창조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자궁 속에 생명이 생겨나게 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의 몸에서 나게 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면서도 완전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구속하시는 

주님으로서의 자격을 충족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일반적인  

남녀의 성관계를 통해서가 아닌, 성령을 통한 동정녀 잉태의 방법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이것이 예수님 탄생의 신비이다.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여기서 '불릴 것이다'에 해당하는 '클레테세타이'(klethesetai; will be called) 

'부르다'(to call)라는 뜻을 가진 '칼레오'(kaleo)미래 수동태로, 직역하면 

'그는 불려질 것이다'가 된다. 

 

이처럼 부르는 주체가 생략되어 있지만, 이것은 태어날 아이가  

하느님에 의해 그렇게 명명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번역된 '휘오스 테우'(hyos theu;  

the son of god)이라는 표현 속에 '하느님'이라고 번역된

'테오스'(theos)의 소유격인 '테우'(theu)가 사용된 것은  

이 세상에 오실 예수님은 성부 하느님의 모든 능력과 관계를 소유하며, 

철저히 그분과 함께 할 것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한번도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신 적이 없지만, 이 표현은 세례받으실 때(루카3,22)와  

타볼산 현성용 사건(루카9,35)을  통해 하느님에 의해 사용되어졌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마태16,16)와 악령들(마르5,7), 그리고 백부장(마르15,39)등에 

의해서도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됨으로써, 이 구절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여기서 ‘여섯째 달’은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여섯째 달”입니다.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그냥 마리아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 집안에 속한 마리아’를 선택하셨음을 뜻합니다.

 

또 이것은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2-16).”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약속을 다윗 집안에 대한 약속으로만 생각했고,

 

그래서 메시아께서 하시게 될 일은 다윗 왕실의 회복,

 

또는 다윗 왕국의 재건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즉 메시아는 다윗 왕실의 회복이나 다윗 왕국의 재건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르 12,35-37)”

 

이 말씀은, “인간적인 혈통으로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인 것은 맞지만,

 

메시아가 하는 일은 다윗 왕실의 회복이 아니라 인류 구원이다.”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군중이 이 말씀을 알아들었고,

 

그래서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르 12,37).

 

사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것이나

 

다윗 왕실의 지배를 받는 것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다윗 왕국 재건만 한다면 기뻐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메시아는 다윗 왕국이 아니라 바로 ‘나를’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고, 그 계획대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인간들이 따로 할 일은 없지 않은가?”

 

(“다윗 집안의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일이 하느님의 계획대로 된 일이라면,

 

마리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작용했는가?”)

 

만일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모든 일을 당신의 뜻대로 하신다면,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뜻’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선한 일을 해도 우리의 공로가 아닌 것이 되고,

 

어떤 악한 일을 해도 우리의 죄가 아닌 것이 됩니다.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유인으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뜻’의 실현은 하느님과 인간의 합작품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거부하거나, 협력할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이 심각하게 방해를 받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어찌 되었든지 간에

 

결국에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고, 그것이 바로 ‘섭리’입니다.

 

마리아는 협력자 가운데에서 첫 번째 협력자이고, 가장 위대한 협력자입니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38).”

 

루카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랬다면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은 무의미합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응답을 보면, 천사는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계획과 그 실현 방법을 설명하면서

 

마리아의 동의와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의 경우에는

 

즈카르야의 동의와 협력을 요청한 것은 아닙니다.

 

그 경우에는, 아들이 태어나게 된다는 ‘기쁜 소식’을

 

즈카르야에게 전하기만 하는 것이 천사의 임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의 경우에는

 

마리아의 동의를 얻는 것까지 천사의 임무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응답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한 일이고,

 

그리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기쁜 마음으로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응답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말은,

 

“주님의 뜻에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종처럼 따르라고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이 스스로 종처럼 따르겠다고 겸손하게 응답한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시려고 하는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저도 원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바랍니다.’ 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은, 마리아가 소극적으로, 또 수동적으로 응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바탕으로 해서

 

적극적으로, 또 능동적으로 응답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일을, 즉 인류 구원 사업을 이미 마리아에게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바랍니다.” 라는 마리아의 말에는,

 

‘인류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과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바란다는 뜻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으로 인류 구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