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나를 슬프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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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정 [kamang] 쪽지 캡슐

2000-05-12 ㅣ No.1916

< 아내에게...... >

 

 

여보, 내일이면 하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인 영애의 결혼식이야.

영애는 이제는 다른 사람과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겠지.

이제는 당신과 함께 잘 수 있는 마지막 밤인...

마침, 그 아이는 당신과 오늘밤만은 함께 잔다며 안방으로 들어왔지.

나는 잠든 당신과 영애를 바라보다가 잠든 당신의 옆 얼굴로 흐르는 한방

울 눈물을 보았소. 서운하겠지... 어떻게 키운 우리 딸인데 말이야...

그렇지만 걱정말아요. 시집간다고 해서 못볼것도 아니고 특히나 우리사위

녀석은 사람이 서글서글한 것이 붙임성도 많고... 들어보니 매주말마다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며 영애에게 말하기도 하더군. 그야말로 내자식

보내는게 아니라 좋은 아들 하나 굴러 들어오는 셈이지. 영애는 아주 좋은

녀석을 골랐다고 생각해.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다보니 새록새록 옛날

일들이 생각나는군. 당신하고 결혼을 하다니 말이야...

후후... 지금와서 생각해 봐도... 당신이 날 선택한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야.

 

 

우리는 한 회사에 다녔었지. 당신 생각나오? 그 왜... 우리 옆 부서에 있던

잘생긴 녀석 말이야. 이름이...박...뭐라고 했던가? 이젠 오래 되서 기억도

가물가물하군. 그 박이란 놈 때문에 우는 여사원이 많다는걸 난 알고 있었

다오. 헌데, 그 자는 왠만한 여자한텐 눈길도 주지 않았었지. 허지만 당신

이 우리 회사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던 날부터는 그자도 다른 뭍 총각 사원들

처럼 당신의 미모와 재치, 그리고 인간됨됨이에 푹 빠지고 말았지. 물론 나

도 예외는 아니었고... 여자친구라곤 한번도 만나본적도 없던 나는 당신을

그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건드릴 수 없는 어여쁜 그림쯤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었다오.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다는게 맞겠지. 그러나, 당

신은 그 수많은 남자들과 그 박이란 녀석의 프로포즈 모두 거절했었오. 나

는 박이란 놈에게 딱딱하게 대하는 당신을 볼때마다 사무실 한 구석에서 쾌

재를 부르기도 했었지. 그렇게 명랑하고, 친절하고 아름다웠던 당신이 나

의 신부가 될거라곤 그땐 상상도 못했었지. 우리가 가까워진 것은 아마도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거야. 나는 천애 고아였고, 당신은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이모님 댁에서 살고있었지.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것. 그것은 외

롭고 쓸쓸한 사람들만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우리는 그 부분을

서로 보듬어 줌으로써 잘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당신과 어

쩌다 우연처럼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서로 고아라는 것을 알

게되었고,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는 더더욱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

지. 나는 당신이 나에게 관심이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어. 용기가 없

었기 때문이야.

그러던 어느날, 십수번을 만났어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는 맹한 내게 당

신은 팔짱을 껴주었지. 그때...나는 날아가고 있었어. 하늘로... 높이 높이

... 내 자신이 깃털이 된것만 같았지. 얼굴은 붉어지고 당신의 손이 껴있는

오른팔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어. 그 다음엔 당신에게 향하는 내 맘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지. 지금 당신에 대한 내 사람이 물과 같다면 그때는

참으로 모든 것을 태울만한 커다란 불덩이였어. 당신이 내게 팔짱을 껴주던

그 날부터 단 삼개월만에 우리는 결혼을 했지. 아마도 사람들은 사내 커플

중 가장 믿을 수 없는 안어울리는 쌍으로 우릴 꼽을 것임에 난 의심하지 않

아. 내가 생각해도 그러했어. 내게는 분에 넘치게 아름답고 명랑한 당신.

