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세상 속의 그리스도Ⅱ-9 민족화해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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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동성당 [chang4] 쪽지 캡슐

2012-02-01 ㅣ No.5190

세상 속의 그리스도Ⅱ-9 민족화해와 평화

 

우리가 사는 세상

 

최근 북한사회의 실상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이다. 한국전쟁 이후 약 20년간 초고속 성장을 지속해왔으나, 70년대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특히 1989년 이후 사회주의 경제권이 붕괴되고 자연재해마저 겹치면서 오늘날의 북한은 주민이 굶주리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북한의 주요교역 상대국은 중국, 태국, 러시아이다. 2007년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은 중국과 약14억 달러, 태국과 1.9억 달러, 러시아와 1억 달러 규모의 교역을 했다. 북한의 대외교역에서 특이한 점은 중국의존도 심화(57%), 무역수지 적자, 일본과의 무역 급감을 들 수 있다. 2002년과 2005년 사이 중국은 북한 대외무역의 33-39%를 차지했고,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를 독점 공급해왔다.

북한은 90년대 초반부터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2,000만 명의 북한주민이 필요한 곡물의 총량은 식용과 사료 및 종자용 등을 합쳐 한해 약 600만 톤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부족 현상은 그동안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대규모의 기아사태로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인 영양결핍으로 인한 면역력 감소와 신장의 왜소화 등 부작용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북한 의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장기간 식량부족이 지속되면서 주민들의 영양상태가 매우 부실하여 가족이 몰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최근 기상이변 등으로 세계 곡물 생산이 감소되고, 자원민족주의 경향 강화로 식량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북한처럼 외부세계의 지원식량에 의존하는 나라는 더욱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의 에너지 부족은 현재 북한의 산업가동률을 30%대로 떨어지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다. 전반적인 에너지 공급량의 감소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석유공급의 급격한 축소이다. 북한의 원유 도입량 감소는 1990년 사회주의 경제권 붕괴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은 원유도입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1992년부터 중국도 국제시장 가격에 의한 경화결제 방식을 요구 하고 있다. 북한에 보존량이 풍부한 석탄은 1980년대부터 채탄장비가 낡고, 신규설비 부족과자재공급의 애로로 인해 감소추세를 보였다. 게다가 1990년대 대규모 홍수로 탄광들이 파괴되면서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되었다. 원유도입량과 석탄생산량의 급격한 감소는 발전량 감소로 이어져 북한의 공업시스템의 토대를 붕괴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2006년 북한의 전력은 1989년에 대비하여 24%로, 2007년에는 29%로 떨어졌다. 70년대 이후 북한의 경제적 쇠락은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대부분은 소득의 절대액을 식량구입에 사용하고 있다. 최근 탈북한 새터민의 증언에 따르면 일반 주민들은 소득의 약 90%를 식량구입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면서부터 북한사회 내에서도 빈부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또한 20년 가까이 지속된 식량난으로 어린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노인들은 부족한 식량을 가족들에 주고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북한 군인의 입대기준이 1994년부터 신장은 148cm, 체중은 43kg으로 낮아진 것이 청소년층의 영양상태 약화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여상기, 최근 북한사회의 실상, 화해와 나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2008 가을호)

 

통일의 필요성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 중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통일은 민족 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손상된 민족적 자부심의 회복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살아 왔다. 다른 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고 저항하면서 독자적으로 민족 문화와 체제를 존속시켜 왔다.

통일은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의 이질화 현상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동질적인 문화와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통일 국가를 유지해 온 우리는 동족이요 형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분단된 이후에 반세기 이상 단절된 채 다른 이념과 사상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상호간의 교류도 거의 막혀 있는 분단 상황이 앞으로 계속 된다면, 남북한은 전혀 상이한 문화 집단으로 변해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통일은 우리 민족을 전쟁 재발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한다. 우리는 분단 상황에서 지금도, 동족상잔의 전쟁이 재발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분단으로 인하여 발생한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들은 혈육간의 생이별을 참고 지내야 하는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다.

