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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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석 [maum] 쪽지 캡슐

2001-04-04 ㅣ No.5733

너, 지금 행복하니?

아니, 전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모르겠다.

사실 행복하다는 게 어떤 상태인지조차도 모르는지 모르지.

그래도 가끔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때...

기분좋게, 딱 좋게 한 잔 했을 때...

또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때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 주는 것 같을 때...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 질 때도...

물론 세상에 잠시나마 기분을 좋게하는 일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웬지 나도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것 같을 때도 너무 고맙다.

또 먹고 싶던 것을 맘껏 먹을 수 있을 때도...

 

근데 그게 행복일까?
물론 좋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는게 단점이지.

 

세상의 밑바닥까지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가장 비참하고 처절한 밑바닥...

거기서부터 하나씩 극복해 내면서 올라서는 기분은 어떨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봤다.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기만 했다.

며칠이고 잠만 자고 있어봤다.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몇달 동안 피씨방에서 날을 새며 보냈다.

낮엔 퉁퉁 부은 눈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살지하며 한숨만 쉬었다.

밤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괴성을 질러대며 놀았다.

나중엔 돈이 다 떨어져 며칠간 쫄쫄 굶게 되 버렸다.

 

사실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한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팔다리가 다 잘려 불구가 된다면?

암에 걸려 고통속에 신음하며 죽을 날만 세고 있게 되면?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밥을 동냥하게 된다면?
도둑질을 하다 잡혀 교도소에 들어가면?

사람을 사기치고 강도짓을 한다?

살인을 하고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렇게 되었을 때에야 뭔가 깨달음을 얻을까?

그건 아니라는 건 뻔한데...

 

그래도 뭔가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는 이 기분은 뭘까?

 

죄란 무엇일까?

왜 나는 세상 사람들을 모두 사랑하며 살 수 없을까?

모든 사람이 항상 이뻐보이고 그 사람들을 형제처럼 생각하며 기쁘며 살기가 왜 이리 힘들까?

 

잠깐 동안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나의 모든 원수들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당에만 가면 나의 모든 죄가 드러나는 것 같다.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고상만 보면 뭔가 착한 생각, 좋은 생각만 해야 될 것 같다.

근데 현실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아니, 그러기가 너무 힘든 것일 뿐인지 도...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성인, 성녀들이 모여 하루종일 묵주기도를 하며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곳일까?

아님 누군가 보고 왔다는 것처럼 온통 꽃들만 만발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곳일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그냥 마냥 행복해서 하루 종일 웃고만 사는 그런 곳일까?

만약 그렇게만 산다면 그게 진짜 행복한 걸까?

나 같은 사람은 며칠만 그런 곳에 살아도 답답해 미칠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까?

그냥...뭔지 모르게 답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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