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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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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5-04-03 ㅣ No.188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 선종
"나는 행복합니다.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요한 바오로2세)

The Holy Father
JOHN PAUL II
1978-2005


주님.
당신의 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 얼굴 뵈오며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1고린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2005년 4월 2일 오후 9시 37분
(우리 나라 시간 3일 오전 4시 37분)에 재위 27년 향년 84세로 선종하셨습니다.


1920년  5월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출생
1946년 11월 1일        사제 수품
1958년  7월 4일        크라쿠프 보좌주교에 임명
1958년  9월28일        주교 수품
1964년  1월13일        크라쿠프 대교구장에 임명
1967년  6월26일        추기경에 서임
1978년 10월16일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됨
1981년  5월13일        베드로 광장에서 피격
1983년  1월25일        교회법전 공포(1983년 11월 27일 발효)
1984년  5월 2-12일     대한민국 방문(103위 성인 시성식 거행)
1989년 10월 6-10일     대한민국 방문(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참석)
1992년 10월11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발표
2005년  4월 2일        선종


추모미사: 2005년 4월 5일 오후 6시,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 대성당
             주교단 공동 집전(주례: 김수환 추기경, 추모사: 교황대사 체릭 대주교)

분 향 소: 교황대사관,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 지하성당, 각 교구별 분향소
문    의: 교황대사관(전화: 02-736-5725, 739-2310, 팩스: 736-5738)
            주교회의 사무처(전화: 02-460-7501~2, 팩스: 460-7505)
            서울대교구 홍보실(전화: 02-727-2030~3, 팩스 753-6006)

(가톨릭홈에서)

 


IL SANTO PADRE 

가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이자 로마의 주교(主敎).
《교황청 연감(敎皇廳年鑑)》에 따르면 교황이란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사도(使徒)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의 후계자,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 서(西)유럽의 총대주교(總大主敎),
이탈리아의 수석대주교(首席大主敎),
로마 관구대주교(管區大主敎)이자 수도대주교(首都大主敎),
바티칸의 주권자”로 규정되어 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12명의 사도 중 베드로에게
특별한 수위적(首位的) 권한을 부여하였고,
베드로는 그리스도로부터 위탁받은 교회의 수장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司牧)하는 권능을 부여받아 로마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하였으나,
그의 무덤 위에는 가톨릭적 사도적(使徒的)·로마적 교회의 웅장한 건물이 세워졌다. 

초대교회 시대는 바로 ‘사도시대’인데, 사도들은 일정한 장소에 정주(定住)하지 않아,
교회는 말하자면 '유동적(流動的)’인 순회적 사도직제에 따랐다.
사도시대 이후 교회의 우두머리는 고정된 지위를 갖게 되었고,
주교들이 사도들의 뒤를 이었다.
교회 전반에 걸쳐 정주적 주교제(定住的主敎制)로의 이행(移行)이 시작된 셈이다. 

'전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은 특히 로마에서 일어난 일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사도의 우두머리인 베드로가 세운 로마 교회의 수장은 바로
'전체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은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
폴란드 바도비체 출생. 1938년 아젤로니아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연극활동을 하며
안드레아 예비엔이라는 이름으로 시 ·희곡 등을 쓰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배우생활에 전념하다가,
1942년 성직에 뜻을 안고 나치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크라코프신학교를 졸업,
1946년에 사제(司祭)가 된 후, 크라코프대학교 신학교수 등을 거쳐,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어,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죽자, 그 후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은 사상 처음 455년 만의 일이다.
1981년 5월 교황청 앞뜰에서 교인들을 접견 중 한 터키인의 저격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건강을 회복했다.
바오로 6세의 교회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 안팎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때 내한,
103위 복자(福者)에 대한 시성식(詩聖式)을 집례하였으며,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도 한국을 방문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3천년을 맞는 칙서(勅書)>를 통하여, 교회가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불관용(不寬容)과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인간기본권의 유린을

묵인한 것은 잘못임을 인정하는, 가톨릭으로서는 진일보의 고백을 함으로써,
요한 23세 이후에 조성된 구·신교 일치운동에 한층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주교황청대사관홈에서)




 

♬Kyrie-Mozart Missa K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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