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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장례식… 교황, 천상순례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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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5-04-09 ㅣ No.126

[한국일보 2005-04-08 20:39]

 

”주님, 이제는 약속하신대로 이 종을 놓아주셔서 편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누가복음 2장29절)

병마의 고통이 교황의 몸을 엄습했다. 파킨스병에 시달리는 그의 손은 심하게 떨렸고, 걷기도 힘이 들었다. 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그는 교황직에서 물러나려 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이 8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오후5시) 로마 교황청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다. 이에 앞서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 생전의 신앙고백과 유언이 담긴 영성록을 공개했다. 22년 간 틈틈이 적은 15쪽의 글에는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고뇌하고 외로워하는 인간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교황의 본명)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글은 즉위 이듬해인 1979년 “제 모든 것을 주께 맡기나이다”는 말로 시작된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2000년 3월 교황직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나이 80이 되는 올해가 성서에 나오는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ㆍ시므온의 찬송)를 따라할 때가 아닌지 묻습니다. 1978년 10월16일 부여 받은 소임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알려 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적었다.

교황의 기도에 대한 신의 대답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며칠 뒤 병든 몸을 이끌고 역사적인 중동순례에 나섰다. 이 기록 이후 더 건강이 악화한 그는 더 이상의 글을 남기지 못했다.

이 밖에도 교황직의 책임이 주는 압박감은 곳곳에 서려있다. 80년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말할 수 없게 어렵고 혼란스럽다”는 우려는 공산권이 붕괴된 20년 뒤 “하느님의 섭리여, 찬양 받으소서. 냉전이 핵전쟁 없이 끝났나이다”라는 안도로 바뀌었다.

81년 암살시도의 모면을 ‘기적’이라 표현한 그는 “주께서 막아 주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새 생명을 주신 주님께 더 속해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 느꼈다. “모든 이들은 죽음의 가능성을 깨달아야 한다. 신과 심판 앞에 자신을 드러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교황은 마지막 기록에서 “이 세상에서 생명이 끝 나가는 지금 나는 처음 기억으로 돌아간다”며 어린 시절 가족과 친구, 동료들, 그리고 자신을 신에 귀의케 한 성직자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축복을 잊지 않았다.

그는 “모두에게 나는 이 한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빕니다.” 교황은 이 말과 “주여 당신의 손에 나의 영혼을 맡깁니다”는 라틴어 기도문으로 영성록을 마무리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전 남긴 말이다.

영성록은 대부분 3월 사순절 피정(避靜)때 폴란드어로 기록됐다.

서거 6일만에 엄수된 장례식은 서구 역사상 최대규모로 기록됐다.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대표집전으로 장례미사 하관식 안장 순으로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장례식에는 세계 정상급 지도자 200여명을 비롯, 400만명의 순례 추모객이 참가해 교황에게 이 세상의 작별을 고했다. 11억 가톨릭 신자들도 TV로 위성 중계된 장례식을 지켜봤다.

외신=종합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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