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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필독] 신조어 번역 용어 영성체(領聖體) 에 대응하는 라틴어 용어 Communio 의 출처, 의미/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1122_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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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8 ㅣ No.2255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1. 들어가면서

 

1-1. 다음에 발췌된 바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328-1332항에서 발췌한, "성체성사"(the sacrament of thee Eucharist)의 여러 이름들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3.htm 

(발췌 시작)

성찬례(聖餐禮, Eucharistia, the Eucharist, CCC 1328),

주님의 만찬(Dominica Cena, The Lord's Supper, CCC 1329),

빵 나눔(Fractio panis, the Breaking of the Bread, CCC 1329),

성찬 모임(Eucharistica congregatio (σύναξις), the Eucharistic Assembly (synaxis), CCC 1329),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기념(Memoriale passionis et resurrectionis Domini, the Memorial of the passion,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Lord, CCC 1330), 

거룩한 희생 제사(Sanctum Sacrificium, the Holy Sacrifice, CCC 1330),

미사성제(聖祭)(sanctum sacrificium Missae, holy sacriface of the Mass, CCC 1330),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Sancta et divina liturgia, the Holy and Divine Liturgy, CCC 1330),

거룩한 신비들(Sanctorum Mysteriorum , the Sacred Mysteries, CCC 1330),

지극히 거룩한 성사(Sanctissimo Sacramento, the Most Blessed Sacrament, CCC 1330),

영성체(領聖體)/통공(通功)/공융(共融)(Communio, Holy Communion, CCC 1331), 그리고
거룩한 미사(Sancta Missa, Holy Mass, CCC 1332).

 

출처1: http://ch.catholic.or.kr/pundang/4/2005cc.htm
출처2: http://ch.catholic.or.kr/pundang/4/c1328.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31_c1391.htm  

(이상, 발췌 끝)

 

1-2. 바로 위에 발췌된 "성체성사"의 여러 다른 이름들 중에서, 특이한 이름이 한 개 있는데, 바로 "영성체(領聖體)/통공(通功)/공융(共融)(Communio, Holy Communion, CCC 1331)"입니다. 왜냐하면, (i) 라틴어 단어 "communio"(통공)"성체성사"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ii) 바로 이 라틴어에 대응하는 중국어 신조어 번역 용어가 "영성체(領聖體)"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1-3. "영성체(領聖體)"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literally), "성체"(聖體)를 받아 먹는다는 의미이므로, "영성체(領聖體)"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의 출처 및 기원의 파악을 제외하고, 더 들여다볼 필요성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나, 그러나, 바로 이 "성체"를 받아 먹는다는 의미를 라틴어 단어 "communio"(통공)가 가지고 있는지는, 한 번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1-3: 본글의 이어지는 항들에서, "영성체(領聖體)"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의 출처 및 기원의 파악 및 라틴어 단어 "communio"(통공)의 의미에 대하여, 가능한 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라틴어 단어 "communio"(통공/상통, 하나 됨)의 성서 신학적 및 교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와 바로 이 정의로부터 파생되는 이 용어의 용례(usage examples)들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유관 자료/사료 분석 I

 

이번 항에서는, "영성체(領聖體)"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하여,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 올라가면서, 실증적으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2-3.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6-1642년에 초간된, 이벽 성조"성교요지"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인, "천주강생성경직해"에서 발췌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발췌 시작)

"천주강생성경직해", 권9_49_야소건립성체대례or야소건정성체첨례_160-165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요한 복음서 13,1-15(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성목요일 복음 말씀); (2017년 1월 16일) 주: 공관 복음서들에 기록된 "최후의 만찬" 부분이 아니라,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세족례" 부분이 읽힘에 주목하라.] 

 

영성체_in_성경직해_권9_49_야소건립성체대례or야소건정성체첨례_제49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의 두 번째 줄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2.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 중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인, 이벽 성조"성교요지"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발췌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권7_3_입성체_136-137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마르코 복음서, 14,22-24(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말씀: 나해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 말씀); 1코린토 11,23-26(매년 성 목요일 최후의 만찬 제2독서)] [주: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잘 설명되어 있는 양형영성체에 대한 핵심 교리가 해석으로 주어져 있음]

 

영성체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7_3_입성체대례_제3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2-1.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15년에 초간된, 이벽 성조"성교요지"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인, "교요해략"에서 발췌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66-1640_알퐁소_바뇨니/1615_교요해략.htm

(발췌 시작)

교요해략_권지상_7_액격륵서아살격랄맹다유7_56-66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액격륵서아 = [라틴어] eccelesia, 즉, 교회, 살격랄맹다 = [라틴어] Sacramentum, 즉 성사(Saccrament); 7성사들과 그 해설들이 주어지고 있음. 다음의 일곱 성사들의 명칭들이 본문 중에서 소제목으로 라틴어 음역 용어들로 표기되어 있다는 생각이며, 여기에 제시된 바와 마찬가지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음: 1. 세례성사, 2. 견진성사, 3. 성체성사, 4. 고해성사, 5. 병자성사, 6. 신품성사, 7. 혼배성사] [(2017년 3월 8일) 주: 6. 신품성사 해설에서, "품급"(즉, 신품), "비사파"(즉, Bishop), "살책아탁덕"(즉, 전법사, 즉, 전도사),(*) "미살(米撒)"(즉, 미사) 등의 음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 한국고전번역DB 제공의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것을 알 수 있음: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h010&gunchaId=av010&muncheId=02&finId=002 ] [(2017년 8월 12일) 주: 4. 고해성사에 대한 해설(제54쪽 뒷면)에서, "諸聖相通功" 대신에,  "聖神相通功"이라는 표현을 본문과 각주에서 각각 한 번씩 여전히 사용되고 있음.] [(2017년 9월 30일) 주: 1. 세례성사에 대한 해설(제51쪽)에서 "원죄" 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살격랄맹다해략에서, 라틴어 단어 "Symbolus"의 음역 단어인 "성박록" 대신에, "신경"이라는 번역 용어가 갑자기,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되고 있음.][(2020년6월22일) 제49b쪽 "교중소위(教中所謂)"]

