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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성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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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백 [c109] 쪽지 캡슐

2001-02-02 ㅣ No.4359

친구 녀석 중에 모든 의성어, 의태어를 입으로 말하는 녀석이 있다.

" 살금살금 "  " 부스럭 부스럭 " 이런걸 입으로 직접 표현한다는 말이다.-_-

 

녀석을 처음 만난건 8년 전인가?

암튼 중딩시절.. 새학기가 시작되는 교실에서 처음 만났었는데 그녀석은 처음보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입으로 이런 소리를 내었다.

 

" 스윽- "

-_-; 열라황당해진 나도 똑같이 손을 내밀며 소리를 내주었다.

" 스..스윽.. -_-; "

 

그러자 그자식은 내손을 잡으며 " 덮썩~ " 이라고 말하고는 악수를 하며 " 흔들흔들~ " 이라고 말했다.

스윽,덮썩,흔들흔들.. 물론 자주 쓰이는 말들이지만 사람 입으로 직접 이런 소리들을 연출해낸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본적이 있는가? -_-?

그 후로 난 정상이 아닌 그자식을 슬금슬금 피하게 되었다.

난 또라이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_-

 

하지만 나는 그녀석과 질긴 인연이 있었나보다.

아무리 피하려 해봤자, 정해진 인연 앞에서는 도리가 없다.

중학교 3년 내내 우린 같은 반이 되어버렸고, 그녀석을 피하던 시절이 언제냐는 듯, 나는 그녀석과 베스트프랜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녀석의 의성어연출쑈 역시 3년 내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_-

 

한마디 쉬고,

그녀석의 의성어 연출의 클라이막스는 화장실에서였다.

남자인 관계로, 서서 urinating 의 쾌락을 맛보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녀석이 나타나곤 했다. 입으론 이렇게 말을 하면서..

 

" 뚜벅뚜벅 "

 

그리곤 내 옆에 와서 딱 슨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어느 부위에서 눈길이 딱 멈춘다.

-_-; 부..부끄럽게 어딜 보는겨.

그리곤 더 가까이 다가와서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렇게 말을한다.

 

" 스윽- "

그럴때면 이렇게 대꾸를 해주어야 한다.

" 움찔~ "

-_-; 쪽팔리지만 꼭 해주어야 한다. 안해주면 삐지니까..

 

그러면 그녀석은 남자다운 포즈를 취하며 배를 앞으로 내밀고는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 불끈!   위풍당당! "

 

너무도 진지한 그의 의성어 연기에, 화장실의 아이들은 할말을 잃곤 했다.

저러다 말겠지.. 지치면 관두겠지.. -_-

하지만 그녀석의 의성어 의태어 행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녀석이 학창시절 ’발표’ 라는 것을 한 기억이.. 내가 기억하기로는 정확히 한번 밖에 없었는데, 그 때 마저도 그는 손을 들며 이렇게 말을 했던 것 같다.

 

" 번쩍- "

물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 쌔근쌔근 "

자지도 않는 놈이, 이런 소리를 내면서 수업시간에 엎드려있던 모습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3년을 같이 지내고...

졸업할 때가 거의 다 되어서야 그녀석에게 그 요상스런 버릇에 대해 질문을 했었는데, 그녀석은 이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 몰라 ㅆ발. 나도 모르게 나오는데 어떻해? "

 

그리곤 " 푸욱- "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푸욱- " 은 입으로 낸 소리다 -_-

 

하지만 녀석의 그 개같은 버릇은..

그 후로도 1년 가량을 계속하더니,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하지않게 되었다.

언젠가 잠시 헤어질 일이 있어서.. 악수를 한적이 있는데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악수를 나누었고, 그 때 비로소 녀석이 버릇을 끊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녀석과는 친한 친구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10년 가까이나 되는 진한 우정이다.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이미 우리의 얼굴은 폭삭 삭았지만, 녀석과 만나면 마음만은 천진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다.

훗.. 녀석의 옛적 모습이 떠오른다.

입으로는  " 샤샤샤샤 "  를 외치며 달려가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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