지금도 언제나 생각하지만 당신은 내게 분에 넘치는 아내였지. 그런 아내에

게...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니... 나는 그저 당신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라오. 영애가 생겼을때... 당신 기억하오? 난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결혼한지 사년이 다 되어갔지만 우리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었지.

아무리 서로 금술이 좋은 부부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있던 가장 큰

걱정이었어. 그런 금쪽같은 아이가 생긴걸 안 것은 겨울이 마지막 끝자락에

서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이었지. 당신의 달걸이는 자주 불규칙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는데...그 겨울날 밥을 짓던 당신이 냄새를 맡지 못하고 안에 것

을 토해내었을 때, 우리는 바로 드디어 우리에게도 하늘의 선물이 날아왔음

을 알게되었어. 당신의 입덧은 무척 심한 편이라 회사에 있는 다른 사원들

도 금새 눈치를 챘고, 다들 크게 축하해 주었었어. 하지만 나는 그 선물에

게 조금 원망을 하기도 했어. 제대로 입맛을 챙기지 못하고 보는 음식마다

토해내고, 나중엔 토해낼 것이 없는 데도, 신물마저 넘기는 당신을 보며,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영양실조로 당신이 거실에서 쓰러져 버렸을 때, 병원

에 링겔을 꽂고 누워있는 당신의 파리한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아이가 밉

더군. 아마도... 그토록 행복한 우리에게 벌을 내려준 것은 내가 그 귀한

선물에게 이런 얼토당토 않은 감정을 가져보았기 때문일거야. 그래... 그건

나의 잘못이야. 오개월쯤 되었을 때, 이제는 당신의 배가 조금씩 불러오고,

나 뿐 아닌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배가 나온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그때 그 일이 있었더랬지... 당신에게 고개도 들지 못할 그 일이... 그날은

대구 출장을 모두 마치고 경부고속 상행선을 올라오던 길이었어. 당신에게

대구에서 전화했듯이, 우리는 결혼 한뒤로 처음으로 일주일이란 시간을 떨

어져 보는 것이었어. 나는 당신과 당신의 뱃속에서 발을 구르는 그 어여쁜

우리의 아이가 보고싶어서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어. 원래 그 다음주 화요일

까지 마쳐야 되는 일을 서둘러 모조리 마쳐버리고 금요일에 당신과 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 엑셀을 밟는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

러나왔고...... 이제 당신에게 도착하면 당신고 아이를 한 품에 안아버려야

지 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어. 그렇지만 속도를 너무 냈다가는 큰일이다 싶어

서 주의를 했지. 맘같아서는 200킬로까지 밟고 싶은 맘 굴뚝 같았지만 당신

의 조심해서 오라는 말을 기억해 내며 내 스스로를 달래며 제한속도를 정확

히 지키며 달리고 있었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어. 그 트럭

을 보았을 때 말이야. 짐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아둔 그 거대한 트럭을

보았을 때 그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주의하지는 못했어. 오른

쪽으로 커브를 돌면서 트럭 바퀴가 승용차  차선을 깊게 넘어왔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그 높게 쌓아올린 짐들이 왼쪽편 승용차 선쪽으로 기울어지

고 있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렸지. 그러나... 너무 늦은 일이었어. 커다란

트럭은 왼쪽 차선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넘어졌고, 내 앞을 가던 승용차 두

대가 짐에 깔리고 브레이크를 잡았지만...그땐 이미 내 코 앞에 앞차가 있

었어...미안해. 지금도 당신에겐 그것밖에는 할말이 없어. 백년만 함께 살

자는 약속도, 그날 당신에게 사주기로 했던 호도과자도, 우리의 아기에게

사주기로 한 어여쁜 구두도...난 그 어떤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 합

동 영안실에서 오열하는 당신을 바라보며, 그렇게 오열하다가 견디지 못하

고 뒤로 넘어가는 내 가냘픈 아내를 보면서도.... 그녀를 일으켜 줄수도 없

었고, 그녀에게 나는 여기 있노라 소리를 칠수도 없었지. 매일 저녁 사랑한

다는 말을 할 수도, 당신의 가녀린 손발을 녹여줄수도, 따뜻한 키스도, 한

마디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매일매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일

