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성당 게시판

어머니의 기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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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jekl20] 쪽지 캡슐

2001-04-11 ㅣ No.349

[문 밖에서]

 

 

"더 이상 들어 오시면 안됩니다."

중환자실의 문이 닫힌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를 보기 위하여, 닫히는 문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

오히려 아이는 미소를 짓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비켜주세요."

대여섯명이 이동침대에 환자를 싣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또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간다.

이동침대 위에는 얼굴과 팔에, 선혈이 낭자한 덩치좋은 청년이 누워있다.

응급실에서 바로 옮기는 것 같다.

나는 닫힌 문 위로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의 잔영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보호자 대기석으로 왔다.

뒷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아이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이 아버지는 TV를 보고 있는데, 그 내용을 받아 들이는 것 같지가 않다.

"수술은 얼마나 걸릴까요?" 아이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응?" 되묻는 아이 아버지 눈이 그제서야 좀 또렷해졌다.

"아이 수술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웬만하면, 서너 시간, 좀 어려우면 대여섯시간은 걸릴꺼야."

나는 아이 아버지를 두고, 원목실 옆의 성당으로 들어갔다.

 

’50석이나 될까?’

텅빈 조그만 성당은 분위기가 참 따뜻하다.

나는 무릎 꿇고 앉아서, 묵주의 기도를 바쳤다.

막상 슬픔이 현실이 되고나니, 더이상 눈물은 나지 않는다.

기도를 마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아이 아버지는 여전히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

나도 아이 아버지 옆에 앉았다.

"수술이 잘되면 좋겠어."

인기척에 쳐다보던 아이 아버지가 말했다.

 

오후 5시나 되었을까?

"이재경씨 보호자 되시는 분?"

녹색 까운을 걸친 의사선생님 한 분이 중환자실 문을 열고 외친다.

아이 아버지와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문 앞으로 뛰어 갔다.

"들어 오세요."

"끝났나요?"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서며, 아이 아버지가 묻는다.

나는 아이를 볼 수 있을까 해서, 여기저기 까치발로 두리번 거렸지만,

곳곳에 칸막이가 쳐져 있을뿐, 아이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중환자실 입구에 있는 간이 책상으로 안내되었다.

고무장갑을 낀 의사가 선혈이 낭자한 덩어리를 내보였다.

"이게 바로 종양입니다. 이것은 위벽이예요. 종양에 침식되어 있어 함께 도려냈습니다."

2개의 덩어리 중, 하나는 지름이 2센치 정도, 나머지는 1센치 정도다.

"아이는 어떻습니까?" 아이 아버지가 물었다.

"봉합이 끝나면, 잠이 들것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볼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

어느새 눈물이 말을 가로막는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중환자실 문 앞으로 갔다.

나는 어제 아이를 다시 본다는 기쁨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아이 아버지가 걱정할까 봐, 누운채로 묵주를 들고 밤을 꼬박 샜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우리는 다시 초조하게 중환자실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아이를 찾아 안으로 뛰어 들었다.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통증과 맞서느라고,

미간을 찌푸려 눈썹을 치켜 세우고, 이를 악물고, 두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코에 팔에 옆구리에도 링겔관이 꽂혀, 각종 액체들이 아이 몸속을 비집고 있다.

 

아이 아버지가 말문을 연다.

"괜찮냐?"

"으으 으으으으"

아이는 신음소리만 낼 뿐이다. 가슴이 저며왔다.

"괜찮아. 수술이 잘 되었어."

아이 아버지가 위로해 주시자, 아이는 바로 눈을 감았다.

"그래, 좀 더 자려무나."

나는 눈물을 훔치며,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면회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간호사의 인도로 중환자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 보았다. 아이는 곤히 자고 있다.

이제서야 회사로 향하는 아이 아버지와 둘째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시 면회시간이 가까움을 느끼고, 성당 밖으로 나오는데,

보호자석에 아이 숙모와 대녀 안젤라가 와있다.

"형님, 괜찮습니까?"

"응, 수술이 아주 잘 되었네."

"대모님, 염려 많으셨죠?"

"바쁠텐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대녀 안젤라는 참 고마운 자매다.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함께 기뻐하고 위로해주고 하는데, 내 아이만큼이나 정이 간다.

 

정오 면회시간이 되었다.

"아니, 대모님도 참... 저렇게 주먹을 꼭 쥐고 있는데, 손에 아무것도 안주셨어요?"

대녀 안젤라는 기적의 패를 아이의 손에 쥐어준다.

"으으으으으." 아이는 또 신음소릴 내었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혼자서 돌아눕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어머, 벌써 움직이네. 저녁에 일반병실로 옮겨도 되겠어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한마디 하는데, 아이가 대견스러워 보인다.

"젊어서 회복이 빠른가 봐." 동서도 한마디 거들고,

"성모님께서 대모님 기도를 들으셨나봐요." 대녀 안젤라도 매우 기뻐한다.

 

’아아, 성모님, 고맙습니다.’

 

정오 면회시간이 끝났다.

아이의 움직임이나, 간호사의 말이 자꾸 생각나며,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대모님,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죠?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제가 한 턱 낼께요."

"아냐. 내가 사야지. 동서도 같이 가자고."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병원 문을 나섰다.

 

 

[8]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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