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펀글]마지막!

인쇄

김대근 [bosco99] 쪽지 캡슐

2000-05-28 ㅣ No.777

안녕하세요.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드디어 '분노보다는 슬픔이' 연재를 마쳤습니다. 시작할 때의 간절함보다 마치면서 착찹함이 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마 광주를 기억하고자 했던 것에 조금 위안을 가지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생활 안에서 광주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있는 제 자신을 책망해 봅니다. '분노보다는 슬픔이'를 연재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 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이 글을 올릴 수 있었던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연재를 마치면서 저의 개인적인 체험을 몇가지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광주 망월동 묘역을 처음으로 찾아 가려던 것은 지금부터 10년전입니다. 광주 항쟁 10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대대적인 집회가 계획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별로 하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지구 청년 대표자 협의회(지대협)' 임시 의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교구에서 함께 하던 청년들과 광주를 내려가려고 했지요. 그러나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광주가 이미 봉쇄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동 성당에서 또다른 집회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주로 가기 위해 모였던 청년들은 명동 성당에서 철야 집회를 하면서 다음날 집회를 준비했습니다. 광주는 여전히 가진 자들에게 있어서 눈에 가시였습니다. 광주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라고는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광주에서 함께 할 수 없었던 암울한 현실을 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95년에 뜻깊은 광주 순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 3학년 때 본당 청년들과 함께 광주 도보 순례를 했지요. 함께 일주일 간 학습을 하고, 전남대학교에서 시작해서 광주 시내 일원을 직접 걸으면서 당시의 함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걸어서 망월동을 찾았고, 광주 시민들의 따뜻함을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주일 새벽 미사를 어느 성당에서 드렸는데, 그곳 신부님이 참으로 자상하게 망월동까지 도보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말에, 광주를 순례하기 위해 왔다는 말에, 망월동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말에, 대견하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지요. 말 그대로 감격적인 망월동 참배였습니다. 허름한 묘역은 그 날의 피맺힌 한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열사들의 묘를 참배하면서 기도하고 다짐했지요. 결코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죽은 자와 산 자의 연대와 일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97년에 다시 광주를 찾았습니다. 5학년 신학생들의 하계 방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몇몇 신학생 형제들과 말입니다. 광주 정평위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무등산의 정기를 느끼려 산에 오르기도 했지요. 그리고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실망했습니다. 차라리 오지 말 것을... 두 해 전에 찾은 망월동이 아니었습니다. 말끔히 정리된 묘역들, 그러나 80년의 아픔을 박제화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광주의 피는 묘역만 정리된다고 씻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참 광주는 잊혀지고, 깨끗한 묘역만이 광주를 상징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수유리 4,19 국립묘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올 해는 대통령이 직접 광주를 찾았습니다. 내노라하는 정치인들도 찾았습니다. 그러나 과연 20년전 광주의 영령들이 외쳤던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해마다 광주 항쟁 기념식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광주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진정 광주 영령들의 외침과 이상이 이 땅에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은 그 의미를 잃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광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20년 전 광주가 온 몸으로 외쳤던 것을 삶으로 드러내지 않는 한 말입니다. 새로운 다짐으로 오늘을 보내며 내일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5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