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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자 [an57] 쪽지 캡슐

2010-10-12 ㅣ No.11143


이 손은 매일 누군가를 만나면 그이의 손을 덥석 잡던 손입니다.
손은 가장 바깥에 있습니다. 화초의 제일 바깥에 꽃이 있듯이.
손은 몸 가운데서 가장 바깥으로 가서 세상을 쥐고, 흔들고, 만지고 당기고
들어 올리고, 내려놓고, 뿌리칩니다.

오늘 나의 손은 세상에 가서 토닥이는 일을 했습니다.
토닥인다는 것은 짐작이 간다는 뜻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배어든다는 뜻입니다.
토닥여주는 손은 당신의 부름에 내가 응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검은 구름에게 비가 응하듯이.

고백하자면, 나의 손은 오늘 또 적잖이 만지작 만지작하기도 하였습니다.
가볍게 주무르다 떠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쓰다듬었습니다.
나의 손은 맴돌며 좀스럽게 굴었건 것입니다.
나의 손이 그렇게 고민하였던 까닭은 나의 마음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조금의 망설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하루는 빙벽에 갇힌 듯 할것이니
얼마나 차갑게 갑갑하겠는지요.
우리는 돌아설까말까 주춤주춤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움켜잡는 손보다 머뭇거리는 손에 더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옷매무새를 고쳐주는 손은 언제나 눈물나게 합니다.
나에게 다가와서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그 일을 하는 손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 손은 실밥을 털어내 주거나 구김살을 펴주기도 합니다.
움츠러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조용하게 우리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손은 하나의 얼굴입니다. 손은 얼굴처럼 천변만화합니다.
손에도 표정이 있습니다. 힘이 잔뜩 들어가기도 하고 한없이 부드럽기도 합니다.
그러는 동안 오랜 세월을 살아온 손은 손두께가 두꺼워지고
손마디는 굵어져 있습니다.
표정을 많이 사용한 얼굴에 주름이 생겨난 것 처럼.


*시인 문태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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