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천상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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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 [skyfall] 쪽지 캡슐

2000-06-24 ㅣ No.1237

지난주 주보 [이삭] 란에 천상병 시인의 시가 한편 실렸더군요.

그분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귀천’이었습니다.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의 제목이죠.

작품에서는 세상살이를 ’소풍’이라고 표현했고,  

소풍이 끝나는 날, 이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했지만

실제 그의 생활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대 상과대를 수료할 정도로 수재였지만 사회적으로 출세나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술 마시는 재미로 여러사람과 어울려 다니다가 관계도 없는

동백림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고문을 받고는 그만 거의 폐인이 되어 버렸죠. 어느날 거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행려병자로 처리되어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찿으려 애쓰던 친지와 친구들은 어디서 죽었거니 슬퍼하며

그간의 유작을 모아 유고집 < 새 >를 발간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집이 발간되는 웃지 못할 일화가 생겨난거죠.

이렇게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남자가 무엇이 좋았을까 ?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가 그 다음 해에 시인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의 예술성과 순수함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랑한 때문이죠.

정신병원에서 시인을 발견했을 때 나 아니면 이 사람을 돌 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나요.

아뭏튼 이 시인은 그로부터 22년을 더 살고 지난 93년 4월에 별세하셨습니다.

평소 노래하던 대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거죠.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쩌냐구요 ?

네, 예술가 또는 문인 중에 많은 기인들이 있었습니다. 천재들도 있었고요.

그러나 천상병 시인의 욕심없는 가난한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을

지닌 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다 가신 분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은 그에게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한 운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저승가는 길의 여비를 걱정할 정도였으니까요.

.

.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소릉조 뒷부분)

 

또 그의 고독한 외로움은 < 아가야 >라는 작품에 가득 베어있습니다

.

(중략)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 당했다고, 괴로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로 헤매어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곳 열어줄 엄마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마 !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 아가야 뒷부분)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을 그는 웃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고

순응할 줄을 알았습니다.

1988년 간경화증으로 배에 물이 차서는 임산부처럼 되어 병원에 입원했답니다.

모두들 포기하고 고개를 흔들 때 그는 시를 한수 지었습니다.

하느님 왜 나를…,  아직 할 일도 많은데…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시의 제목은 < 간의 반란 > 이었습니다.

재미있죠 ? 간의 반란. 위암에 걸리면 위의 반란(하긴 반위라고도 하데요), 머리가 아프면 골의 반란, 류마치스는 뼈의 반란…..

자신의 죽음마저도 장난기 어린 여유를 갖을 수 있는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시인과 서울대 상과대학. 어딘가 어울리지 않죠?

그러나 거기엔 가장 그다운 면이 있습니다. 전공을 선택하기 어려워 종이에 각각을 써서 던졌는데 상과를 쓴 종이가 가장 멀리 갔다나…

(이사람 바보 아냐….?) 그렇습니다. 돈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출세한 친구를 부러워할 줄 모르는 그는 진정 가장 똑똑한 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똑똑한 사람 많은 세상에 ’바보같이’ 살다 가신 그 분이 그립습니다.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요놈, 요놈, 요 이쁜놈’,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라며 특유의 3중 어법을 쓰셨다는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목숨까지도 투쟁의 담보로 쓰여지는 요즈음, 바보같은 모습으로, 욕심없는 모습으로, 애들 같은 모습으로, 가난에 찌든 쭈그러진 그 모습으로 깔깔깔 웃어제끼는 그 모습을 정말 한번 뵙고 싶습니다.

                      

 

 

나의 가난은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PS. 좋은 주말 되세요. 절대 아프지 마시구요.

    오랜만에 게으름뱅이 가을하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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