 

영성체_in_1615_교요해략_권지상_7_액격륵서아살격랄맹다유7_제52b-53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의 주해를 보라.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1: (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의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에서 소제목으로서 사용된 ""(공몽앙)이 라틴어 교회의 용어인 "Communio"음역(音譯) 용어임에 주목하라.

 

게시자 주 2-1: (2) 그러나,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출처: 상동.

(발췌 시작)

교요해략_권지상_4_12아파사다라성박록_33-51 (<--- 여기를 클릭하여 확인하라) [주: 사도신경과 그 해설] [(2017년 8월 12일)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국인 평신도 양정균(1562-1627년)의 저서인 "대의편"이 저술된 시기 이후에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된 해(1621년) 이전에, 교요해략 초판의 해당 낱글자들이 교체되어 그 중판이 출판되었다는 생각이며, 여기에 수록된 한문본 "宗徒信經" 에서, 1615년 초판의 "교요해략"에서 사용되고 있는 "聖神相通功" 이 "諸聖相通功" 으로 교체되었으며, 그리고 이 표현 앞에 있는 표현인 "我信斯彼利多三多"의 각주에서  "한문 문화권" 내에서 사용해온, 예를 들어, 1625년에 발견된 경교비문의 본문 중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오래된 한자 단어인"聖神"이라는 한자 단어의 전통적 자구적 의미/정의(definition)에 근거하여, 성삼위의 제3위격인 "Spiritus Sanctus(斯彼利多三多)"의 호칭/칭호로 사용하기 위한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서 "聖神"을 사용할 수 있는 근거/이유를, 초판에 주어진 동일한 문장으로, 계속하여 밝히고 있음.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 있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51.htm ] [(2017년 9월 30일) 주: 제34쪽 뒷면에 "원죄"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됨.] [(2017년 9월 30일)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 당한 후에, "地獄(지옥, hell)"에 내려가시어, 라고 말해지고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지옥(地獄, hell)"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의미는 구약 성경 용어인 "저승(히브리어: Sheol, 그리스어: Hades; 라틴어: inferus)"과 정확하게 동일함을 알 수 있음.]

(이상, 발췌 끝)

 

라틴어 교회의 용어인 "Communio"의 번역 용어인 "상통공"이 사용되고 있는 "성박록", [즉, "신경", 즉, "종도신경"의, 즉, "사도신경"] 중의 유관 부분인, 소위 요즈음 말하는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에 대한 바로 이 "교요해략" 해설에서, "상통공""Communio"의 번역 용어임을 전혀 밝히고 있지 않으며, 그리고 또한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의 의미에 있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5항, 제1476항 참조]들 중의 한 가지[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5항]만을 바로 이 "교요해략" 에서 오로지 서술하고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특히,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에서 말하는 "성인"(saints)들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I)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 또한 (ii) 소위 말하는, 은총의 지위에 있는 자들, 즉, 주교, 사제 (혹은 부제)가 집전하는 세례/성세성사 중에 축성된 성유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게 됨으로써 획득된 지위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는 자들을 말함을, 반드시 상기하도록 하라.

 

(3) 바로 위의 제(2)항에서 말씀드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6항에, 예를 들어, 주교, 사제 (혹은 부제)가 집전하는 세례/성세성사 중에 축성된 성유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세례를 받는 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수난 공로, 즉,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보속(satisfaction) 혜택을 입음을 포함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이상, 게시자 주 2-1 끝)

 

2-0.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89.htm

(발췌 시작)

3-3-1. 다음에 발췌된 바는, 델리아 신부님(1890-1963년)의 저술인 "Fonti Ricciane", Vol 2, N. 709, 제290b쪽에 기술되어 있는,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에 의하여 저술된 1605년 초판 "천주교요"의 소제목들 입니다:

 

(발췌 시작)

1605_천주교요_소제목들_in_Fonti_Ricciane_Vol_2_N_708_제290b쪽.jpg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칠성사들"(seven sacraments, 일곱 성사들)들에 대한 언급이 1605년 초간 "천주교요", 제12a쪽에 소제목으로서 기술되어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게시자 주 2-0: (1) 그런데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1605년 초간 "천주교요"가, 델리아 신부님께서 그 본문을 들어다보면서 위의 제2-0항에 기술된 해설을 남긴 이후인, 20세기 초반의 어느 시점에 분실되어, 지금까지 그 본문을 확인할 수 없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1605년 초간 "천주교요"에서 "영성체(領聖體)"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가 명기돠어 있는지의 여부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2) 지금까지 위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 및 게시자 주 2-1, 제(1)항에 의하여, "영성체(領聖體)"가 라틴어 교회의 용어인 "Communio"[음역(音譯): ""(공몽앙)]에 대응하는 신조어 번역 용어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아무리 늦더라도 1615년에 이르면, 라틴어 교회의 용어인 "Communio"[음역(音譯): ""(공몽앙)]에 대응하는 신조어 번역 용어로서 "영성체(領聖體)"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게시자 주 2-1-0 끝)

