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성당 게시판

"좋은 말만 해도 못다하고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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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mistergom] 쪽지 캡슐

2003-04-15 ㅣ No.3787

 첫출근하던 날, 배달원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처량했습니다. 그가 맡은 구역은 말 그대로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삭막한 황톳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우편배달 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걸어다녀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근무하던 배달원은 이제 산다는 것 자체가 지겨웠습니다. 당장 때려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만둔다고 해서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백수로 빈둥거리다 모처럼 잡은 직장인데, 그마저 그만두면 다시 백수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또한 죽음과 같은 끔찍함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어렴풋이 눈을 뜨는 그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생각이 들었다기보다 어느 절대자로부터의 속삭임이 있었습니다.

 

 "내가 행복한 길을 만들면 될 게 아닌가!"

 

 그날부터 그 배달부는 자기가 다니는 길가에 꽃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온 뒤에는 꽃나무와 과실수를 옮겨심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다니는 길 양쪽에는 과실수와 꽃나무가 지천으로 제 모습을 뽐내며 그를 반겼습니다. 배달부 또한 매일매일이 황홀했고, 매일매일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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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걷는 인생길이 짜증나고 지겹고 팍팍하고 삭막해서 살맛이 안 난다고요? 그렇다면 그 배달원처럼 꽃씨를 뿌리고 과실수를 심어 보세요. 인생은 꾸미기 나름이랍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꾸미는 겁니다. 바카스병에 들꽃 한 송이 꽂아 식탁에 놓아 보세요. 그리고 그러기 전과 비교해 보세요. 문학에 관심이 있으면 하루에 시 한 수씩 읽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그리고 읽지 않았을 때의 나와 비교해 보세요. 놀랍지요? 더 나아가 이틀에 한 편 꼴로 시 한 편을 외운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그러고도 욕심이 생긴다면 직접 시를 써 보시구요.

 

 문학하고는 거리가 멀다고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 있어요. 그 친구는 내포적 의미를 싫어했어요. 지시어와, 오로지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만 좋아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걷는 삶의 길을 꾸밀 줄 아는 멋쟁이였지요. 그 친구는 무엇으로 꾸민지 아세요? 내, 참! 하루에 한 문제씩 수학 문제 푸는 걸 취미로 가졌대요. 그 친구가 가장 기뻐하는 날은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래요. 수학 문제가 공개되면 그걸 풀어서 만점을 맞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술잔 수가 달라진다나요. 그는 하루에 한 개씩 수학문제 푸는 걸로 인생길을 화려하게 꾸미고, 그로부터 생기를 얻고, 행복해하고 있답니다. 이 나이에!

 

 

 오늘부터 걷고 있는 인생길 양켠에 꽃씨 열심히 뿌리세요.

 당장 내일부터 행복해질 걸요.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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