어났다가는 기절하고, 다시 일어났다가는 기절하는 당신. 그런 당신을 보며

그 앞에서 울부짓는 것 밖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없었어.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여보, 제발 일어나요 하며...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니 당신을 보며 그 말을 수백번, 수천번도 넘게 되내였지만... 당신은 아

무것도 듣지 못했어. 그렇게 식음을 전패하던 당신이 미음을 먹게 된 것은

이모님 말씀을 듣고 나서였지. 당신도 기억...해? 부모님 잃은 후 당신을

줄곳 키워주시던 이모님이 당신에게 와서 말씀하셨지. 아이를 떼자고...오

개월이라 위험할 수도 있지만 여하튼 병원에 가보자고. 남편도 죽고 새파랗

게 젊디 젊은 것이 혼자서 살 수는 없다고... 그 꼴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못본다 하시며 아이를 떼버리자고 하셨더랬지. 아이만 떼버린다면 얼마 지

나지 않으면 나를 잊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더 좋은 사람 만나 지금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럴수는 없

다고... 우리가 얼마나 고대하던 아이인데...사년만에 겨우 얻은 아인데...

그 아이가 어떤 아인데.........! 그럴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어. 이모님

말씀은 알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는 있

지만...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그럼 말씀 하시지 말아달라고 빌

고 싶었어. 그 날, 이모님이 돌아가신 그날, 당신은 이모님이 두고가신 미음

을 모두 먹었지. 눈물을 흘리며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먹어버

렸어. 그리고 당신은 빈 허공을 향해 말했지.

" 여보, 아기를 낳으려면 잘 먹어야겠지? 내가... 내가 이렇게 굶고 있으면

 안되는 거겠지? 당신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나...나 꼭 튼튼해 져야

 겠지? 그렇겠지??? 으... 으흐... 흐흐흐... 흑.................... "

당신을 몰랐겠지만... 난 당신의 어깨를 감싸안고.... 얼마나... 얼마나 울

었는지... 울다 지쳐 잠든 당신을 바라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당신에게 얼

마나 감사해 했는지...임신한 아내에게 맛난 것을 사주고, 가장 좋은 것만을

먹여주고 싶은것이 남편의 마음이야. 하지만...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주

지 못했지. 그 어떤 것도... 그 날, 당신 기억하고 있는지... 임신하면 몸

에 있는 모든 기운을 아이에게 빼앗기기 때문에 임산부들은 어떤 것을 먹어

도 얼굴이 좋아지지 않고 언제나 푸석푸석하지. 그리고 몸에 영양분과 칼슘

이 모두 빠져나가버려서 온 몸이 붓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

당신도 물론 그렇게 아파했지. 어느날 저녁, 회사에서 퇴근한 당신은 문을

잠그자 마자 그대로 방에 쓰러져 누었어. 임신한 것만 해도 힘들텐데, 회사

까지 다니고, 게다가 집안일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한 몸으로 두명을

업고, 세명 몫을 하는 당신이니 당연히 피곤에 온 몸이 지쳐 있었지. 그리고

잠든 사이에 짧은 꿈을 꾸었던가봐. 난 당신의 옆에서 당신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를 부르는 당신의 소리에 놀라고 말았지. 당신은 잠깐 가는 눈

을 뜨더니 당신의 옆에 놓여있는 커다란 베게, 우리 신혼 시절 함께 누워있

던 그 큰 베게를 바라보며 말했지.

" 여보, 만두가 먹고싶어. "

당신은 잠결에 말한 것이었어. 꿈 속에서 나와 함께 있었던가봐. 당신은 그

렇게 말하고는 그 졸린 눈을 한층 커다랗게 떴지. 마치 주변에 내가 있다는

것 처럼.