통일은 남북한이 서로 갈라져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대결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불필요한 민족적 역량의 낭비를 없애기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치 상황으로 인하여 남북한은 엄청난 군사비를 부담하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아직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민족의 번영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해야 할 많은 자원과 민족적 역량을 낭비하게 하는 것이다. 통일은 국제적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정당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의 자주적 역량은 그만큼 제한 될 수밖에 없다. 평화적인 민족 통일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을 세계에 드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의 의의와 필요성>, 자연석의 통일여행)

 

강제된 분단 그리고 6.15공동선언

한반도 분단은 외세에 의해 강제된 분단이다. 일제 식민지가 아니었던들 미〮‧소라는 강대국은 한반도를 분단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분단은 민족 내적 요인에 의해서는 하등의 분단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분단 과정은 2차 대전 종결과 더불어 미소에 의해서 38도선이 그어졌고 그 후 동서 냉전이라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 남북 관계는 냉전의 관계로 휘말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이질적인 체제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분단이 아니었던들 또한 냉전에 우리 민족이 휘말리지 않았던들 6-25전쟁이라는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2차 대전 후 외세에 의해서 강제된 분단국가를 든다면 독일과 월남 그리고 한반도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간 우리들은 독일과 월남의 통일문제를 우리 문제와 같이 깊은 관심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서독 자본주의가 동독 사회주의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흡수 했으며, 월남은 북(北)월남 사회주의가 남()월남 자본주의를 무력으로 정복 통일했다. 이 두 나라의 통일 방식은 전쟁과 평화라는 수단상의 차이는 있으나 제도통일이라는 측면에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독일이 통일된 지 10년이 넘었으나 흡수통일에 의한 후유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으며 구 동독 사람들의 불만과 피해의식이 팽배해 통일된 독일인으로서의 사회통합이 어렵다는 것이다.

결코 독일 통일의 방식이 한반도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독일의 통일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기도 하다. 월남의 경우는 전쟁수단에 의한 제도통일이었기 때문에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자아냈으며 그로 인한 후유증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것을 감안해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의 방식, 월남의 방식이 아닌 제3의 방식, 다시 말해서 제도 통일을 뒤로 미루고 자주적이며 평화적이고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한 민족중심의 통일이 될 수 있도록 남북이 상호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민족논리에 입각한 6 · 15공동선언은 다름 아닌 7 · 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통일의 3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 상황 "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물론 세계 사람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선진국 8개국 정상회담, 아세안 안보 포럼, 밀레니엄 유엔 정상회담, 아셈 정상회담, 유엔 총회, APEC 정상회담 등에서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이 남북관계 발전에 대해 지지 성명을 채택하는 한편,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여한 노벨 평화상 수상 성명에서도 지지하는 입장을 표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을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현상들이 일부 언론을 비롯한 정치인 그리고 지식층 등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들은 독일과 월남의 통일과정에서 겪은 혼란과 후유증에 비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나 6. 15 공동선언 추진에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6.15 공동선언에 대한 참 뜻을 이해하고 남북한 온 민족이 하나의 주체가 되어 서로 힘을 모을 때 통일을 순조롭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통일뉴스 2000 겨울호)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 두만강. 2007년 10월 22일 새벽, 하얗게 뜬 달빛을 받으며 문씨(25세)가 강을 넘었다. 낯선 사내 손에 이끌려, 폭 40m도 되지 않는 검푸른 강을 건넌다. 그녀는 팔려가는 길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국 농촌 노총각한테 씨받이로 팔려가는 길이다. 사내는 북한의 인신매매 브로커. 브로커는 강을 건너 북한으로 돌아갔고, 은신처로 안내된 그녀에게 물었다. "왜 넘어왔어요?“ 문씨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미공급(未供給: 1990년대 후반 식량난 시절) 때 상(喪)하고, 어머니는 못 먹어서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꿔다 먹은 강냉이, 콩, 쌀 같은 곡식 빛이 300kg이라"고 했다. 심청이처럼, 눈 먼 어머니와 남동생을 위해 그녀가 팔려간다. 브로커는 몸값으로 빚 절반을 갚아줬다. 350위안, 한국 돈 4만6000원에 '조선의 딸들'이 팔려간다. (두만강 심청, 조선일보, 2008.3.3)

