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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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 [YSK] 쪽지 캡슐

2001-03-16 ㅣ No.3918

여름아

 

 

덕정리는 말만 들었고

경기도 회천읍 봉양리는 들어 보지도 못한 곳이었다.

 

네 덕분에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휴가 아닌 철에 엄마와 함께 시골행 902번 버스를 타보았다.

버스 기사분이 친절해서 자기도 잘 모르는 부대부근에서 우리를 내려 주었다.

면회 가시냐 하면서

우리는 초행길이라 종점까지 가야만 되는 줄 알고 계속가는데

더 이상 가면 군 부대가 없다며 그리해 주었다.  면회 간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엄마와 아빠가 결혼해서 벌써 24년, 남들이 보아도 이제는 쉽게 부부가 아들 면회를 가는

구나 알아 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음이 확인 되었고

엄마나 아빠도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평생의 동반자로 시골길을 가고 있었구나.

네가 건강해서 군대에 입대해 주었기 때문에 이런 귀중한 체험을 해보았다.

위병소에서도 네 이름을 대니까 얼마나 친절히 안내를 해주었던지.

우리가 궁굼하던 것을 안내장에 인쇄하여 손에 주어 주었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너의 봉급과 진급 규정, 휴가 규정 등

면회소까지도 쉽게 갔고 두려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부대를 개방해 주어 너의 내무반에도 가보고,네가 타는 장갑차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병기

들도 구경하고 장갑차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동아리들의 재능도 구경하고 모두 즐거운 일이

었다. 일상의 TV에서 갇혀 있던 우리가 해방되어 너의 모습을 처음 발견하는 것같았다.

어떻게 부모로서 너의 삶을 이렇게도 모르고 살아온 것일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빠가 너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아닐까 반성해 보았다.

그래서 나는 너의 부대 대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모든 부대원들에게 더욱 감사를 들이고 싶

다.

 

바베뀨가 있는  회식

미국 사람들이나 고급 장성들의 파티 장소와는 비교도 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베풀어진 장소였다.

미국 사람들의 몇 십년 전의 시설 보다도 못한 우리나라의 시설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너무 많이 뒤떨어져 있고

우리들은 너무 자만하여 낭비가 심한 생활을 하고 있구나 반성도 했지만 )

여하튼 너를 만나는 기쁨은 너를 발견하는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아빠가 군인들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읽으리라고는 내 50 평생 상상도 못해 본일이다.

모두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감격했다.

 

 

3월7일 그날은 엄마와 아빠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그래서 돌아오던 날의 느낌도 적어 보내고 싶구나

너의 늘름한 모습과

기다릴 줄 아는 마음과

너의 인내심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너와 헤어져 오던 아침은

아주 상쾌하고 기쁜 날이었다.

 

또 다시 가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침의 시골 나무처럼 서 있고

들판의 흙같이 누어 있었다.

 

믿음직스러운 너의 모습 감사하기만 했다.

엄마도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너를 만나고 헤어져 오는데도 네가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어둠움 속에서

군수과장 차로 우리를 인도하던 모습과

 

다음날 아침

아빠가 정신 없이 덕정역 쪽으로 가는데

네가 순간적으로 택시를 잡아

앞좌석 문을 열어 아빠를 태워 주고

뒷문을 열어 엄마를 태워 주고

덕정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가라 하던

너의 모습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언제 네가 그렇게 성장했는지

여름이가 군수과장 차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은

초 봄의 아침 공기 속에 띠워 보내고 너를 믿기로 했다.

참 아빠는

형이 수술할 때부터

자식들이 바람 속에 내 놓은 촛불처럼 여겨지기가 일수였단다.

물 속에 빠트린 화장지같기만 했단다.

 

여름이가

병장

상병

일병

중대장

부중대장

이등병에게 골고루 자랑스럽게 인사를

시켜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네가 장교가 아니고 장성이 아니어도 좋았다.

비록 이등병이었지만

너는 자랑스러운 나의 아들이었다.

여름이가 아빠에게 그렇게 큰 기쁨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구나.

고맙다.

아빠와 엄마는 아주 작은 것에서도 충분히 큰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네 소대,너의 중대,너의 대대 모든 군인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마

너의 사수 참 좋은 사람이다.

지극한 정성을 아빠가 느낄 수 있었다.

이기연 병장은 참 친절한 사람이더라.

군종병 배상병도 따뜻한 사람이었다.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 전해주렴

이제 제법 양지가 따사롭고

부대 뒷 산에 봄기운이 역역하겠구나.

늘 안전사고에 조심하고

건강하거라

 

 

2001.3.16

 

정릉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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