" 바.............. 바보같으니~! "

당신은 내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를 바보라고 하면서 다시 자리에 누웠

지. 그 두 눈엔 한가득 눈물이...그리고는 혼자서 중얼거렸지

" 여보, 만두가 먹고싶어요. 그런데 갈 힘이 없어...손가락이랑 발가락이랑

 ..아파요. 아이가 내 뼈 속에 있는 것까지 모조리 다 가져가 버리려고 하

 나봐. 너무 아프고...저리고.. .쑤셔... 누가 주물러 줬음 좋겠다.

 왜  혼자  갔어요....   왜  나   두고   혼자   갔어..........

 왜........................................ "

나는 방에 있을 수가 없었어. 내 스스로가 미워서 미칠것만 같았어. 살아있

더라면 금방 달려나가 당신이 먹고싶어하는 만두를 사왔을텐데 아이 때문에

온 몸이 저리고 아픈 당신의 팔다리를 주물러 줄 수 있었을텐데... 일 모두

그만 두고 집안에서 태교를 위한 클래식이나 들으라고 핀잔을 주었을텐데...

그런데... 여리디 여린 당신을 혼자두고 가다니... 당신에게 이토록 소중한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니......! 나는 거실벽을 탕탕 두들겼어.

그 순간 나는 알았어. 비록 나는 몸이 없지만... 강력한 신념이 있다면 실

제하는 물건들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온 몸에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바닥으로 넘어졌지. 마치 강력한 전기가 온 몸을 통

과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주는 것 같았어. 바로 그 순간 벽에는 작지만 "탁"

하는 소리가 났음을 나는 알 수있었어. 안방에 있는 당신이 " 누구.....? "

라고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그날 나는 죽은 힘을 다해 부엌 냉장고에

서 당신이 전에 사두었던 얼은 냉동만두 한 개를 꺼낼 수 있었어. 마지막에

는 눈앞이 노랗고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어. 그리고 부엌 싱크대에 놓여있는 그릇 하나에 그 얼은 만두

한 개를 겨우 놓을 수 있었지.

" 누구세요? "

달그락 소리가 당신에게 들렸던가봐. 당신은 부엌으로 나왔고... 주변을 확

인하다가 드디어 내가 꺼내놓은 냉동만 두 한 개를 보았지.

" 이게.................. 왜 여기 있지? "

" 내가 언제 이거 꺼내놨었나? 하지만 한 개를 꺼내진 않았을텐데..."

당신은 꿈에도 내가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것 같았어. 그 순간 당신은

주변을 재빨리 휙휙 돌아다보았지.

" 혹시............. 다.................... 당신이 ? "

그래 맞어, 여보~! 나야~! 내가.. 난 여기 당신 곁에 있어. 당신에게 아무것

도 해줄 순 없지만...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 그대로 당신 곁에 있

어~! 나는 소리쳤지. 당신은 입술을 약간 찡그리며 피식 하고 웃었어.

" 나도 참............... "

당신은 알지 못했지. 내가 얼마나 힘들여 그 만두를 꺼내 놓았는지. 비록 얼

은 만두 한덩이 이지만... 실은 그 만두 한 덩이가 다른 남편들이 사다주는

좋은 보약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그러나 당신과 나는 통하는게 있었어.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당신은 다시 잠에 들려고 돌아서던 발걸

음을 멈추고는 그 얼은 만두를 조금씩 입 안에 넣었지. 차갑기 때문에 당신

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오래오래 씹었어. 만두의 마지막까지 모두 입안에

넘겼을 때, 당신은 먼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지.