"학교에 다닐 때나 공장에 다닐 때도 쥐가 있다고 하면 무서워 달아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든 이들의 눈길이 쥐에 쏠린다. 우리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일은 쥐를 잡아서 구워먹는 것이다. 나도 관리소에서 쥐를 많이 잡아먹었다. 쥐를 불에 살짝 구워서 껍질을 벗겨내고, 내장을 파낸 다음 소금을 뿌려서 바삭하게 굽는다. 그렇게 바삭하게 익힌 다음 머리도 남기지 않고 뼈까지 다 씹어 먹는다. 농촌 지원을 나가면 쥐를 많이 잡을 수 있어 일주일 내내 쥐를 잡아먹은 적도 있다. 쥐가 보이지 않아 한 달에 한 번도 못 먹은 적도 있다. 쥐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지 않고 학교로 가져가서 화로에 구워 먹는다. 작업이 끝난 후 친구들끼리 모여 잡아 온 쥐를 꺼내놓고 함께 먹는다. 쥐 잡아 먹는다고 나무라지는 않는다. 여름에는 나뭇가지를 모아서 굽기도 하고, 작업반 내 불을 피워놓은 곳에서 구워먹기도 한다. (책속에서 만난 또 다른 책 <세상밖으로 나오다-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오마이뉴스 2007.12)

식량난이 심각해지자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아이를 꽃제비라 부른다. 1998년 북한 중부지방의 한 장마당. 굶주린 아이들이 진흙바닥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고 있다. 상인들이 땅에 흘린 국수 가락 하나를 한 소년이 재빠르게 입에 가져다 넣는다. 암시장 한켠에서 생선가시를 열심히 빨아 먹는 아이도 있다. 이미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버렸지만 아이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다. 서있는 것조차 힘겨운 듯 깡마른 소년이 그 옆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려 머리는 탈색되고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다. 또 다른 구석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 시궁창을 살피는 소녀.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형제와 떨어져 천 조각 하나로 추위를 건대는 신세다.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던 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굶주림을 못이긴 어머니는 끝내 숨졌다. 남겨진 아이들은 기댈 언덕 하나 없이 북한 곳곳을 헤매다 끝내 국경을 넘기도 한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아이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눈이 부은 아이들도 있다. 북한의 초겨울, 그 참혹한 풍경이 앙상하게 드러난다. 탈북한 북한 주민이 참상의 현장으로 다시 잠입해 촬영했다는 이 방송(한국방송공사 일요스페셜 '98년 북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에서는 특히 흩어진 꽃제비들을 강제로 수용한 '927수용소'의 비참한 모습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 수용소는 북한의 늘어나는 꽃제비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난해 9월 27일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굶주리는 북녘' 이보다 더 참혹할 순 없다, 북한에도 주님의 손길이/ 참조: 일요스페셜 '98년 지금 북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KBS1, 1998.20 / 다시 보는 북한 꽃제비 동영상, 북한 민주화 포럼, 2008.5.12)

 

교회의 가르침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인간의 계획이기 이전에 먼저 하느님의 근본 속성이다. "주님은 평화이시다"(판관 6, 24). 하느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피조물은 평화를 염원한다. (『간추린 사회교리』488항,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서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다. (『간추린 사회교리』 495항)

교도권은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며, 전쟁에 대하여 달리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상, "원자핵 시대에 전쟁을 정의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고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니며,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 전쟁은 새롭고 더욱 복잡한 분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그것은 "불필요한 대량 학살"이 되고 "되돌릴 수 없는 모험"이 되어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한다. "평화로는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 (『간추린 사회교리』 497항)

오늘날의 국제 질서가 규정한 형태의 제재는 평화와 질서 위에 세워진 국제 공존의 규칙을 침해하거나 자국민을 심각하게 억압하는 국가 정부의 행위를 바로잡아 주려는 것이다. (중략) 그러한 조치들의 참된 목적은 협상과 대화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제재가 결코 국민 전체에 대한 직접적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 특히 그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그러한 제재로 고통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니다. 특히 경제적 제재는 지극히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수단이며) 엄격한 합법적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경제 봉쇄는 기간이 한정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는 정당화될 수 없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균형 있고 절도 있는 전반적인 군비축소"를 목표로 제시한다. 엄청난 양의 무기 증가는 안전과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각국이 정당방위에 필요한 수단만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필요 충족의 원칙은 무기 구매국들 뿐만 아니라 무기 생산국들과 판매국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지나친 무기 비축이나 무분별한 무기 거래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한 현상은 갖가지 형태의 무기 생산과 거래, 사용 그리고 확산 방지에 관한 국제 규범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무기는 결코 국제 시장이나 국내 시장에서 교류되는 다른 재화들과 똑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간추린 사회교리』 507-508항)