 

3. 유관 자료/사료 분석 II

 

바로 위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에 의하여, 무엇을 더 정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상당히 분명하게 파악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며, 이에 따라 라틴어 단어 "communio"(통공), 즉, "Christian communion"(그리스도인들의 통공)"의 의미/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가능한 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trinity"(삼위일체)라는 용어처럼, "communion"'성경 본문에서 직접 사용되고 있는 성경 용어, 즉, '협의(狹義)의 성경 용어'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vatican.va/archive/ENG0839/8/D8.HTM 

 

그러나, 또한 "trinity"(삼위일체)라는 용어처럼,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NAB, 1코린토 10,14의  주석이 의미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의] 통공"([Christian] communion)'성경 본문에 포함된 특정 개념을 나타내는 성경 용어, 즉, '광의(廣義)의 성경 용어'임은, 분명합니다.

 

3-2. 다음의 라틴어 사전으로부터 발췌된 바는, 라틴어 단어 "communio"의 오래된 용례들의 줄처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출처: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text:1999.04.0059:entry=communio2 

(발췌 시작)

commūnĭo , ōnis, f. communis,
I.a communion, mutual participation (several times in Cicero, elsewhere rare).
 

II. In eccl. Lat. [교회 라틴어]
A. Church communion, Sulp. Sev.(*) Hist. Sacr. 2, 45; 2, 37; Aug. in Ps. 57, n. 15.—Hence,
B. 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communion: “sancti altaris,Aug. Ep. 54, 6.

(이상, 발췌 끝)

 

3-2-1.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잘 알려진, 신뢰할 수 있는, 이 라틴어 용례 사전에 의하면, 기원전 고대 로마의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 - 기원전 43년)의 저술들에서 "communio"라는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되고 있다고 하며, 그 의미는 "상호 참여"(mutual participation)이라고 합니다.

 

3-2-2. 그리고 "교회의 통공"(Church Communion)이라는 표현이 그리스도인 저자인 Sulpicius Severus(기원전 450년에 죽음)의 책 "sacred history"에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3-3. 다음은, 위의 제3-2항에 발췌된 라틴어 사전 중에서 말해지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저술들 중에서, "communion"(통공)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용례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본 것입니다:

 

"sancti altaris" "Sacramentorum communionem"

 

출처: http://www.augustinus.it/latino/lettera_cattolici/lettera_cattolici_libro.htm 

(발췌 시작)

12. 31. [...] Ad Corinthios, ad Ephesios, ad Philippenses, ad Thessalonicenses, ad Colossenses vos solas Apostoli epistulas in lectione, nos autem et epistulas in lectione ac fide et ipsas Ecclesias in communione retinemus. Iam vero Galatia non una Ecclesia est, sed in ea regione innumerabiles. [...]

(이상, 발췌 끝)

 

출처: http://www.augustinus.it/latino/lettere/lettera_150_testo.htm

(발췌 시작)

Responsio ad quaestionem de Ps 16, 14a.


1. 3. Quia ergo tunc, sicut scripsi, non potueram inspicere codices graecos propter quaedam psalmi decimi sexti, inspexi postea quos inveni. Et unus habebat, quod et latini nostri: Domine, perdens de terra dispertire eos 2: alius sicut ipse posuisti: "A paucis de erra". Et illud quidem apertum habet sensum, "perdens de terra" quam eis dedisti, "dispertire eos" in gentibus: quod et factum eis est, cum gravi bello expugnati atque subversi sunt. Illud autem alterum quomodo accipiendum sit, non mihi occurrit; nisi quia in comparatione perditae multitudinis eorum, reliquiae salvae factae sunt, utique in paucis a quibus eos dispertiendos, hoc est dividendos atque separandos Scriptura praenuntiavit, dicens: Domine, a paucis, id est, a reliquiis quas ex illa gente salvas fecisti, de terra dispertire eos: ut terram intellegamus Ecclesiam haereditatemque fidelium atque sanctorum, quae dicitur et terra viventium 3, et quae etiam illo loco recte intellegi potest: Beati mites; quoniam ipsi haereditate possidebunt terram 4. Cum autem dictum esset: A paucis de terra divide eos, additum est, in vita eorum; ut in manifesto futurum intellegeretur, dum hic vivunt. Separantur enim multi ab Ecclesia, sed cum moriuntur, qui tamen cum vivunt, per Sacramentorum communionem unitatisque catholicae videntur Ecclesiae copulati. Isti ergo divisi sunt a paucis qui ex illis crediderunt, de terra quam sicut agrum suum excolit pater agricola 5: divisi autem in vita sua, id est hic in manifesto, sicut videmus. Sequitur autem: Et de absconditis tuis adimpletus est venter eorum; id est, praeter hoc quod in manifesto divisi sunt, etiam de absconditis tuis quae in occulto reddis conscientiae malorum, adimpletus est venter eorum: ventrem posuit pro internorum latentiumque secretis.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2 게시자 주 3-3: (1) 따라서, 기원후 400년대에 이르면, "교회의 통공", "통공 안에 있는 교회", "통공의 성사"(즉, 성체 성사) 등의, "communio"라는 용어가 사둉된 표현들이, 이미 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였습니다. 

