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잘 산다는 것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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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철 [ch033] 쪽지 캡슐

2001-07-09 ㅣ No.2988


 

 잘 산다는 것에 관하여.

 

또 월요일이 지나고 있다. 엔젤사랑 이수문 다두 단장이 팔당의 경관좋은  신당동 성당 묘지에 영원히 잠드는 것을 보고 온 것이 지난달 18일 월요일이었으니 벌써 3주나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나는 일상의 생활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미국에서 엔젤사랑 단원인 김석주 안드레아씨가 귀국했다. 금년 3월에 뉴욕 한인회장에 당선된 그는 정부 초청으로 열리는 세계 한인회장 회의(9-12일 서울 롯데호텔)에 참석 차 귀국한 것이다. 신체적 핸디캡을 안고 있어  어디서나 잘 자리잡기 어려운데 먼 이국 땅에서 사업도 성공하고 말 많은 외국 한인 사회에서 그것도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에서 한인회장이 되어 귀국한 것이다.

두분을 포함하여 엔젤사랑 단원들 모두 아내의 옛 성가대 친구들이기에 결혼 전후 먼 발치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한 두 번 보았을 뿐 개별적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던 분들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엔젤사랑 미국 공연을 앞두고 부족한 인원 보충 차원에서 성가는 커녕 노래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내가 엔젤사랑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엔젤사랑과의 우정도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위의 두 분과의 우정도 갖게된 것이다.

오늘은 두 분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엔젤사랑 결집을 더 공고히 하고 덧붙여 활력을 잃은 청량리성당 게시판이 생동감을 찾았으면 한다.

 

이수문 다두 단장은 비록 일찍 죽었지만 세상을 잘 사신 분이고 또 김석주 안드레아씨는 잘 살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99년 12월 말 김석주 안드레아씨가 KBS- TV의 "이것이 인생이다" 프로그램 촬영을 위하여 귀국했을 때 엔젤의 옛 친구들이 청량리 성당에 모여 미사봉헌을 같이하며 동시에 촬영에 협조도 했다. 미사 후 식사와 여흥을 하면서 안드레아씨의 미국 공연 제의가 있었고 옛 친구들의 승락으로 엔젤사랑의 뉴욕공연이 결정되고 연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사에는 참석했지만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은 나는 뒤에 그날 있었던 미국 공연 계획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게 그것이 무모한 것임을 이야기했다. 항상 함께하는 가까운 친구들과의 국내 관광 여행도 잘 되지 않아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와  입장과 환경이 모두 바뀌고 가정과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인데 어떻게 매주 연습과 일주일 이상의 해외 여행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습은 계속되었고 출발을 한달 남짓 앞두고 급기야 나도 그 일원이 되고 만 것이다. 남과 사귀는데 서투른 내가 쉽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다두 단장의 배려가 컸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좀 거북했으련만 내색하지 않고 분위기에 편하게 접근하게 했다. 그리고 그의 리드로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연주 여행을 끝까지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두 단장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가 죽기  며칠 전 요양 차 장호원에 내려갔다.  그의 차를  내가 운전하여 가야했다. 장호원은 내가 종종 충주호로  낚시 다니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다음 번에 갔다 올 때에는 잡은 고기를 나누어주고 또 빌린 집에 있는 텃밭을 가꿀텐데 야채 재배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빌린 집을 여기저기 찾아보니 작은 농기구들이 있어 찾아놓고 다음을 기약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는  3일만에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운명을 맞은 것이다. 오랫동안의 직장 생활을 하여서 이제는 한숨 돌리면서 즐기면서 살 때가 되었는데 아깝게 가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보면서 비록 일찍 갔지만, 그는 참 잘 산 사람이고 그리고 행복한 죽음을 맞은 분이라 생각한다. 죽기 전날 그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고 짧은 시간 내에 엔젤사랑 단원들에게 연락이 갔고 연락을 받은 많은 단원들이 모여들었다.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자정이 넘을 때까지 거의 전 단원이 연이어 왔다. 호흡하기도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는 눈을 떠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옛 친구들을 보면서 흡족해 했다. "안드레아 형님 저 어제 고추 심었어요."- 내가 야채 재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전에 본인이 벌써 했다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 고추의 수확도 못보고 운명한 것이다. "다 보았어. 내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보고 싶은 사람이 없느냐는 단원들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는 가족들의 바램과 옛 친구들의 기대를 저 버린 체 그의 운명을 다하며 떠나갔다. 우리는 모두 그가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죽음에 알게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어 다시 엔젤의 옛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장례 미사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그의 직장 동료들의 조문도 연이었다.

