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성당 게시판

(펌)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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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숙 [m.maria] 쪽지 캡슐

2001-12-01 ㅣ No.1356

(루가복음 17장 11절 ~ 19절)

 

몇년  전 브라질의 유명한 아마존숲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숙소인 호텔에는 40m나 되는 아주 큰 나무 꼭대기의 나뭇가지 사이에다

꼭 까치집처럼 지은 방이 있었습니다.

그 호텔에서 그 방이 제일 비싼 방이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한참 올라가야 되는 그런 방인데,

또 역사적인 일이었기에 그 방에 들어가 며칠을 유숙하였습니다.

밤에 자는 동안에 지붕 위에 원숭이들이 모여가지고 얼마나 시끄럽게 하는지 정신이 없고,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면 문앞에 원숭이들이 모여 있다가 막 달려듭니다. 먹을것을  좀 달라고,

그런 아주 짐승들 속에서 며칠을 지내는 좋은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 호텔의 사장되는 분과 제가 좀 사귀었는데,

이 분하고 같이 숲을 지나가는데 이 짐승들이 그 사장이 누구인지를 다 압니다.

바나나를 한 바구니 들고 가면서 특별히 어린 원숭이들이 올 때 하나씩 주는데,

이상한 것은 이것을 받아갈 때 녀석들이 탁 잡아채듯 빼앗아 달아나버리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그렇게 준다는데도 그것을 좀 공손하게 받지를 않고

이렇게 버릇없이 잡아채어 도망을 갑니다.

’저것들이 왜 저럴까/’ 그래 왜 저러느냐고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했더니 전문가인 그 사장은 "이것이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입니다"하고

아주 인생철학을 피력합니다."동물은 내가 한평생 바나나를 주어도 고마운 줄 모릅니다.이게 특징입니다."

"왜 저렇게 도망은 갑니까?" 그것은 불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이것을 주고 제놈들 붙잡을까봐 그저 이것만 받아가지고는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참 귀중한 진리를 들었습니다.

공산권을 방문해 보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못삽니다.

못사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간단합니다.

공산세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공산세계에서 많이 듣는 말이 혁명입니다.

혁명,투쟁,쟁취,,,,,,

지금 북한에서는 식량이 모자라서 ’남새채취 작전’을 펼칩니다.

’혁명입니다’

저들은 그것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들판에고 산에고 일제히 나가서 먹을 만한 풀은 다 뜯어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 온 시민이 다 나서서 지금 풀 뜯기 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혁명,파업,쟁취,,,,,이런 것을 통해서 얻는 것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것은 빼앗은 것이니까요.

그래서 붉은 띠를 두르고 나서서 ’결사투쟁’이니 뭐니 하는것을 볼 때마다 참 마음이 서글퍼 집니다.

저렇게 해서 얻는 것도 별로 없지마는 얻어도 불행한 것입니다.

왜요? 감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해서 얻은 것은 빼앗은 것이지 얻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하지 않는다고 벌하는 형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탈무드>에 정곡을 찌른 명언이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을 하는님께서 만들지 아니한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이미 불행으로 벌하셨기 때문이다.’

감사할 줄 모를 때 이미 그는 불행이라는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새삼 벌할 것도 없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다고 감옥에 보내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벌써 불행이라고 하는 심판을 받고 있더라, 그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열 문둥병자를 만나셨다.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문둥병이라는 것은 언제 걸리는지도 모르게 걸려가지고 서서히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참 비참한 병입니다. 손발이 떨어지고, 코가 떨어지고, 눈알이 빠지고,,,,

이러면서 마지막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병인데, 그 당시 이것은 난치병이요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이 병에 걸렸다하면 가정으로부터도 격리됩니다.

사회에서도 버림받습니다. 심지어는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어느 동굴같은 데 모여 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조금씩 식량을 보내주면 그걸 먹고 삽니다.

만일에 식량이 부족해 지면 떼를 지어 동리에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 얻어먹는 그런 집단입니다.

본문의 열 문둥이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주받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이 불쌍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병고쳐 주셨습니다.오늘 본문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고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제사장이라면 당시에는 의사입니다.그런고로 문둥병이 나았는지 문둥병이 아직 있는지 제사장이 판단을 합니다.

제사장이 "너는 나았다"하고 인정을 하면 그때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낫지도 않았습니다. 안수라도 받았거나 안찰받은 것도 아닙니다.

깨끗해진 것도 아닌 상태인데 그 몸들을 제사장들에게 가서 보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가야 합니까,말아야 합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이만큼의 믿음이  있었고, 이만큼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가는 길에 보니 나았습니다.

얼마나 희한합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바로 그 순간 그 중 사마리아사람 하나는 발길을 돌려 예수님께로 왔고, 발 앞에 끓어 엎디고 사례하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감사가 조건은 아닙니다.감사가 그들에게 주어진 강한 의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렇게 와서 감사하는 자를 기쁘게 여기시되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바  없습니다.

돌아와서 감사해야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하십니다.

무슨 영문입니까.

 

섭섭해 하시는 겁니다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감사는 의무가 아닌것입니다. 감사는 조건도 아닌것 입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자원적으로 와서 감사하는 것을 기뻐하고 계십니다.

’그래야 마땅하지 않느냐’어쩌면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핵심진리 이겠습니다.

뭐, 그 사람들 감사 안했다고 해서 병이 재발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너는 감사하지 않았으니 영원히 문둥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실 예수님도 아니십니다.

그러나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하십니다.

"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 이렇게 서운함을 드러내십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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