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하느님의 거처가 된 자들의 삶 (요한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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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5-08 ㅣ No.267

 하느님의 거처가 된 자들의 삶

(요한14:2-3)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아멘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처소(자리)를 예비하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근거로 우리의 더러운 죄를 다 씻어 버리심으로 당신이 우리 속에 임하실 수 있게 하시는 성도의 구원 이야기를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을 이기신 부활로 이어지고 그 부활은 하늘로의 승천로 이어집니다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셔서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인정받으셨고 성령 즉 그리스도의 영의 모습으로 자기가 완성해 놓으신 청결한 마음의 성도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주님은 당신의 십자가 보혈로 더 이상 죄인들이 하느님의 돌격에 의해 죽지 않아도 되는 구원의 현실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하느님의 자리가 되었고 하느님은 성도들의 자리(처소)가 되었습니다하느님과 백성들의 상호내주가 실현이 된 것입니다그런데 그러한 상호내주의 관계는 하느님의 뜻에 성도의 뜻이 완전히 맞추어 지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 위의 성도들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는 양육의 훈련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예수님의 자리 예비는 지금 이 역사 속에서 성도의 성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영적으로 이미 우리를 하느님 자리로 만들어 놓으셨고 이 역사 속에서 가시적으로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그게 구원의 과거시제와 구원의 현재시제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청결한 당신의 자리로 만드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미 운명적으로 신분적으로 선언적으로 완성이 되었기에 절대 중도에 포기되거나 실패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리로 지어지는 그 길에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수많은 자기부인의 사건들과 상황들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다 당하셔야 합니다그리고 하느님이 편안하게 거하실 수 있도록 자기를 비워 내야 합니다예수님이 이미 이루셨고 지금도 이루고 계시기에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이 세상의 힘은 하느님의 진노의 날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하느님의 진노의 날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간의 짜다크뿐입니다

(잠언11:4) 4 재물은 진노의 날에 소용이 없지만 의로움(짜다크)은 죽음에서 구해 준다그 길을 가십시다.

 

오늘은 그 자리와 장막 즉 성막과 성전 그리고 참 성전 되신 예수님과 성전으로서의 성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 드리고 그렇게 성전이 된 하느님의 백성들의 삶에 대해 하느님은 어떠한 권고를 하고 계신가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위26:11-12) 11 나는 너희 가운데에 나의 거처를 정하고너희를 혐오하지 않겠다. 12 나는 너희와 함께 살아가면서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안식년 희년 등의 율법을 주시면서 나는 반드시 나의 거처를 너희 중에 세워서 너희들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를 반드시 내 백성으로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라 하십니다그 말은 안식년이나 희년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하느님의 거처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같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이제자리소의 이야기 즉 하느님의 장막의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이 장막에 관한 약속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안에 성막과 성전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입니다그러나 구약의 성전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성전이었습니다따라서 하느님께서 세우시겠다고 하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세워지는 당신의 자리는 궁극적으로 가시적인 성막과 성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상징으로 세워 놓으신 것이 하느님이 거하신다는 성막과 성전일 뿐입니다그래서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하느님은 그 이스라엘의 성전이 수시로 파괴되는 것을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느님은 그렇게 수시로 성전이 파괴가 되고 다시 재건이 되고 하는 가운데 영원한 자리 영원한 당신의 성소가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설 것임을 수시로 말씀하십니다도대체 영원이라는 개념도 정리가 안 되신 분처럼 말입니다.