" 여보, 맛있어. 잘먹었어요. "

당신은 이리 말하고 머리를 흔들며 피식하고 웃었어. 당신은 지금도 그 일을

긴가민가하고 있겠지만 그건 정말로 당신을 위해 내가 해놓은 거야.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사실상 그 이후로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지. 단지 마음 밖에는 말이야. 팔개월이 좀

넘고 구개월이 다가오자 당신의 배는 남산만하게 커졌지. 그제서야 당신은

휴직을 신청하고 겨우 집안에 들어와 쉴 수 있게되었어. 내가 있었더라면 배

가 불러오기 시작하던 육개월, 칠개월부터는 회사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을

텐데... 아니, 그 당시 나는 당신에게 회사를 그만 다니라고 설득하고 있었

었는데 아이 낳는 것만으로 힘든데 사회생활까지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다 그만두라고 설득하곤 했었지. 당신은 이기적이라며 툴툴거리긴 했었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했었을거야. 우리 아이가 태어날

때... 정말 그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군. 혼자라서 아이낳을 때를 대

비를 철저하게 해둔 당신이었어. 진통이 시작되자 당신은 준비해둔 것들을

챙겨서는 일찍부터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을 향했지. 모든 것을 미리미리 완

벽하게 준비해 두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문제는 엉뚱한데서 일어났어.

" 보호자 싸인이 없으면 저흰 수술 못해요~! "

앙칼진 간호원은 아이를 낳으러 혼자 온 당신에게 이같이 말했었지.

" 남편은 어디 있는데요? "

그 질문에 당신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었어.

" 추........... 출장중이라서................. "

" 그럼 남편말고 딴 사람이라도 보호자로 데려오셔야죠, 아주머니~!

 그냥 혼자 오시면 어떻게 해요~! "

" 연락은 했는데......... 좀 멀어서..... 시간이  걸릴거예요. 그때

 오시면 싸인하시라고 할께요......아니면 제가 싸인할테니....... "

" 아우, 안돼요~! 수술당사자가  싸인하는건 안된단 말예요~! 보호자를

 데리고 와야 수술해줄 수 있으니 그렇게 아세요~! "

그렇게 간호원하고 실랑일 하는데... 나는 당신이 아주 많이 울고있다는

걸 알고있었어. 하지만 당신은 결코 한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어. 나는

그당시 아무 생각을 못할 정도로 멍해 있었어. 당신에게 떽떽거리는 그 간

호사가 밉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그런 간호사와 당신을 보다가 못한

어떤 사람이...

’내가 보호자로 싸인할테니 이 아주머니 수술 하쇼~!’

하고 말할때도 그 남자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그런 상황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하는 내 불쌍한 아내에 대한 연민도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어.

다만..미치고 싶었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는 없었어. 너무 고통스러워 차

라리 미쳐버렸으면 하는 생각으로 멍하니 있었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

어.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던 거였어.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는 한 모르는 남자의 싸인을 받은 당신이 수술대위에 누워 땀을 흘

리고 있을때였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그저 당신의 손을 꼬옥 부여

잡고 기도를 드리기만 했어. 부디 아내만 무사하게 해주신다면...제발....

막상 당신이 괴로워 하고 죽을 듯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을 보면 아이의 생

사는 전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했어. 당신만 무사히...제발 당신만....

’아직 안됐어요~! 더 힘을 주란 말입니다~ 남들 다 하는거 왜 못해요~!’

라고...아이를 한번 낳아본적도 없는 젊은 남자 레지던트들이 지껄여댔지.

내가 살아서 당신 곁에 있었더라면 그놈들은 내게 한 대씩 맞았을거야. 모든

건 중요치 않아. 제발 당신만...당신만 지켜달라고 하늘에 빌었어.

여덟시간..............

이제는 지쳐서 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당신이 가물가물한 의식을 부여잡

으며 겨우 마지막 힘을 내었을 때. 우리의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지. 나는 당

신의 손을 꼭 붙잡고는 함께 엉엉 울고 말았어.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것 밖에는 할 말이 없었어. 가물거리는 정신의

당신과 내가 두 눈이 마주쳤을때는 그때였어.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눈물을 철철 흘리며 서있는 나와 의식을 잃어가는 당신의 두 눈이 마주쳤더

랬지. 이모님이 오시고, 아이의 첫 면회시간이 되었을 때, 허리가 아파 제

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당신이, 그 엄청 난 고통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

한 당신이 우리의 아기를 바라보며 미소지었지. 그리고는 말했어.

