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게시판

로마에서 있었던 추기경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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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봉 [akang] 쪽지 캡슐

2009-02-26 ㅣ No.1075

저는 싱가포르에서 오래 살았던 천주교 신자입니다. 이곳 주교좌 성당의 주임사제로 20년 가까이 계시는 동안 한인 공동체를 참 따뜻이 돌보아주셨던 싱가포르의 로버트 발헤체 신부님께 들은 김수환 추기경님 일화입니다.
 
김 추기경님께서 최연소 추기경으로 임명되신 얼마 후에 로마에 들르셨는데 하루는 일을 보시고 묵으시던 수도원에 늦게 돌아오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곳에 묵으시던 신부님들은 밤 10시인가 까지는 반드시 돌아오셔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마침 그 시간을 넘어서 돌아오신 것입니다. 거기서 일하시는 자매님이 문을 열어주셨는데, 추기경님이 엄청나게 야단을 맞으셨다네요. "도대체 요즘 젊은 신부들은 규칙도 안 지키고..." 하면서 아주 혼이 나셨답니다. 김 추기경님은 일반 신자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으시면서도 아무 이야기 안 하시고 미안하다는 말씀만 계속 하시더랍니다.
 
그 일을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음날 그 자매님에게 "당신이 어제밤 야단친 분이 누군지나 알아?" 하며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 자매님이 자기가 평소에는 바라보지도 못할 추기경님을 그렇게 야단을 쳤다는 걸 깨닫고는 거의 기절을 했답니다. 그 자매님은 다혈질인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평생을 천주교 신자로 살아온 사람인데 그 민망함이 어땠겠습니까?
 
그때 로마에서 공부를 하고 계셨다던 발헤체 신부님은 그 이야기를 전해 주시면서 그토록 겸손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고위 성직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추기경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발헤체 신부님께서 저에게도 정중한 김추기경님 조문 이메일을 보내주셨지요.
 
우리의 김 추기경님은 우리 나라에서만 사랑받으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20년 전 추기경님께서 싱가포르에 오셨을 때 가까이 모신 영광을 입었는데 저희같은 일반 신자 하나하나에게도 어찌나 배려를 해주시는지 상당히 감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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