교회는,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고 가르친다.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폭력은, 특히 그것이 "잔인성과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 이를 때, 고통의 무거운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은 전쟁 당사자 모두의 깊고 진실하며 용기 있는 반성, 참회로 깨끗해진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어려움에 맞설 수 있는 반성을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과거의 짐은 오직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길고 힘든 과정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517항)

인간 생명의 존중과 성장에는 평화가 필요한 것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선의 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중시,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등이 없이는 평화는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다. 평화는 "질서의 고요함"이다. 평화는 정의의 결실이며 사랑의 결과이다. 지상의 평화는 메시아이시며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열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 당신 교회를 인간과 인간이 일치되고 또한 하느님과 인류를 결합시켜 주는 표지로 세우섰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선포하신다. (『간추린 사회교리』 2304-2305항)

 

세상 속의 그리스도

 

통일교육

올해는 광복 60주년이자, 6 . 15공동선언이 채택된 지 5주년이 되는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남북이 힘과 지혜를 함께 모아 해묵은 냉전질서를 극복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번영의 기틀을 다져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전쟁재발 위험 제거를 통해 한반도에 확고한 평화체제 구축, 남북 상호교류 · 협력을 통해 상호신뢰 분위기 조성,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및 민족동질성 회복 촉진 그리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지지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도록 정부에서 노력해야 할 일이다.

통일은 어느 날 한 시점에 갑자기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성취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남북한이 교류와 화해 · 협력을 증진시키고 서로 적대성을 감소시켜 나감으로써 '사실상의 통일'을 거쳐 완전한 통일을 성취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남북한 주민이 골고루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일임을 생각할 때 통일을 위한 준비는 무엇보다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 되어야 한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과 이들의 부모세대, 그리고 조부모세대와는 통일에 대한 관점이 매우 다르다. 부모 세대들은 반공교육 세대이며 전쟁을 반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나 자녀세대는 통일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우리의 대북관에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즉 북한은 더 이상 타도의 대상으로서의 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서 우리 민족이요 동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함께 통일을 이루어 나가야 할 동반자로 인식하면서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견을 줄이며, 공동의 이익과 가치영역을 확장해 나가며, 새로운 가치 등을 창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간의 정서적 분단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경험과 조건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그러기 위해 통일교육 관련 자료가 풍성하게 개발되어 통일 정책과 통일 교육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임을 실 감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개발된 자료를 통해 학교현장에서부터 통일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통일 이후의 주역이 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분단의 아픔과 통일 문제를 자기 자신의 문제로 실감하여 통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통일 이후의 사회에서 올바르 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은 수천년 동안 민족 공동체로서 같은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분단 상황의 오랜 지속은 우리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고 남북한 간 민족 이질화를 심화시킨다. 그래서 언어 · 경제 ·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한간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의 이질화 현상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통일교육은 남북한이 함께 공유하는 민족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통일관 정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장열이, 일선학교에서 통일교육 활성화돼야, 강동욱 기자의 경남문화 사랑방, 2005.9.4)

 

교황청 대북 지원 지속되었으면

2007년 2월 이탈리아를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로마 교황청 방문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단독 면담했다. 교황은 "한국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평가한다"면서 "북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 특히,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중요하게 다뤄 달라"고 당부했다. 이탈리아를 순방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베테딕토 16세를 단독 면담했다. 교황은 노 대통령에게 전달한 편지 형식의 메시지를 통해 '한국 국민들에게 따뜻한 안부와 본인 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 지난 50년 동안 분단의 고통을 경험하고 가족들이 갈라진 한국 국민들의 고통을 정신적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전해주기 바란다"며 "(남북) 서로 간 교류를 저해하는 많은 문제들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이어 "북한 핵문제의 위험을 교황청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북한 국민들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계층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현재의 긴장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평화적인 노력을 기울여 줄 것과 협상을 위험하게 하는 제반 조치를 삼갈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청 대북 지원 지속되었으면, 한겨레신문, 2007.2.16)

