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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교리서39: 도덕적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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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1-11 ㅣ No.254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39) 도덕적 양심

양심, 선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잣대

 

"인간은 양심의 깊은 곳에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한 법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이 거기에 복종해야 할 법이다. 그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고 실행하며 악을 피하도록 부른다.…이렇게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기 마음 속에 새겨 주닌 법을 지니고 있다"(1776항). 하느님께서 인간 마음에 새겨 주신 이 법은 바로 양심, 도덕적 양심입니다. 도덕적 양심에 대해 살펴봅니다.


양심의 판단(1777~1782항)

인간 마음속에 존재하는 도덕적 양심은 때마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만 그릇된 선택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고발합니다. 그래서 나쁜 짓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도덕적 양심에 귀를 기울일 때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도덕적 양심은 이성의 판단입니다. 이 양심을 통해 인간은 자기가 하려는 행위와 하고 있는 행위, 그리고 이미 행한 구체적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말과 행동에서 자신이 정당하고 옳다고 여기는 것에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양심의 판단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법이 명하는 것을 알고 깨닫습니다.

따라서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1779항)이 중요합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설파했습니다. "양심으로 돌아가 물어보십시오.…형제들이여, 내면으로 돌아가 그대들이 하는 모든 일의 증인이신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이렇게 자기 내면으로 돌아오는 일은 오늘날에 더더욱 절실합니다. 반성이나 자기 성찰 같은 내면을 돌아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양심의 판단에 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즉 양심과 자유에 따라 행동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간은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양심과 자유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되며, 특히 종교 문제에서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1782항).


양심의 형성(1783~1785항)

사람은 성장하면서 성숙해야 하는 것처럼, 양심은 올바로 형성돼야 하고 도덕적 판단도 계발돼야 합니다. 잘 형성된 양심은 바르고 진실합니다. 잘 형성된 양심이란 "이성에 따라 창조주의 지혜가 원하는 참된 선에 맞는 판단을 내리는"(1783항) 양심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부정적 영향을 받기 쉽고 죄의 유혹을 받고 있기에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기 위한 양심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 "양심 교육은 온 생애에 걸친 일"(1784항)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린아이에게 도덕적 양심으로 깨닫게 된 내적 법을 인정하고 실천하도록 일깨워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양심 교육은 자유를 보장해 주며 마음의 평화를 줍니다.

양심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길을 비추는 빛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 안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 말씀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울러 주님 앞에서 우리 양심을 성찰해야 합니다. 또 성령의 선물을 도움으로 받고 다른 이들의 증언이나 충고에서 힘을 얻고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인도를 받으면서 양심을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양심에 따른 선택(1786~1789항)

도덕적 선택 앞에서 양심은 이성과 하느님의 법에 맞는 바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이성과 하느님의 법에서 거리가 먼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도덕적으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늘 정당하고 선한 것을 찾아야 하며 하느님 뜻을 식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중함의 덕과 현명한 사람들의 조언과 성령의 도움과 선물에 힘입어 경험으로 축적된 자료와 시대의 징표를 해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관계 없이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황금률'입니다.

셋째는 이웃과 이웃의 양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에게 장애물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로마 14, 21).
 

그릇된 판단(1790~1974항)

인간은 언제나 양심의 확실한 판단에 따라야 합니다. 고의로 이런 판단을 거슬러 행동하는 것은 자신을 단죄하는 행위가 됩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행위나 또는 이미 행한 행위에 대해 도덕적 양심이 알지도 깨닫지도 못할 수 있고 또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많은 경우에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면 우리 양심이 흐려지고 무디어지는데, 이럴 때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저지른 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도덕적 행위에 대한 판단을 빗나가게 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무지 △다른 이들이 주는 나쁜 표양 △양심의 자율성을 잘못 이해한 주장 △교회 권위와 가르침에 대한 거부 △회개와 사랑의 결핍 등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극복할 수 있는 무지입니다. 이렇게 극복 가능한 무지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극복될 수 없는 무지가 있습니다. 선천적 저능으로, 혹은 사고 등으로 도덕적 판단 능력을 상실했을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경우 그릇된 판단으로 악을 저질렀다 해도 본인에게 그 악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전히 악이고 부족하고 무질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12일, 정
리=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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