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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똥묻은개와겨묻은개(사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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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4-04-01 ㅣ No.4332

사순 제 5 주일                                                           2004. 3. 28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화요일 친구 신부를 땅에 묻고 왔습니다.

이 친구는 췌장암으로 쓰러져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병(病)은 이렇게 사람을 우습게 쓰러뜨려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무서운 놈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병(病)을 악마, 마귀에 빗대어 病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거꾸러뜨리는 몸 속의 병도 무서운 것이지만 마음의 병 또한 무서운 것입니다.

몸 속의 병이나 마음 속의 병이나 모두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마음 속에 단단히 병이 든 사람들의 무리가 등장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보는 얼치기 재판관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법에 따라 이  여자를 돌로 쳐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들은 이미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법을 위해서라면 한 여자의 생명은 장난감처럼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정의라고 그들은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이 여자로 인해서 예수님은 어려운 처지에 빠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시며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설교하는 분이 여자를 죽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여자를 살리자니 율법을 어긴 사람으로 고발당할 것입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퇴양난이요 막다른 골목입니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올가미를 던졌다고 적대자들은 희희락락합니다.

빨리 대답을 하라고 성화입니다. 그것은 빨리 피를 보아야겠다는 발광입니다.

고발자이자 동시에 재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집요하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을 단죄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죄는 감추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오랫동안 침묵하십니다.

오랜 침묵은 분명 고민의 흔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 여자를 살려낼 수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의 침묵은 고민의 흔적 그 이상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침묵은 어느 누구의 죽음도 원치 않는다는 소리 없는 항변입니다.

하느님의 길은 율법을 통한 살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무언의 항변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빠져나간 비인간적인 율법은 하느님의 법이 아니라는 무언의 항변입니다.

 

그것은 또한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보라는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은 자기 소리 지르기에 바쁜 법입니다.

 

이 해인 수녀님은 당신의 첫 번 째 시집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들려옵니다...

비 온 뒤의 햇살 같이 안으로 스며드는 당신의 음성...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주님, 가까이 들려옵니다.

 

그렇지만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침묵 중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습니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단 한 마디 던지십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든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십시오!"

 

주님의 이 말씀 한 마디가 상황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것은 단지 상황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바깥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 눈 앞에 죄인의 모습으로 고발된 여인을 바라보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곧 죄인으로 새롭게 고발될 주님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기에 바빴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십시오!"

그런데 이 말씀 한 마디로 사람들은 갑자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신 있게 돌팔매질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자기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피고석으로 떨어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그들 마음 속에도 다행스럽게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변화의 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싹에 말씀의 물을 주자 갑자기 그 싹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그들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하! 내가 죄인이었구나!

"내가 똥 묻은 개였는데 겨 묻은 개를 보고 더럽다고 하였구나!"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을 바깥에서 안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바깥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 이것이 종교입니다.

사람들은 말씀의 돌멩이에 맞아 미움과 죽음의 돌멩이를 내려 놓았습니다.  

 

우리들 중에 무거운 돌멩이를 매일 매 시간 들고 다니는 바보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움의 돌멩이, 용서하지 못하는 돌멩이는 무겁게 늘 마음 속에 들고 다닙니다.

우리들이 바깥으로부터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좀 더 바라보는 데 충실할 수 있다면

우리들도 마음 속의 무거운 돌멩이들은 쉽게 던져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도 여러분이 죽음과 미움의 돌멩이를 들고 있었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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