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원효와 예수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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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택 [stwee] 쪽지 캡슐

2001-12-11 ㅣ No.1752

통일신라 시대에 원효대사가 있었다.

이분은 귀족가문에 태어나서 ( 그 시대에 귀족가문이 아니고서는 승려가 될 수 없었다.) 많은 공부를 하고 당나라로 구도의 길을 갔다가 깨달음을 얻고 신라로 돌아와서 당대 최고의 고승으로 이름을 떨치다가 갑자기 요석공주와 사랑을 하여 파계를 하고 그 뒤로는 소성거사라고 이름을 바꿔서 밑바닥의 하층민들에게 불법을 전하면서 일생을 보냈다. 왜 그렇게 덕이 뛰어난 분이 한갖 과부 공주에게 빠져서 파계를 하였을까?

 

그 당시 불교는 귀족들만이 믿을 수 있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은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귀족들만이 가능하였다. 먹고 살기 바쁜 일반 백성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싶어도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어려운 불교 이론을 듣고 또 불경을 읽는 것은 대부분이 문맹인 그 당시 백성들로서는 불가능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백정이나 문둥이들 같은 하층민들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 사람을 깨닫게 하고 행복해 질 수 있는 복음의 말씀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반 백성들과 하층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는 말이었다. 그러면 극락 정토는 귀족들만이 갈 수 있었다는 말 밖에 더 되는가? 귀족들은 살아서도 편하게 살고 죽어서도 극락에 갈 수 있는 반면에 평민들은 살아서도 고생하고 죽어서도 극락에 갈 수 없었다면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을까?

 

원효대사는 그런 백성들 특히 버림받은 하층민들이 가엾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보살의 마음으로 불쌍한 하층민들에게 가서 불교를 전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 사람들이 알기 쉽게 복잡한 교리는 빼고 알기 쉬운 기본적인 교리만 가르치면서 힘들더라도 선업을 쌓으면서 살라고 가르치려 하였었다. 그런데 그렇게 더럽고 세속의 때가 묻은 사람들에게 귀족 출신의 당대 최고의 고승이 다가 갈 때 보잘 것 없는 하층민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을까? 원효대사는 그런 점을 고민하다가 스스로 그들과 같은 죄 많고 때묻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는 파계를 한다. 그렇게 파계를 하고 때묻은 사람이 되어서 스스로를 낮추고 하층민들에게 접근해 갈 때 그 사람들도 원효를 한식구로 받아 들이게 된다. 몰로카이 섬에서 평생 문둥이들을 위해 헌신하였던 다미안 신부님이 스스로 문둥이가 되기를 원하셨고 결국은 문둥병자가 되어서 돌아 가신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주려는 고귀한 사랑의 마음이 원효대사가 남긴 모든 저술과 사상 보다도 더 사람을 감동 시킨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던가.

 

가나안 지방의 보잘 것 없었던 하비루들 사이에 생겨난 유대교는 발생 초기에는 사회적인 약자들, 하층민들, 과부와 고아들에 대하여 끊임없는 관심을 보였었다. 야훼 하느님께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게 되리라고 싫어하셨던 왕조 시대에 들어 왕들과 귀족들의 끊임없는 방탕과 백성들에 대한 착취에 맞서 야훼께서 보내신 수 많은 예언자들이 경고하고 단죄를 하였었다. 야훼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약자 편이셨다. 세월이 흘러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는 그 당시 사제 계급들이고 물질적인 사두가이파와 고고한 삶을 추구하였던 바리사이파 사람들 모두 고단한 서민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난하고 문맹이었던 일반 백성들 특히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갈릴리지방 사람들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그 사람들은 초기 유대교에서 하느님이 보여 주셨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신을 잊어 버리고 피안의 언덕에 서서 저 낮은 세속의 골짜기에서 악다구니를 써가며 살아가는 민중들을 비웃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는 부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허위 의식을 버리라고 갈파하시고 가난한 과부, 어부, 어린이, 창녀, 세리 같은 그 당시 사회에서 천대 받던 약자들에 대한 가이 없는 사랑을 보이셨다. 그렇게 사회적 약자들 편이셨던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중세에 들어 왕족과 귀족들과 가까워지면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자 마녀사냥 같은 일이 벌어지고 결국은 종교분열로 이어졌다.

 

세월은 흘러 현대의 교회는 초기 유대교와 예수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셨던 사회적약자들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원효대사와 예수님처럼 고단한 민중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 여유가 없이 허덕거리며 살아 가기 바쁜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과 희생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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