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성당 게시판

우리의 교회가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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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04-08-21 ㅣ No.1765

우리의 교회가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길

 

한시대의 과오는 교훈으로 삼고 공적은 다듬어 미래를 열어가야만 하는것이 인류역사가 증명하고있는 현명한길이다.

언젠가 부터 이곳 공덕동성당의 상황은 겉으로는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여러가지 문제들로 신자들간의 반목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혼란스러워 하는 신자들이 밖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병들고있다.

 

교회가 어떠한 교리와 교회법을 수호하기 위해서 개인의 인격을 경시하거나 무시할수있는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안된다. 종교는 종교자체를 위해서 존재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기때문이다.

 

그중 한예를 들어보자면.  교회내의 구역정리상 타구역 거주자 들을 퇴출시키는 문제를 놓고 영세한지 얼마되지 않은사람들. 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사람들 에게는 가차없이 교적을 옮겨가라고 강요하면서 교회내에서 좀알려지고 무시할수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사를 가드라도 이곳 성당에 나와도 좋다고  하는 처사는 하느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행위이며 삼척동자가  판단해도  잘못된것임을 알수있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은 냉혹하다.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의 선상에서 삶에 지친사람들이 그나마 위안을 찾고자 교회를 찾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이를 인간답게 대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마저 약자를 차별 하고 차갑게 대한다면 그들이 갈곳이 어디겠는가.?

 

교회로 부터 교적을 옮겨 가라고 강요 받은 일부 교우들은 교회의 부당한 행위가 너무한것 아니냐고 하면서. 사무실 에서 항의 하는 사태가 일어 나는가하면. 사람을 차별하는 교회가 무슨 교회냐고 하면서 아예 냉담하는 사람들도 생기게된 사실은 실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없다.

 

역사적으로 볼때 교회가 교리와 교권사수 라는 이름아래 행해진 수많은 잘못과 비참한 처사를 아는사람은 다시한번 우려를 금할수 없을것이다.

교회는 항상 약자의 편에서 약자의 도움이 되어야한다. 그러므로 모든 아집을 버리고 교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한다 사회정의는 물론 교회의 정의도 바로 세워야한다.

 

더나아가 교회는 베푸는 자가 되어야하며. 진실과 덕망을 갖추도록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않된다.

 

*아래의 글은 함세웅 신부님의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에 대한 신학적 반성*   에서옮겨온  글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사를 새롭게 읽으면서 특히 일제 치하의 교회사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를 느꼈읍니다.  뮈텔 대주교는 프랑스 선교사로 한국에 두번 온 분으로, 한국을 아꼈고. 또 1925년에 79위 순교자를 복자위로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입니다, 최근 이분의 일기가 번역 출판된 바있읍니다, 사목자로서는 나름대로 훌륭한 분으로 평가됩니다.  이분의 일기를 번역한 선교사 한 분은 이분에 대해 "그는 한국인들의 영혼만을 사랑했지, 한국 사람과 한국은 사랑하지 않은분" 이라고 재미있게 평한적이 있읍니다.

사실 이분은 당시 고종과 그의 가문 또 프랑스,영국,미국 등 이른바 큰나라의 외교관들과만 잦은 접촉을 가졌고한국인들은 무시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일제 치하에서는 일제 당국에 호의적이었고,사범학교를 설립하자는 안중근 의사의 제안을 한마디로 묵살했으며.3.1운동 당시 만세를 불렀다 하여 용산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퇴학 처분했고. 의병을 도와준 풍수원의 정규하 신부와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은율의 윤예원 신부에게 경고와 금지 조치를 내린분으로 민족사적으로 볼때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인물입니다. 그뿐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안명근을 일본 총독부에 고발하여 그 대가로 현재 명동성당의 인근 부지 확보와 진고개쪽의 통로를 차단하는 특혜를 받기도 하였읍니다.

명동은 일본인들이 밀집해 있던 동네였고. 정자가 있던 곳으로,당시 성당의 부지 문제 때문에 매우복잡했던 지역입니다, 말하자면 애국지사를 고발하여 얻은 혜택이 명동성당의 부지 확보라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1936-42년 일제의 발악 시기에 명동성당에서는 당시 노기남 신부를 비릇한 지도급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안녕을 위해 기도드리며,일본 군인들을 위해 헌금도 하고,신부들이 신자들을 이끌고 신사 참배를하는 부끄러운 친일 행각,반민족적 죄를 범하기도 하였읍니다.

일제 치하에서의 한국 교회는 한마디로 친일파의 교회,일본의 앞잡이 교회였읍니다, 1937년 이후 경향잡지를 보면 더욱 자세히 그내용을 알수 있읍니다,참된 성령운동은 이같은 부끄러운 교회의 과거를 들추어내어 하느님과 민족앞에 사죄하도록 교회를 때리는 채찍이어야 합니다.

어제는 일본의 앞잡이였던 교회의 지도자들,주교와 사제들이 오늘은 불의한 정치 구조,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정의를 외치고 실천을 다짐하는 의로운 젊은이들에게 정치에 관여한다,교회정신에 맞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찬물을끼얹고 있읍니다 기가 막힌 궤변입니다, 반민족적,얼룩진 부끄러움을 지닌 교회의 지도자들이 오늘 다시 결과적으로 권력의 편에 서서 백성들을 외면하는 그 우를 반복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중략)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했을때 뮈텔 주교는 일본의 잔인한 침략, 야수성 등을 외면한채 단지 결과적 현상만 놓고 천주교 신자는 살인 할수 없다는 단순한 논리로 안 의사를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교회 밖으로 쫓아냈읍니다,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세례 신부인 빌렘 신부가 감옥으로 그를 찾아갔다하여 벌을 주기도 하였읍니다.

 그러나 80 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안중근 의사는민족사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사 안에서도 우뚝 선 별로 부각되고 있읍니다. 안중근 의사는 교회사 안에서 다시 살아났읍니다.부끄러운 교회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가치위에 창조적인 교회를 세우는 일, 이것이 바로 성령의 쇄신 작업이며 또한 참된 회개입니다.

(이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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