그가 운명하고 나자 곧이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일기 예보에도 없던 오랜 가뭄이 끝난 것이다. 모두 그가 비를 몰고 왔다고 했다.

그의 장례미사에는 많은 옛 친구들이 마지막 가는 그를 기리며 성가를 같이 했다. 지방 근무를 많이 한 그는 자기 본당 사람들에게는  다소 소원하였으리라. 그의 본당의 많은 성가 대원들이 생소한 우리를 보고 고인과의 관계를 묻고 그 분은 세상을 잘 사신 분 같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을 좋아한 그를 위해 부인 세실리아 자매님은 장호원 성당에 백일 동안 그의 영혼을 위한 지향으로 미사 봉헌을 한다고 한다. 엔젤사랑 단원들도 토요 특전 미사 후 다음 주 성가 연습이 끝나면 그의 영혼을 위한 묵주기도 1단씩을 바치고 있다.  그렇다. 그는 이 세상을 참 잘 산 사람이다. 일찍 가서 가족들의 슬픔이 크고 옛 친구들의 아쉬움도 크지만 적어도 그의 죽음만은 잘 산 사람의 길 그리고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원들이 흔히 "우리들의 영웅"이라 하는 김석주 안드레아씨는 그 말에 걸 맞는 사람이다. 그가 신체적 핸디캡을 안고 사업에 성공했고 또 뉴욕 한인회장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내면의 세계가 맑고 건강함을 안다면 그는 세상을 참 잘 살고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진하게 받을 것이다.

지난해 미국 연주 여행 때 단원들은 그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25명 정도의 많은 손님이 일주일 이상 붐볐으니 얼마나 요란했을까는 설명 안 해도 짐작이 가리라. 그는 그때 "나는 장애인이고 유색 인종이지만 미국에 산 25년 동안 단 한번도 차별 대우를 당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나는 미국 속의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속의 미국인이 되려고 노력 해 왔고 그 결과 미국의 주류로 자리잡아 왔다" 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금년 봄 김석주 안드레아씨가  뉴욕한인 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인터넷으로 그의 선거 사무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인터넷방송으로 그의 선거 연설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는 그때 " 한인 회장에 당선  되더라도 뉴욕 한인 회장으로서 뉴욕에 있는 한인들을 위해 일 할 것"이라고 했다. 한인 회장이 되면 본국 정부와 관계를 갖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정치적 행보를 하려고 하는 전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기가 마음에 두고 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온 정성을 다하여 대하였다. 그것이 한 사람이건 또는 단체이건, 또 단체라도 그 소속원 하나 하나에도 같은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인도 칼카타에서 평생 빈민 구제활동을 한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위대했던 것은 몇 만명의 많은 빈민 구제를 하면서도 그 빈민 하나 하나에 할 수 있는 인간적 정성을 다 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존경하는 것이다.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살아온 연륜과 경험 때문에 때로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옳지 않은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싶은 옹고집 때문 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잘 살아야 하는 결과에만 매달리고 진정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잘 산다는 것은 대하는 사람에게 때로는 자기를 버리고 접근하는 봉사의 자세에서 우러난다는 것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내 주변에 최선을 다하여 결국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보기 좋은 자녀로서 태어나는 것이 잘 사는 길이 아니가 한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을 두 친구의 관계를 들어 엔젤사랑들과의 특이한 우정 사례를 들어보았다.

이수문 다두 단장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또한 이번에 귀국한 김석주 안드레아씨의 앞길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15일에 있을 엔젤사랑의 환영행사에서 즐거운 시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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