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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아버지와 나는 하나(요한1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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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5-12 ㅣ No.160

 


[부활 제4주일]아버지와 나는 하나(요한10,27-30)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회당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박해를 받고 쫓겨나 이코니온으로 간다. (사도13,14.43-52)
그 무렵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14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43 많은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따라오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였다.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요한 사도는, 큰 무리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 어린양 앞에 서 있는 것을 본다. (묵시 7,9.14ㄴ-17)
나 요한이 9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원로 가운데 하나가 14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17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들은 당신 목소리를 알아듣고 당신을 따른다며, 당신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신다. (요한 10,2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제1독서 (사도13,14.43-52)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6-47)

 

사도행전 13장 46절과 47절은 유다인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인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이방인에게 나아갈 것이라고 선포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해야만'으로 번역된 '아낭카이온'(anangkaion)'필수불가결한', '의무에 따라 반드시 행해져야만 하는', '마땅히'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복음을 유다인에게 먼저('프로톤'; proton; first) 전하는 것 하느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면서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1,8)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복음이 유다인에게 먼저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하셨다.

 

따라서 사도 바오로는 비록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이방인보다는 유다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설교의 원칙으로 삼았다.

이것은 구원이 유다인들에게 오기 때문이다(요한4,22).

 

그러나 유다인은 복음을 먼저 받을 특권도 있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에 따른 환난과 고통고 먼저 당하게 되어 있었다(로마2,9).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복음 증거자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왜 유다인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 주는 구절이다.

 

'스스로 ~ 판단하니'로 번역된 '크리네테 헤아우투스'(krinete heautus)에서  '크리네테'(krinete; judge) '판단하다', '결정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크리노'(krino)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형이며, '헤아우투스'(heautus; yourselves)2인칭 복수 재귀 대명사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너희는 너희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자로 결정하고 있다' 이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자이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를 반대하고 배척하는 유다인들의 행위 자체가 자신들이 스스로 그러한 자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원문에는 본문 서두에 '이두'(idu)라는 감탄사가 있다.

이것은 '보라'라는 말로서 청중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기능을 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제 하느님의 복음이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이방인들)에게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거하기 위해 '이두'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돌아섭니다'로 번역된 '스트레포메타'(strepometha; we turn)의 원형

'스트레포'(strepo)'등을 돌려 방향을 바꾸다'는 의미이다.

이제 복음은 유다인에게서 등을 돌려 유다인들이 영적으로 무시하던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인용하고 있는 말씀은 이사야서 49장 6절이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이사49,6ㄷ).

 

여기서 '너'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이미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메시야가 이방인의 빛으로 세워지고, 그가 이방인들을 생명으로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였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 사실을 바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미 그러한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으므로, 이사야서 말씀의 '너'를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확대하여 적용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께서 바오로에게 주셨던 사명(사도9,15.16)과도 유사하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의 발과 입을 통하여 유다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땅 끝까지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신 것이다(사도1,8).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복음 (요한10,27-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30)

 

요한 복음 5장 17절에서 간접적으로 밝힌 예수님과 성부 하느님의 일체성여기서는 명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성부 하느님과 본질과 근본에서 일치됨을 밝히신 것이다.

 

여기서 '하나'로 번역된 '헨'(hen; one)중성이며, 여기서 중성이 사용된 것은 희랍어 어법을 잘 반영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에서 '토 헨'(to hen; the one)존재의 궁극적인 통일성, 영원성, 불변하고 파생되지 않는 단일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서, 구별이 없는 존재의 동일성(oneness)을 나타낸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배경을 지니는 '헨'(h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본질임을 밝히셨는데, 아버지와 아들은 협력자의 관계 이상이며,

본질상 본래 하나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는 존재의 통일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실은 '~이다'로 번역된 '에스멘'(esmen; are)'에이미'(eimi)현재 시제라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희랍어에서 현재 시제는 현재와 계속, 그리고 변함없음을 나타내므로,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이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심을 알게 한다.

 

예수님의 이같은 주장은 모여 있던 유대인들로 하여금 당장 돌을 집어들어 던지게 할 만큼 커다란 분노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의 선언은 신성(神性) 모독의 극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실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실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22일 나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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