 

(2) 그러나, 여전히 "Christian communio"([그리스도인들의] 통공)의 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3-2 및 게시자 주 3-3 끝)

 

3-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서 다마스쿠스 사람(Damascene)으로 불리면서 그의 대표적 저술인 De Fide Orthodoxa(정통 신앙에 대하여)로부터 총306번이 인용되고 있는, 마지막 그리스 교부(Greek Father)인,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675-749년)의 저서인, 영어본 "정통 신앙에 대하여"(De Fide Orth) 전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발췌된 바는, 아래의 제3-5항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 중에서 발췌되고 있는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t/675-749_John_of_Damascus/De_Fide_Orthodoxa,_EN.pdf  

(발췌 시작)

DE FIDE ORTHODOXA: AN EXACT EXPOSITION O: L.3, C.13

 

BOOK IV

CHAPTER XIII. Concerning the holy and immaculate Mysteries of the Lord.

 

[...]

 

Participation is spoken of; for through it we partake of the divinity of Jesus. Communion, too, is spoken of, and it is an actual communion, another, being of one body with Christ. because through it we have communion with Christ and share in His flesh and His divinity: yea, we have communion and are united with one another through it. For since we partake of one bread, we all become one body of Christ and one blood, and members one of another, being of one body with Christ.

 

참여의 행위(participation)가 말해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신성을 함께 나누기(partake of) 때문입니다. 통공/통공의 행위(communion)가 또한 말해지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의 몸을 구성한다는, 또다른, 한 개의 현실태적 통공의 행위(an actual commuion)인데,(#1) 왜냐하면 이 행위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이어졌으며(have communion with, 즉, communicate with) 그리하여 당신의 살 및 당신의 신성을 함께 나누기(share in) 때문입니다: 참으로(yea), 우리는 이 행위를 통하여 서로 이어졌으며 그리하여 결합되었기(have communion and are united with one another) 때문입니다. 이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의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는 그리스동의 하나의 몸 및 하나의 피가 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나의 몸(one body with Christ)을 구성하는, 다른 이에 대한 하나인(one of another) 구성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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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성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communion"의 신약 성경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전혀 예상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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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4: 여기를 클릭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에서 다마스쿠스 사람(Damascene)으로 불리면서 그의 저술들로부터 총 365번[그의 대표적 저술인 De Fide Orthodoxa(정통 신앙에 대하여)로부터 총306번]이 인용되고 있는, 마지막 그리스 교부(Greek Father)인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St. John of Damascus, 676-749년)의 생평에 대한 요약 글(성인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3-5. 그리고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1: https://www.newadvent.org/summa/4073.htm [영어본]

출처 2: https://isidore.co/aquinas/summa/TP/TP073.html#TPQ73A4THEP1 [주: 라틴어 정본 및 영어본]

(발췌 시작)

Article 4. Whether this sacrament is suitably called by various names? 

 

제4조. 바로 이 성사가 다양한 이름들로써 불리게 되는 것이 적합한지?

 

[...]

 

I answer that, This sacrament has a threefold significance. one with regard to the past, inasmuch as it is commemorative of our Lord's Passion, which was a true sacrifice, as stated above (III:48:3), and in this respect it is called a "Sacrifice."

With regard to the present it has another meaning, namely, that of Ecclesiastical unity, in which men are aggregated through this Sacrament; and in this respect it is called "Communion" or Synaxis. For Damascene says (De Fide Orth. iv) that "it is called Communion because we communicate with Christ through it, both because we partake of His flesh and Godhead, and because we communicate with and are united to one another through it."


저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바로 이 성사는 어떤 세 겹(threefold)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과거 쪽으로 관련하여, 그것이 주님의 수난에 대한 기념인 한, 그것은, 위에서 (III:48:3) 서술되었듯이, 한 개의 참된 희생 제물이었으며, 그리하여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것은 한 개의 "거룩한 희생"(Sacriface)이라고 불립니다. 현재 쪽으로 관련하여 그것은 다른 의미. 즉, 교회의 일치(Ecclesiastial unity)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바로 이 성사를 통하여 모이게 되며, 그리하여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것은 "통공"(Communion) 혹은 회중(Synaxis)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다마스 사람(Damascene)[즉,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이 (De Fide Orth. iv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통공/통공의 행위(Communion)이라고 불리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당신의 살(flesh)과 신격(Godhead)을 함께 나누기 때문, 그리고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통하여 서로 이어져(communicate with) 그리하여 결합하게 되기(are united) 때문, 이들 둘 다 때문인,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이어지기(communicate with Christ)(#2)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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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자 주: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바로 이 기술의 신약 성경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전혀 예상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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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regard to the future it has a third meaning, inasmuch as this sacrament foreshadows the Divine fruition, which shall come to pass in heaven; and according to this it is called "Viaticum," because it supplies the way of winning thither. And in this respect it is also called the "Eucharist," that is, "good grace," because "the grace of God is life everlasting" (Romans 6:23); or because it really contains Christ, Who is "full of grace."