" 이모, 저 수술동안 그이가 제 손 붙잡아 주었어요. 수술동안 의식이 가물

 가물해지는데 그이가 보였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미소짓는 그이가요.....

 분명히 그 사람이 아이 보러 왔나봐요. 이모 안믿으시는거죠? 저도 처음

 엔 제가 헛껄 봤나 했어요 하지만요... 수술동안 누군가 제 손을 꼬옥 붙

 들어 주어서 제가 마지막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힘을 냈거든요... 아까

 간호사한테 물었지만... 아무도 그런사람은 없었데요. 보는 사람은 잘못

 보았다 치더라도... 이 손에 남은 감촉은 거짓이 아니쟎아요? 분명히 그

 이가 수술동안 제 손을 잡고있던게 분명해요. "

나는 기뻤어. 난 죽었지만 당신에게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그 마음

에 그 기쁨을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 이모님은 그저 ’불쌍한 것’

하시며 당신의 말을 믿지 않으셨지만... 여보, 그것은 정말이야. 당신의 손

을 붙잡고 당신과 우리 아이의 순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나는 보고있었

어. 그리고....당신에게 고맙다고.... 당신에게 미소를 보내고....눈물을

보내고.. 사랑을 보낸 것이 사실이야. 아이의 이름을 가지고 무척이다 고민

하던 당신이 생각이나. 나도 사실 어마어마하게 고민을 했지. 당신이 사전

을 찾고, ’이름짓는 법’이란 책을 읽을 때, 나도 당신 옆에서 아주 열심히

그 책을 함께 읽었지. 그리고 고민고민 하던 끝에 나는 어떤 결론에 다달았

어.그건 "영원"이란 것이었지. 내 당신에 대한 영원한 사랑, 그리고 죽은

나에 대한 당신의 영원한 사랑, 그리고 그런 우리의 아이에 대한 우리의 영

원한 마음... 나는 <영원>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어. 그리고는 펜을

들었지. 만두를 꺼내던 날 이후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그 능력을 말이야.

그리고 흰 종이에 겨우겨우 비뚤비뚤하게 적어놓았어.

<영원> 이란 두 글자를 말이지.

당신이 그 글이 내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최

선의 방법이었으니까.

다음날, 당신은 당신의 노트 한 가운데 적은 비뚤비뚤한 그 글씨를 보고는

동회로 달려갔지.

그리고는 출생신고란에 적었지. < 영애 >라고 말이야. 영원한 사랑...

그것이 나의 이야기인지 당신은 알지 못했지만... 당신은 내 마음을 훌륭하

게 알아주었어.

영애................

영원한 사랑...................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그런 우리의 사랑이

모두 담긴 우리의 영애는 무럭무럭 참으로 잘도 커나갔지. 당신은 영애가

태어난 후 얼마되지 않아 다시 직장을 나가야 했고, 영애는 탁아소의 생판

모르는 여자에게서 우유를 받아먹어야 했지. 안타까웠지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나였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밤중에 깨어나는 영애가 피

곤한 당신을 울리지 않도록 하는 것 뿐이었지. 영애는 만 1년 6개월까지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었어. 지금 스물이 훨씬 넘은 그 아이는 그 옛날 내 얼

굴을 보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어린 영애는 확실히 나를 볼

수 있었어. 영애는 이상하게도 우유 한개와 물 하나를 타놓으면 밤중에는

스스로 그것을 먹고는 잘 자곤 했지. 착한 아이였어. 밤중에 깨어 울라치면

나는 당신이 타놓은 우유병을 겨우 들어서는 영애의 입가에 대어주었지. 그

아이는 우유병을 물고는 울지 않았어. 조금 짜증이 나거나 기저기가 젖어서

울때가 되어도

" 영애야, 엄마는 하루종일 일하고 와서... 정말 피곤 하단다. 내일도 다시

 일을 해야 하니.. 네가 방해를 하면 안되지 않겠니? "

라고 말하면 말을 알아듣는지 전혀 울지 않았지. 그리고... 나를 좋아했어.

