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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예수회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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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30 ㅣ No.85

프란치스코 교황과 예수회 영성

교황의 청빈과 겸손ㆍ단순성은 이냐시오 영성에 뿌리





- 교황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겸손, 단순성은 복음과 아울러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성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크 시대 거장 피터 폴 루벤스가 그린 '성 이냐시오 로욜라' 초상(왼쪽 그림)과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프란치스코는 22살에 예수회에 입회해 평생을 설립자 성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의 영성으로 살아온 수도자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예수회 영성이 그의 '좌우 날개'이다.

미국 예수회원인 제임스 마틴 신부는 최근 한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새 교황은 오랜 기간 예수회에서 철저하게 양성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지역 예수회를 총괄한 적이 있다"며 "예수회 영성이 그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예수회 영성과 전통을 알면 교황이 왜 청빈하고 겸손한 삶을 추구하는지, 또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얼추 예상할 수 있다.
 

예수회는 고위직에 야망 품지 않아

우선 예수회 474년 역사상 최초로 교황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예수회원들은 본래 최종서원 단계에서 고위직에 오르고자 '애쓰지도 야망을 품지도' 않겠다는 특별서약을 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꺼린다. 심지어 동료 중에 누군가 고위직에 오르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신고하겠다는 서약을 한다. 그 이유는 설립자의 가르침 때문이다.

스페인 귀족 가문의 기사 출신인 성 이냐시오는 당시 세속에 물들어가는 교회와 입신양명에 한눈을 파는 성직자들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수도회를 설립할 때 "오로지 주님만을 섬기고, 그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배필인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느님의 더 큰 영향을 위해'라는 모토가 모든 활동과 의사결정 기준이다.

1541년 교황청 인가를 받고 예수회 첫 총장을 뽑을 때 일이다. 동료들이 예외 없이 설립자인 이냐시오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는 "나는 큰 죄인이라 지도하기보다는 지도받기를 원한다"며 투표를 다시 해달라고 애원했다. 재투표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오자 고해사제를 찾아가 사흘 동안 총고해를 한 뒤 회원들 뜻을 받아들였다.

마틴 신부는 "고위직에 오르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 교회의 가장 높은 지위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라며 "그러나 예수회 목적은 하느님 백성의 영혼을 돕는 데 있기에 교황은 많은 영혼을 도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 이냐시오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인을 감동시킨 교황의 청빈과 겸손, 단순함이야말로 성 이냐시오 영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모든 수도자는 청빈을 서약하지만, 이냐시오는 "청빈을 어머니처럼 사랑하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또 회헌 끝에 "청빈은 수도회의 보루로서, 수도회를 악마의 유혹에서 보호한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탐욕을 피해야 한다"는 지침을 끼워 넣었다.

이는 매우 단순명료한 가르침이다. 하느님은 강생(降生)을 통해 가난한 이들, 그것도 아주 낮은 이들에게 오셨기에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가난하고 낮은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예수회는 사물을 사랑하다 보면 하느님 영광이 아니라 세상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게 되기에 양성기간에 은둔과 가난을 강조한다.

예수회 한국관구 조인영 신부는 "예수회 고유의 수련방식인 영신수련(30일 침묵피정)은 가난과 겸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모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가난과 겸손은 이냐시오 영성의 큰 기둥"이라고 말했다.

예수회의 또 하나 특징은 사회 사도직과 정의를 위한 투신이다.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 '아래로'의 파견을 우선시한다. 게다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영적' 보화에 대해서만 선포하면 비웃음만 살 뿐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과감히 뛰어든다. 교황이 추기경 신분으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손수 밥을 차려 먹은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영성에서 나왔다. 교황은 교황직 시작미사 강론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부드러운 사랑으로 끌어안겠다"고 밝혔듯이, '아래로' 영성에 기초해 직무를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눈 밝은 사람은 알아챘겠지만, 교황은 며칠 새 예수회 특유의 단순성을 여러 면에서 드러냈다. 교황은 선출 직후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교황 복장을 모두 갖춰 입지 않고 흰색 수단 차림으로 나타났다. 교황직 시작미사(즉위식)도 과거에 비해 매우 간소하게 거행했다.

 
한 발을 들고 사는 자유로움

이러한 단순성은 16세기 예수회 설립 당시 시급한 선교적 요청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회는 교황청이 종교분열의 혼란에 맞서 반종교개혁운동을 전개할 때 그 선봉에 섰다. 종교분열의 불길이 알프스 이남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복음주의 개혁파 영향권에 들어간 지역을 재가톨릭화하는 데도 앞장섰다. 또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가 열리자 곧바로 남미, 인도, 중국 등으로 달려가 복음의 씨를 뿌렸다. 한 곳에 정주(定住)하거나 형식 또는 외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예수회원들은 흔히 "교황이 명령하면 즉시 떠나야 하기에 우리는 한 발을 들고 산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단순하고 자유롭게 살 수밖에 없다. 여타 수도회와 달리 수도복을 입지 않고, 함께 모여 시간전례(성무일도)를 바치지 않는 이유도 선교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성 이냐시오는 기도마저도 일상에서 짧게 하라고 했다. "하느님을 모든 것에서 찾으며 묵상하는 것이 추상적인 하느님에게로 올라가 그 안에 머무르려고 애쓰는 것보다 쉽다."(이냐시오 서한)

수도자들은 3대 서원(청빈ㆍ정결ㆍ순명)을 하지만 예수회원들은 교황에 대한 절대적 순명(선교서약) 등을 더해 총 9가지 서약을 한다. 예수회의 순명정신은 유명하다. 영신수련 규칙에 "내가 보기에 흰 것이라도 교계제도인 교회가 검다고 판정하면 그렇다고 항상 믿어야 한다"는 지침이 있을 정도다.

조인영 신부는 "교황의 소박한 삶은 파견된 자로서 특정 지역과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유연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라는 것이다.

독일 예수회 관구장 슈테판 키흘레 신부는 저서 「로욜라의 이냐시오」에서 "이냐시오는 자신의 영성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온 삶을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지하게 살고자 했을 뿐이다"하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31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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