미래 쪽으로 관련하여 그것은 세 번째 의미를 가지는데, 바로 이 성사가, 하늘에서 장차 반드시 실현될(shall come to pass), 신성적 결실(Divine fruition)을 사전에 예시하는(foreshadows) 한, 그리하여 바로 이것에 따라 그것은 "비아띠쿰"(Viaticum, 노자성체 (路資聖體))이라고 불리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저쪽에서(thither) 성공(winning)의 길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것은 "Eucharist", 즉, "좋은 은총"(good grace)이라고 또한 불리는데, 왜냐하면 "하느님의 은총은 영구하는 생명(life everlasting)" (로마 6,23)이기 때문, 혹은 왜나하면 그것이, "은총으로 가득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실제로(really)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In Greek, moreover, it is called Metalepsis, i.e. "Assumption," because, as Damascene says (De Fide Orth. iv), "we thereby assume the Godhead of the Son."

 

그리스어로, 더 나아가, 그것은 Metalepsis, 즉, "취함"(Assumption)이라고 불리는데, 왜냐하면, 다마스 사람(Damascene)[즉,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이 (De Fide Orth. iv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성자의 신격(Godhead)을 취합니다(assume)."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 유관 자료/사료 분석 III

 

4-1.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7.htm

(발췌 시작)

3-4.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communion(통공, 하나 됨)" 이라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398.htm
(발췌 시작)
COMMUNION

 

In Christian parlance the most sacred expression for any one of different forms of togetherness. As communion between God and the human soul in the divine indwelling; between Christ and the recipient of the Eucharist in Holy Communion; among all who belong to the Mystical Body in heaven, purgatory, and on earth in the Communion of Saints; and among those who belong to the Catholic Church as a communion of the faithful. (Etym. Latin communio, sharing unity, association; participation.)

 

통공/상통(相通)(communion, 하나 됨)

 

그리스도인들의 어법(parlance)에 있어 일체(togetherness, 하나 됨)의 서로 다른 형식들 중의 어느 한 가지에 대한 가장 성스러운 표현을 말합니다.  (i) 신성의 내재(內在)(the divine indwelling)에 있어 하느님과 인간의 영혼 사이에 있는 통공(하나 됨)으로서(as communion); (ii) 영성체(領聖體, Holy Communion)에 있어 그리스도와 성체의 수령자 사이에 있는 통공(communion, 하나 됨)으로서; (iii) 성인들의 통공(the Communion of Satins)에 있어 하늘(heaven, 천당), 연옥(purgatory)에 그리고 땅 위에 있는 신비체(the Mystical Body)에 속하는 자들 모두 사이에 있는 통공(하나 됨)으로서; 그리고 (iv) 가톨릭 교회에 속하는 자들 사이에서 열심 신자들의 한 개의 통공(하나 됨)으로서(a communion). [Etym. Latin communio, sharing unity(함께 나누는 일치/단일성), association(교제); participation(공유).]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4: 다음은,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communicant"라는 용어의 설명 전문입니다:

 

출처: http://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393.htm 

(발췌 시작)

COMMUNICANT

 

One who receives Holy Communion. The term also applies to all faithful and active members of a church, as distinct from merely nominal Catholics. (Etym. Latin communicare, to participate in, have in common; to inform, make generally known.)

 

성체 배령자(拜領者)(communicant)

 

영성체(領聖體, Holy communion)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 용어는, 단지 이름분인 가톨릭 신자들과 구분되는 것으로서, 어떤 교회의 열심이고 활동적인 구성원들 모두 쪽으로 또한 적용됩니다. [어원. 라틴어 communicare, to participate in, have in common; to inform, make generally known.]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게시자 주 3-4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1: 그러나, 위에 발췌된 "communion"의 설명은,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이라기 보다는, 바로 이 개념믜 용례(usage examples)들 네 개를 제시하고 있음에 주복하라.

 

4-2.

출처: http://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393.htm 

(발췌 시작)

3-5.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communion of saints(성인들의 통공)" 라는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402.htm
(발췌 시작)

COMMUNION OF SAINTS

 

The unity and co-operation of the members of the Church on earth with those in heaven and in purgatory. They are united as being one Mystical Body of Christ. The faithful on earth are in communion with each other by professing the same faith, obeying the same authority, and assisting each other with their prayers and good works. They are in communion with the saints in heaven by honoring them as glorified members of the Church, invoking their prayers and aid, and striving to imitate their virtues. They are in communion with the souls in purgatory by helping them with their prayers and good works.

 

성인들의 통공/상통(相通)(communion of saints)

 

하늘(heaven, 천당)에 있는 그리고 연옥(purgatory)에 있는 자들과 땅위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의 일치/일체성(unity)과 상호협력(co-operation)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신비체(one Mystical Body)가 되는 것으로서 결합됩니다. 땅 위에 있는 열심 신자들은 동일한 믿음(faith, 신덕)을 고백함으로써, 동일한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그리고 자신들의 기도(prayres)들과 선행(gook works)들로 서로를 도움으로써, 서로(each other)와 통공(하나 됨)의 상태에(in) 있습니다. 이 열심 신자들은 하늘에 있는 성인들과, 그들을 교회의 영광을 받은(glorified) 구성원들로서 공경함으로써, 그들의 기도들과 도움을 간청함(invoking)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덕(virtues)들을 본받기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통공(하나 됨)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 열심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자신들의 기도들과 선행들로 이들을 도움으로써, 통공(하나 됨)의 상태에 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2: (1) 그러나, 바로 위에 제시된 설명은, "통공"(communion)정의(definition)이라기 보다는, 예를 들어지상에 잇는 열심 신자들"통공"(communion)이라는 상태 쪽으로 변성하기(become) 위하여 필수적인 것들로서 제시된 몇 개의 실천 원리(practical principles)들을 기술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실천 원리들을 충족시키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통공"(communion)이라는 상태에 머무르는 자들이 있을 수도(may)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통공"(communion)이라는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지의 여부에 판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권한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2) 따라서,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통공"(communion)이라는 상태에 머무름정의(definition)가 정확하게(precisely) 무엇인지는, 바로 위에 발췌된 바로부터는 여전히 알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 그리고 또한,  바로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을 최초로/처음으로 제정하기(establish) 위하여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도 반드시 올바르게 알아차려야 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3-5 끝)