함께 하루종일 놀아주어도 지겨워 하지 않고.... 매일 똑같은 것만 반복할줄

밖에 모르는 아빠의 재롱에 까르르하며 웃음을 지어주는 아주아주 착한 아

이였지. 정말 착한 아이였는데... 당신, 당신도 그 일을 기억하겠지?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심하게 영애를 때렸던 그날 기억하고 있지?

영애가 초등학교 2학년때였어.

학부형들을 초대해서 아이들의 학교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었지. 물론 당신은

회사 때문에 오지 못했고, 대신 내가 우리 영애를 보러갔었어. 볼수는 없지

만 영애를 위해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것만 같았거든. 그날 수업은 아

이들이 글짓기를 발표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어. 우리 영애는 똑똑한 만치 아

주 잘 해주었어. 영애는 우리의 이야기를 썼던거야. 엄마와 함께 둘이 살고

있다고 말하고는 아빠가 안계시지만 엄마가 있으니까 좋다고... 친구들이 아

빠 이야기를 할 때 부럽긴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아빠가 선물하는 것을 자신

은 엄마가 모두 해준다고 말했지. 엄마가 생일선물로 사준 크레파스와 미미

인형세트, 동화책도 자랑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론 이렇게 말했지. 다른 아이

들은 아빠가 무얼 선물했노라고 자랑을 하지만 자기는 엄마가 모두 다 해주

니 걱정 없다고. 행복하다고 말이야. 모두들 박수를 쳤고, 나도 또한 정신

없이 우리 영애의 발표가 끝나자 박수를 쳐댔어.

’저 아이가 내 딸입니다. 저 아이가 말한 아빠가 바로 저라구요~!

저 아인 모르지만 전 항상 저녀석 곁에 이렇게 함께 있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어... 선물을 하고 싶었어. 다른 아버지들은 딸들에게 이쁜

옷이나 신발, 가방, 인형놀이등을 사주는데 난 단 한번도 우리 영애에게 조

그만 것도 선물하지 못했지.정말로..정말로....무엇이든 주고 싶었어. 이렇게

마음만이 아닌 무언가를... 무언가를 말이야. 그래서 그랬던거야. 엘리베이터

에서 윗층 여자아이가 내릴 때, 그 아이의 새로산 화려한 삔을 보았을 때,

나는 우리 영애가 한다면 아주 이쁠텐데...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지. 그리고는

그 삔을 몰래.... 살며시 영애의 손에 쥐어주었어.

" 어? 왠 삔이지? "

하며 멋모르는 영애는 그저 이쁘다는 생각에 얼른 머리에 꽂았지. 행복했어.

비록 영애는 이 아비가 준 것이라곤 상상도 못할테지만 말이야. 어쨋든 정말

기뻤지. 내 딸에게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그 마음에 말이야... 그러나... 그건

완전한 잘못이었어. 윗집 부인과 그녀의 딸, 그리고 당신과 우리 영애가 엘리

베이터에 탔을때, 윗집 아이가 소리쳤지.

" 내 삔이쟎아~~~~~~~~~~~~!!! "

당황하는 영애의 머리에서 재빨리 삔을 나꿔챈 윗집 부인이 말했지,

" 너구나~! 얘가 맨날 뭘 잊어버리더라~! 너지~~~~~~!! 네가 맨날 훔친

 애로구나~~~~~~~~~~!!! "

급하게 삔을 빼느라 한쪽 머리가 헝클어진 영애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

에서 엉엉 울어버렸어. 당황하는 당신과 영애를 뒤로 남기며 그녀가 말했지.