 

한국 천주교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첫 걸음

서울대교구장인 동시에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던 김수환 추기경이 새해 벽두 가톨릭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광복 50주년을 맞는 1995년에 북한 신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서울대교구는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교회의 노력을 가시화하기 위해 3월 1일 민족화해위원회를 교구 내 기구로 공식 발족시켰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 성사를 위해 북한 조선천주교인협회와 접촉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미주 한인 교회의 주선으로 1995년 10월 27일 부터 11월 2일까지 뉴욕에서 북한 조선천주교인협회와 공식 만남을 가졌다. 이후 남한 교 회는 우선 서울대교구 차원에서 민족화해의 대상인 북한을 교계적인 차원에서 공식 접촉하기 시작, 실질적인 관계 모색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뉴욕에서 남북한 천주교인들의 첫 공식 만남이 있은 후,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이어 나가는 등 이러한 만남이 거듭 된 후 1997년 6월 회의에서 양측은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최창무 주교를 비롯한 남측 신자들을 초청하겠다고 약속했고, 남한 교회도 북한 신자 대표들을 서울로 초청할 것을 약속했다.

이러한 약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북한 조선천주교인협회는 1998년 3월 베이징에서 2차 모임을 갖고 옥수수 3천 톤과 비료 1천 톤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양측은 부활대축일에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동시에 봉헌할 것과 1998년 5월에 최창무 주교를 포함한 민족화해위원회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하는 문제 등을 매듭지어 그 결과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최창무 주교 일행의 역사적인 사목적 평양 방문이 1998년 5월15일 부터 1주일간의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남북한 교회의 인적 물적 교류는 최창무 주교의 사목적 방북을 기점으로 해서 실질적인 의미와 지속성을 지니게 되어 이후 계속적인 대북 지원을 성사시키고, 이에 대한 결과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명분으로 평양 방문을 이어나갔다. 이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꾸준히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와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대북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변진홍, 사회교리를 통해 본 민족화해와 일치,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열린사회교리강좌, 2008.6.30)

 

10여 년 동안 북측과 직 · 간접 소통 등 노력 결실

남측의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와 북측의 민족경제협력 연합회 산하 새별총회사가 공동 운영하는 '평화봉사소'는 일종의 상설 복지관으로, 한국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관구장 오상선 신부)는 2008년10월30일 북한 평양시 설교구역 영제동 현지에서 전 한국 카리타스 총재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 주례로 평화 봉사소 축복식을 거행했다.

교회가 분단 이후 북녘 땅에서 직접 복지활동을 펼치는 첫 사회복지시설이다. 사상과 종교,

정치, 이념을 떠나 어려움에 처한 북녘 동포들을 구체적으로 돕고,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평화의 도구'를 마련한 셈이다. 또 북녘에서 공식 선교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종교인'이 아닌 '사업가' 신분이긴 하지만 작은형제회 측의 평양 체류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에 따라 실무책임자인 김권순 신부가 평화봉사소 운영 조정관 역할을 맡아 현지에 체류하면서 북측과 협력해 북녘 노동자들에게 직접 밥을 퍼주고 의약품 배분현황을 점검하는 등 실질적 활동을 펼 수 있게 해줬다.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은 "한국 교회의 인도적 지원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고 북녘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형제회는 북녘 동포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 사업을 펼치고자 1997년부터 북측과 직 ·· 간접적으로 소통하며 관계형성을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작은형제회는 북녘 돕기를 위한 비영리 재단을 설립, 당시 조선천주교인협회를 통해 평양 장충성당 지원과 안주 지역 탄광촌 구호활동 등을 펼쳐왔다. 또한 함경북도 지역에 트랙터와 온실용 비닐 등 농기구 및 농자재를 지원하기도 했다. (남북 화해와 협력 위한 '평화의 도구' 마련, 평화신문, 2008.11.9)

