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중고등부] 가톨릭과 포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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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okKu,Lee [nikolas9] 쪽지 캡슐

1999-11-04 ㅣ No.1656

 가톨릭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개신교간 교리상의

차이점을 소재로 한판(?) 붙어본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주변의

친구들도 가끔 그런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많다. 그런 때는 어떻게  반격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가톨릭’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카톨리쿠스’, 희랍어의 ’카톨리코스’가  그 어원으로

’전반적인’ 혹은 ’보편적인’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다. 그 본래의 뜻에서  파생, ’포용적인’

또는 ’도량이 넓은’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교회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것

은 약 2세기경으로 추측된다.

 

 비록 예수님 당신께서 스스로 교회를 가톨릭이라 지칭하신 적이 없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

하는 최고의 가치가 특정한 개인이나 인종,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전체 인류의 구원’임을

생각한다면 가톨릭이란 표현이 교회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명칭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

다. 비단 ’포용성’을 뜻하는 그 명칭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가톨릭은 다른 종교에 비

해 상대적으로 배타성이 적은 종교로 인식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16∼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는 로마교황청의 압력에 못 이겨 자신의 과학적 이

론이 ’위법’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친구였던 가톨릭 사제(司祭)들이 과

학과 종교가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시키려 애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장 친했던 바

르베리니 추기경 역시 갈릴레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는 천체가 어떻게 운행되는가를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가를 가르친다네. 내가 자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자네도 나에게 배울 수

  있지 않겠나."

 

 가톨릭이 지닌 그같은 포용성의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이기도 한 사랑과

자비(慈悲)이다. 포용력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과 자비는 폭이 좁거나 맹목적인 것이다.

 사랑과 자비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리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대다수 종교  경전(經典)의

핵심을 이뤄왔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질량(質量)으로 인류 구원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과 자비가 모든 종교의 근원 사상이라면 서로를 경원하고 배타적

감정을 보이는 것은 종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최근 가톨릭교회와 루터교가 500년에

가까운 대립을 끝내고 화해를 이루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구원’에 관한 교리해석의 견해가

달라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것을 양측의 합의하에 절충안을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을 양보한 것인지 아니면 절충안의 수용이 기본 교리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타당한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 아래에서 만들어진 교회가 화합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점이다.

 

사랑, 화해 , 용서...

 

 우리 각자가 소속된 종교계에 서로를 포용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사회 전체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을 없애는 데도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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