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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청원자 [원시장 베드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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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나 [sanghoo] 쪽지 캡슐

2003-10-02 ㅣ No.3992

 

 

 

4. 원시장 베드로

 

(홍주 홍주 1793년 1월 28일 61세) 동사

 

 

 

원시장 베드로는 내포지방의 첫 순교자로 1788년 35세에 사촌 형인 원시보와

 

함께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것이 바로 진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앙을 받아들였다. 예비자가 된 순간부터 천주교 교리를 양약으로 생각하고,

 

어느 날 그는 이렇게 가족에게 말하고 집을 떠났다.

 

"그러던 중 1년이 지난 뒤에 어느 날 원시장이 나타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난 50년 동안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소.

 

그러나 지금은 수천 년 동안 목숨을 보전하게 해주는 약을 가지고 있소.

 

그것을 내일 설명해 주리다."

 

 

이튿날 그는 모든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세상의 시초와 마지막, 만물을 창조

 

하고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존재, 원죄와 강생구속, 하느님의 계명, 천당과

 

지옥 등 지난 1년 동안 스스로 깨우친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자 이것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원히 사는 방법이오.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유언으로 알고 나처럼 천주교를 신봉하시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날부터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힘은

 

원시장의 말보다 그가 보여준 모범 때문이었고, 특히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권유하는 열성에 감탄하였다.

 

당시 홍주 일대는 이미 천주교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음으로 관가에서는

 

항상 이 지역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원시장과 그의 사촌 원시보는 열렬한 신자로 근처에 소문이 나있었다.

 

1791년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홍주 목사는 포졸들을 풀었다.

 

원시보는 포졸들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곳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포졸들은 원시장을 붙잡고 "자내 사촌이 어디로 갔는지 빨리 대라고 채근하며

 

원시장을 홍주 관아로 끌고 가서 치도곤 70도를 치도록 하였다.

 

 

며칠 후 목사와 영장은 원시장에게 주리를 틀고 전보다 더 혹독하게 치도곤을

 

맞았다. 살점이 너덜거리고 양쪽 어깨뼈가 부러졌으며 등뼈는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났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기쁨으로 빛났고 옥졸과 아전과 포졸

 

들에게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신자가 그를 찾아 왔는데 원시장은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그때까지 예비신자였다.

 

목사는 공주에 있는 충청감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1793년 1월 28일

 

(1792/12/17) 감사로부터 원시장을 때려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형리들은 미친 듯이 그를 매질하였으나 오히려 형리들이 기진맥진하여

 

말하기를 "이놈은 매를 맞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어떻게 끝장을 내면 좋겠소."

 

"저는 매를 맞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여기 오셔서 저를 굳세게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미친 듯이 "저놈은 틀림없이 귀신을 부리는 놈이다." 하고 더 세게 치라고

 

하였다. 그것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목사는 그를 결박한 뒤에 밖에 내놓고

 

충청도 땅에서 첫 번째 순교자는 이런 모습으로 순교하였다.

 

 

 

(달레한국천주교회사상권366)

 

(순교는믿음의씨앗이되고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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