" 그러게 애비없는 자식은~~~~~~~~~~~~~~~! "

그 날 우리 영애는 학교도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맞았지. 영애는 아니라고

울며불며 말했지만 당신은 믿어주지 않았어. 당신의 손바닥이 새빨갛게 되고,

영애의 엉덩이와 다리가 붉게 멍들때까지

당신의 매는 계속되었지. 나는 살아서도, 죽은 후에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욕을 당신에게 퍼부었어.

’이 여편네야~~~! 넌 네 딸을 못믿니~~~~~~!!그건 내가 한거야~~~~~~~~~~~~~!

내가 영애를 주고 싶어서~~~~~~~~~~~!!!!

네가 네 딸을 못믿으면 세상 천지에 누가 믿겠니~~~~~~~~~~~~~~!!!

이 여편네야~~~~~~~~~~~~~~~~!!!!

내가 그랬다~~~~~~~~~~!!

내가 그랬단 말이댜~~~~~~~~~~~~~~~~~~~~~~~!!!!!!’

나는 울부짓었어. 내가 할줄아는 욕이란 욕을 모두 당신에게 퍼부어댔지.

맞고... 울다가 지쳐 잠든 영애 앞에서 당신이 오열할 때...나 역시 미칠 듯

이 울어댔어. 모든 것은 내 죄였어. 모든건 내 죄였어..!

영계의 사람이 인간계를 함부로 건드리면 큰 화가 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 나는 그 이후로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는 다시는 당신과 영애 앞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어.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묵묵히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당신과 영애는 정말 잘 살아주었

어. 정말... 아주 잘....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아주 보기 좋은 모녀간

이었어. 영애가 우리 사위녀석을 고를때 얼마나 고민한지 당신 모르지?

영애는 당신을 항상 생각했어. 그리고우리 사위녀석이 그러더군.

" 매주 당신과 당신의 어머님을 모시고 가장 행복한 여왕과 공주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선서~! "

매 주말이면 당신을 모시고 행복하게 해드리겠단 선서를 하고 나서야 그녀석

을 당신에게 소개한 영애였어. 당신은 조금 섭섭해 했지만...전혀 그럴필요

없는 거란말 말해주고 싶어. 당신이 우리 사위될 녀석을 처음 소개받은 후

간 곳이 점집이란걸 알고있어. 당신은 더도말고 명이 긴가만 보아달라고 했

지. 내가 살아있었다면 당신도 늙었군. 하면서 나무랄 일이었지만 당신의 마

음을 가장 잘 알고있는 나로서는 그저 씁쓸한 미소만 지어지더군.

여보, 걱정하지 말어.

영애보다 우리 사위 녀석이 저승에 먼저 발 디딜 참이면 내 멱살을 잡고,

볼기를 때려서라도 이승으로 돌려보낼테니 말이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처럼 당신에게 죄짓겐 하지 않을테니 걱정말어. 우리의 만남부터... 바로

오늘까지 모든 것이 지금도 새록새록하군. 마치 어제 일처럼 말이야.

내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 없지만.... 당신의 마지막까지, 그리고 우리

영애와 사위의 마지막 까지 항상 옆에서 보호하고 지켜보겠어.

언제나 함께............언제나 사랑는 마음으로..............

난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아줘요.

그 삔 사건 이후로 단 한번도 이승의  물건에 손대지 않았지만 오늘은 꼭

이 긴 편지.............

당신은 읽지 못하고

그저 흰 백지로만 보이겠지만...............

여보, 이 한마디만은 꼭 당신이 볼 수 있도록 쓰고 싶어.

 

 

 

                       영.      원.     히.

 

                               사.      랑.     해.    요.

 

 P.S   이글은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펌글입니다...

       글처럼 누군가 날 소중히 여겨줄 그런 맘으로 하루를 만들어가시기바랍니다.

       참고로 전 이글을 읽고 pc앞에 앉아 글썽였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다면.. 무지 고통스럽겠죠^^(헉헉... 견딜수없더여~!~)

       끝까지 일어주셔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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