 

4-3.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07.htm

(발췌 시작)

 

1-1. 다음은 필자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가해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의 3분 복음/교리 묵상란에 주어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194-195항들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10일] 
(발췌 시작)

CCCC 194.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CCC 946-953, 960


바로 이 표현은 우선적으로 거룩한 것(the holy things, sancta)들에 있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공통의 함께 나누는 행위(common sharing)를 나타내는데,(#3) 이 거룩한 것들에는 믿음(faith, 신덕), 성사(sacraments)들, 특히 성체성사(the Eucharist), 은사(charisms)들, 그리고 다른 영의 선물(the other spiritual gifts)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통공(communion, common union, 하나 됨)의 뿌리에는 애덕/사랑의 행위(love)가 있는데,(#4) 이 애덕/사랑의 행위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1코린토 13,5) 열심 신자들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도록”(사도행전 4,32) 이끌고, 심지어 자신 소유의 물질적 재화(material goods)들을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에 내어 놓도록 이끕니다(엮은이 번역).

 

(*): 성령칠은들과 은사(charisms, charismata)들로 구분되는 ‘영의 선물들’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0.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corpus_c946.htm

 

CCCC 195. 이것들 이외에 '성인들의 통공'이 뜻하는 다른 것들은 무엇입니까?
CCC 954-959, 961-962


이 표현은 또한 거룩한 인격(the holy persons, sancti)들, 즉,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은총에 의하여 결합된 자들, 사이의 하나 됨(communion, common union, 통공)을 말합니다. 이들 중의 일부는 이 세상의 순례자(pilgrims)들이고, 다른 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친 후에 정화(purification)를 겪는 중에 있으면서 우리의 기도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 또 다른 자들은 이미 하느님의 영광을 향유하면서(enjoy)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고 있습니다(intercede). 이들 모두는, 성삼위(the Trinity)의 찬미(praise)와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가족인 교회(the Church)를 형성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corpus_c954.htm 

(이상, 발췌 끝) 
[이상, 2021년 8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1-2. 위의 제1-1항에서 발췌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194-195항들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항들을 요약한 것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8월 10일] 
CCCC 194의 경우: CCC 946-953, 960
 
CCCC 195의 경우: CCC 954-959, 961-962 
[이상, 2021년 8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4-3: (1) 위에 발췌된 CCCC 194의 기술에서, "통공"(communion)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용례를 기술하면서[주: (#4) 전후에서], 성경 본문들을 그 기술의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만, 그러나 여전히 "Christian communio"([그리스도인들의] 통공)이라는 용어 자체의 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위에 또한 안내해 드린 유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항들에서도 "Christian communio"([그리스도인들의] 통공)이라는 용어 자체의 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4-3 끝)

 

 

5. 본글의 결론들

 

5-0. 다음에 발췌된 바는, 위의 게시자 주 2-0에서 이미 도출된 결론들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 및 게시자 주 2-1, 제(1)항에 의하여, "영성체(領聖體)"가 라틴어 교회의 용어인 "Communio"[음역(音譯): ""(공몽앙)]에 대응하는 신조어 번역 용어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아무리 늦더라도 1615년에 이르면, 라틴어 교회의 용어인 "Communio"[음역(音譯): ""(공몽앙)]에 대응하는 신조어 번역 용어로서 "영성체(領聖體)"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5-1. 위의 제4항에 발췌된 바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의 "통공"/"통공의 행위"(communion)이라는 개념이 어떠한 경우들에까지 살펴보았으며, 그리고 위의 제2항제3항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 용어가 언제쯤에 이르면 이미 지금 사용되고 있는 의미와 마찬가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였습니다. 

 

5-2.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본글에서 또한, 어떤 두 대상들 사이의 통공(communion)은, 결국에, "그리스도교 신자 한 사람과 예수님과의 통공"(A)의 보급(普及)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형성되므로, 바로 이 통공(A)정의(definition)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5-3.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송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그리스도교 신자 한 사람과 예수님과의 통공"(A)정의(definition)요한 복음서 15,10 및 15,12에 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13.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1-0. 본글은 예수님(포도나무)과 그리스도교 신자(그 가지)들 사이의 통공(communion)의 성경 근거가 분명한, 요한 복음서 15,9-12가, 우리나라 지역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바로 이 훼손을 회복시키고자 작성되었습니다.

 

즉, 본글은, (i)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경우와, (ii) 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의지/뜻(will)가 또한 분명하게 전달되는 표현인,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act) 안에 머무는" 경우, 이들 둘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입니다.

 

1-1. 우선적으로, 요한 복음서 15,9-17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부활 제6주일 복음 말씀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east_6.htm 

 

특히,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한 복음서 15,10에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인,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 사이의 공통 결합(common union), 즉, 통공(communion)을 형성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이 제시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

 

2-1.