 

대북 지원

수전 리치(45)는 두 아들의 엄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벤쿠버에서 7년째 '퍼스트 스텝스'란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이라면 지구 어디든지 찾아가서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2000년 9월 초였어요. 캐나다-북한 수교 준비차 로이스 월슨 상원의원 통역으로 방북했다가 함흥을 찾았을 때, 김수녀란 사람 집에 들르게 됐죠. 그녀는 4개월 된 쌍둥이 딸이 있었는데, 갓난애들이 보채도 먹일 젖이 없는 거예요. 당시 8개월이던 우리 막내는 자다 깨 보채면 이유식을 먹이면 새근새근 잠이 드는데, 김수녀씨 애들 생각하면 잠이 안와요. 그래서 기도를 했죠. '이 문을 열어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다' 고요." 그렇게 시작한 퍼스트스텝스(www. firststepscanada.org)재단은 원산 · 남포 · 형제산 · 갈천리 등 4곳에 콩 우유 제조설비를 지원해 하루 3만5000명의 어린이에게 영양가 높은 콩 우유를 제공하고 있다. 2001년 9월 12일 신청 나흘 뒤 재단이 설립 인가되어, 첫해 8600캐나다 달러(한화 약 700만원)이던 모금이 매년 두 배 이상 급증 하더니 작년엔 28만7000달러를 모아 갈수록 많은 북한 어린이를 도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현재 후원자는 한국인 200명을 포함해 500여명. 선교사 아빠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보낸 그는 캐나다에서 대학 졸업 후 이화여대에서 동시통역을 전공해 '한국인보다 한국어가 유창한' 캐나다인이다. (하루 3만여명 북 어린이에 콩우유 공급, 한겨레신문, 2007.2.15)

빈곤퇴치를 위한 실천을 강조해 온 거시경제학자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북한의 빈곤문제 해결은 한국의 안보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색스 교수는 외교통상부와 국제협력단(KOICA)이 주최한 '유엔 천년개발목표(MDG) 이행 점검을 위한 공적개발원조 (ODA)국제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북한 경제는 개방을 통해 국제경제 체제와 연결돼야만 발전할 수 있다"며 "북한 농업 분야에도 다양한 투자가 필요하며 한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비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빈곤 퇴치는 전세계의 안정, 평화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한국이 다른 나라들을 돕는다면 전 세계의 불안정과 폭력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의 빈곤상황을 지적하며 "전쟁으로는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투자와 지원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북에 주는 비료가 전쟁 막는다, 한겨레신문, 2007.3.8)

 

묵상 · 토론

1. 북한의 상황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2. 강제된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통일 필요성 ‧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 남북이 냉전을 극복하고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실 천

● 내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 6.15공동선언의 이행과 민족화해 ·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 전쟁은 재앙이며,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다: 부도덕한 전쟁 참전을 반대하는 모임을 지지한다.

- 남한으로 탈북한 사람들(새터민)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다.

- 인도적 지원은 남북한의 신뢰의 끈이다 북한의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평화적인 지원 단체에 후원 한다.

- 한반도의 재통합은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자녀들이 남북 민족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통일에 대해 대화한다.

● 우리 교회에서는 이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www. hwahai. or. kr) 각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운동,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 대북지원, 새터민 지원 활동 등 -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새터민 정착지원센터' : 정착도우미 제도, 새터민 사례관리, 사회적응 및 고용지원, 아동 · 청소년 학습지원, 컴퓨터 교육, 건강지원사업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빈민사목위원회 '양천 평화의집': 새터민 사도직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민족화해위원회)

O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어내신 주님, 저희가 모두 주님을 닮게 하소서.

● 사랑으로 하나 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O 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 한 핏줄 한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 잘못을 깨우쳐주소서.

O 분단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 인류의 일치를 바라시는 주님, 갈라져 사는 저희 겨레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소서.

O 저희의 무관심을 깨닫게 하시어 겨레의 일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가진 바를 나누게 하소서.

●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평화 통일을 이룩하게 하소서.

O 온 겨레가 주님을 믿어,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O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평화의 모후시여 O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이여 O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6-15 공동 선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출처 :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간행 세상 속의 그리스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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