2-1-1.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15,9-17 전문입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2&n=150&p=15 

(발췌 시작)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상, 발췌 끝)

 

2-1-2. 그런데, 바로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를 가만히 읽어보면, "사랑한다"는 성부 하느님의 행위(act),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행위(act),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새 계명으로서 요구하는 바도 또한 "사랑한다"행위(act)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i) 바로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15,9-17 전문과 (ii) 바로 아래에 있는 - 다음 - 사이에, 그 내용의 이해에 있어 수월함 여부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 다음 - 은, 바로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에서, 한 개의 차용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를, 전후 문맥 안에서, 동사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사의 명사형(verbal noun) 형태의 표현, 즉, '동작'(움직임, movement)을 나타내는 명사형 형태인, "사랑의 행위"로 교체하여 마련한 한 개의 단락입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에서 "내"[즉, 나의(my)} 및  "그분의"는, 왜냐하면 이어지는 명사 표기인 "사랑"의 주체/주어(Subject)이기 때문에, 이어지는 명사 표기 "사랑""동사의 명사형"임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어법상의 근거일 것입니다. 그리고 "계명"[번역 오류] 대신에, 복수임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계명"로 번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 다음 -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사랑의 행위[즉, 나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의 행위[즉,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계명을 지키 장차(will)  사랑의 행위[즉, 나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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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A): 왜냐하면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이라는 바로 앞에 배치된 문장에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과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름"이 논리적으로 등가이듯이(logically equivalent), 또한 마찬가지로,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사용된 "if"(...)는, 정의(definition)의 문장에서 사용되는 "if", 즉, 논리적으로 등가인 "if and only if"에 해당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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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행위는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이상, 다음 끝 -

 

[...]

 

3-3-1. 그리고 위의 제1항제2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또한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3)(Sun T. Soh) 예수님과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의 통공(communion)의 성경 근거요한 복음서 15,10 및 15,12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특히 요한 복음서 15,10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계명들(commandments) 중에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가 포함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따라서, (i)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명령을 하여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세례자 요한이 다른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준 다른 세례와는 현격하게 다르게,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받는 세례"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세례이며,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과 그 이후의 시기에 바로 이 동일한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받는 세례"를 받게 되는 피조물인 사람은,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받으신 동일한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받는 세례"를 받기 때문에, 요한 복음서 15,10ㄴ에 따라,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dilectio)에 의하여, 비로소 예수님과의 통공이 처음으로 가시적으로/현실태적으로 형성될 수 있게 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ii) 요한 복음서 15,12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당신의 새 계명을 지키는 행위/실천하는 행위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세례에 의하여 형성된 예수님과의 통공이라는 상태가, 또한 요한 복음서 15,10ㄴ에 따라,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dilectio)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유지가 됨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5월 17일]

게시자 주 3-3-1: 따라서, 요한 복음서 15,10 및 15,12에 의하여 일단 예수님과 특정 그리스도교 신자와의 통공이 형성되어 유지되면, 성부 하느님과 바로 이 그리스도교 신자와 의 통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한 결과를 말하는 요한 복음서 15,10ㄱ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형성되어 유지됨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2021년 5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3-3-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심에 대한 졸글/논문[제목: 예수님께서는 왜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실까요? [예수 세미나] [교리학습] 1114_나자렛사람들 281_ ; 게시일자: 2011-09-28]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14.htm <----- 필독 권고

 

따라서, 본글은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3)을 필자가 도출한 것입니다.

 

3-3-3. 따라서,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3)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다음의 결론을 또한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4)(Sun T. Soh)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의 통공(communion)의 성경 근거요한 복음서 15,10 및 15,12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의 통공은, 1차적 통공인 예수님과 각 그리스도교 신자 사이의 통공을 거쳐서 비로소, 2차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벗의 벗은 나의 벗이 아닐 수도 있으나, 그러나, "나의 교우(敎友)의 교우(敎友)는 또한 나의 교우(敎友)임"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왜 진리이라고 받아들이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도록 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5월 17일]

다음과 같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가르치셨듯이:

 

출처: http://www.vatican.va/content/john-paul-ii/en/apost_exhortations/documents/hf_jp-ii_exh_06111999_ecclesia-in-asia.html

(발췌 시작)

Communion with Jesus, which gives rise to the communion of Christians among themselves, is the indispensable condition for bearing fruit; and communion with others, which is the gift of Christ and his Spirit, is the most magnificent fruit that the branches can give.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통공(the communion of Christians)을 생기게 하는(gives rise to), 예수님과의 통공(communion with Christ)은 열매를 맺기 위항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당신의 영의 선물인, 다른 이들과의 통공은 포도나무의 가지들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장대한 열매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2021년 5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끝)

 

5-4. 바로 위의 제5-3항에 발췌된 바 중의 - 다음 -게시자 주(A)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5)(Sun T. Soh)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즉, 세례 인호가 그 영혼에 이미 박힌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대죄(mortal sin)를 범하지 않는 한,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 안에 머무름"이란 곧 "당사자가 '예수님과의 통공(A)'이라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의 한 말단(末端)(a terminal) 임"이라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바로 이 참포도나무의 한 개의 나무가지로서] 이어져 있음(communicating with Jesus)(요한 복음서 15,1-17 참조)이라는, 상태에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5-4: (1) 아래에 발췌된 -다음-의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의 행위[즉,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요한 복음서 15,10ㄱ)에서 "그분의 사랑의 행위[즉,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무른다"는 표현이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이어져 있음(Jesus communicates with God the Father)에 머물러 있음"을, 즉,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통공(communion)이라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에 머물러 있음"을, 기술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따라서, 바로 이 동일한 표현 방식에 의거하여, (이 글의 결론 5)를 필자가 도출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해석은, 다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즉, 성자 하느님은 성부 하느님과 항상 이어져 있는데 이들 두 위격들 사이의 바로 이 항상 이어져 있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란, 곧, 이들 두 위격들 사이의 사랑/사랑의 행위이라고 말해지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이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들 두 위격들 사이의 항상 이어져 있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성령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결론 6)(Sun T. Soh)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즉, 세례 인호가 그 영혼에 이미 박힌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대죄(mortal sin)를 범하지 않는 한, 요한 복음서 15,10ㄴ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킴"이, 곧 "당사자와 예수님과의 통공(communion)이라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의 한 말단(末端)(a terminal) 임"정의하는 조건(a defining condition)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5-4: (2) 세례 인호가 그 영혼에 이미 박힌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대죄(mortal sin)를 범하지 않는 한, 요한 복음서 15,10ㄴ에서 말하는 충분 조건인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킴"이, 곧 "당사자와 예수님과의 통공(communion)의 한 말단(末端)(a terminal) 임"정의하는 조건(a defining condition)인 이유는, 세례 인호가 그 영혼에 이미 박힌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대죄(mortal sin)를 범하지 않는 한, 요구되는 그 필요 조건은,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을 수용함이라는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 안에 머물고 있으면서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 자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바로 아래에 발췌된 -다음-의 전체 문맥 안에서 게시자 주(A)로서 말씀드린 바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충족됨 때문임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발췌 시작)

- 다음 -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사랑의 행위[즉, 나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의 행위[즉,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계명을 지키 장차(will)  사랑의 행위[즉, 나의 사랑을 받고 있음]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 게시자 주(A): 왜냐하면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이라는 바로 앞에 배치된 문장에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과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름"이 논리적으로 등가이듯이(logically equivalent), 또한 마찬가지로,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사용된 "if"(...)는, 정의(definition)의 문장에서 사용되는 "if", 즉, 논리적으로 등가인 "if and only if"에 해당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

(이상, 발췌 끝)

 

따라서, 또한 다음의 따름 정리 한 개(a corollary)를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7)(Sun T. Soh)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즉, 세례 인호가 그 영혼에 이미 박힌 그리스도교 신자들 경우에, 대죄(mortal sin)를 범하지 않는 한, 요한 복음서 15,10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킴"을, 예를 들어요한 복음서 제6장의 가르침에 따라 "영성체(領聖體, 즉, 성체를 받아 먹음)" 등을 충실하게 준수할수록, "당사자와 예수님과의 통공(communion)이라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의 한 말단(末端)(a terminal) 임"의 상태, 즉, "예수님과 당사자 사이에 형성되는 은총의 지위에 머무르고 있음"이 더욱더 굳건하게 될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5-4: (3) 바로 위의 (이 글의 결론 7)에서 말씀드린 이유, 즉, 요한 복음서 제6장에서 예수님의 양보 없는 가르침/계명에 따라, "영원한 생명의 획득"의 필요충분 조건인 "영성체(領聖體, 즉 성체를 받아 먹음)"를 나타내는 용어로서 라틴어 단어 "Communio"을 또한, 교회의 초기 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4) 그리고 요한 복음서 15,10ㄴ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계명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나열해보면, 다음의 것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i)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을 것.

(ii) 십계명들.

(iii) "진복팔단"으로 시작하는 "산중성훈"(마태오 복음서 제5장 - 제7징), 특히 이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거명하신 의로운 일들인 기도, 단식, 자선제공(물적 자선 7개, 영적 자선 7개)

(iv)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v)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랴." [새 계명] (요한 복음서 15,12; 1요한 4,12 필히 참조).(*1)

(vi) "용서하라", "자비를 베풀어라". "원수를 사랑하라."

(vii) "(6개로 나열되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들을 범하지 말라." (루카 복음서 12,10)(*2)

(viii) 영성체 할 것(요한 복음서 제6장) 등, 성사 생활에 충실할 것.

 

등,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며,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대죄를 범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준수를 더 잘 할수록, "더 돈독하게, 예수님과의 통공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즉, "더 두터운 은총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들 중에서

 

(iii) 기도, 단식, 자선제공(물적 자선 7개, 영적 자선 7개) (마태오 복음서 6,1-18)

(v) 새 계명 (요한 복음서 15,12; 1요한 4,12 필히 참조).(*1),

(vii) "(6개로 나열되는) 성령을 거스르는 죄들을 범하지 말라." (루카 복음서 12,10) (*2) 그리고

(viii) 영성체 할 것 (요한 복음서 제6장),

 

이들 넷은,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교 신자, 즉, 세례 인호가 그 영혼에 이미 박힌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특별히 강조하신, 따라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요한 복음서 15,10ㄴ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계명들에 포함되는, 계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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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졸고[제목: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게시일자: 2016-07-20]를 꼭 읽도록 하십시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꼭 읽으실 것을 강력히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졸고[제목: 성령을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가지; 게시일자: 2012-10-23]를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6.htm <----- 필독 권고


[유관 글들의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six_sins_against_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혹은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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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게시자 주 5-4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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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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