 

(예제 37:26~28)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요그런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성전과 성소가 있습니까 없지요그렇다면 하느님의 약속이 파기가 된 것인가요아닙니다하느님은 구약에서의 당신의 처소 즉 성막과 성전으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당신의 처소인 교회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고전3:16~17)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여기에서 성전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나오스 떼우 는 지성소‘inner sanctuary’라는 단어입니다그러니까 사도 바오로의 말에 의하면 우리 성도들은 이미 하느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어떻게 그렇게 되었다고 했지요예수 그리스도의 발 씻김의 사역 즉 십자가 보혈에 의해 우리가 그렇게 되었습니다그것을 확연하게 그림으로 보여주는 곳이 예제키엘서 36장이라 했지요

(예제36:24~28)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에 의해 우리가 하느님이 계실 수 있는 거룩한 하느님의 처소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그 증거로 하느님이신 성령이 오순절 날 교회에 임하신 것입니다실제로 교회 안에 하느님이 들어와 버리셨습니다그래서 우리 성도 각자는 모두 하느님이 거하시는 자리(처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요엘2:27~3,2) 27 너희는 내가 이스라엘 한가운데에 있음을주 너희 하느님이 바로 나요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되리라다시는 내 백성이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1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2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 

 

어떻게 이렇게 하느님의 령이 죄인들에게 내려올 수 있습니까하느님의 은혜에 의해서입니다이 예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사도2:1~4) 1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2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이 성도 각 자를 처소로 정하시고 그들 속에 내주를 하시면서 이 역사와 인생 속에서 하고 계신 일이 뭡니까처소를 처소답게 고치시는 일입니다그러니까 집주인께서 허름한 집에 일단 입주를 하신 후에 그 집을 당신의 집답게 고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고후6:14~7:1) 14 불신자들과는 상종하지 마십시오의로움과 불법이 어떻게 짝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빛이 어떻게 어둠과 사귈 수 있겠습니까? 15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벨리아르와 화합하실 수 있겠습니까신자와 불신자가 어떻게 한몫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16 하느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떻게 뜻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이는 하느님께서 이르신 그대로입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저들 가운데에서 나와 저들과 갈라져라─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더러운 것에 손대지 마라그러면 내가 너희를 맞아들이리라. 18 나는 또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에게 아들딸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1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우리는 이러한 약속들을 받았으니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여하느님을 경외하며 온전히 거룩하게 됩시다.

하느님은 우리를 거룩하다 말씀하시고는 거룩하게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그래서 성경에는 거룩한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성도들은 어차피 그렇게 완성이 될 것이므로 미리미리 항복하여 그렇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건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구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요구입니다성도는 거룩하게 살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라고 하시는 것이지 거룩하게 살면 구원이 지속되고 거룩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탈락을 하게 되는 그런 의미의 강요가 아닌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강조를 합니다왜 사도는 하필 멍에’ 라는 소재를 사용하였을까요

 

그건 사도가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에서 인용을 해다가 쓴 것입니다.

(신명 22:9~11) 9 너희는 포도밭에 다른 종류의 씨를 뿌려서는 안 된다그렇게 하면 너희가 씨 뿌린 곡물과 포도밭의 소출이 모두 손댈 수 없는 것이 된다. 10 너희는 소와 나귀를 함께 부려서 밭을 갈아서는 안 된다. 11 너희는 양털과 아마를 섞어서 짠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소와 나귀를 겨리하지 말라는 말이 소와 나귀에게 같은 멍에를 메고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사도 바오로가 이 내용을 인용 해다가 고린도 교회에 권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왜 소와 나귀가 멍에를 함께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그 이유는 9절과 11절을 보면 미루어 추측할 수 있습니다. 9절에는 포도원에 다른 씨를 뿌리지 말라는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고 11절에는 양털과 모시를 함께 섞어서 짠 옷을 입지 말라는 율법이 있습니다그건 레위기에도 나옵니다.

(레위 19:19) 19 너희는 나의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너희는 종류가 서로 다른 가축끼리 교배시켜서는 안 된다너희 밭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서로 다른 두 가지 옷감으로 만든 옷을 걸쳐서는 안 된다.

지금도 유대인 사회에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한 종류의 실로만 짜인 것인지를 감별하는 전문 감별사가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지금까지 철저히 지킵니다그렇다면 이렇게 이것과 저것을 함께 섞지 말라고 하시는 율법의 진의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별하여 정결한 음식만을 먹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주지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꼭 명심하여 경계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의 원리인 힘의 원리를 좇아 사는 삶인 것입니다.

구약 때에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두심으로 정결한 음식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부정한 음식과 같은 이방인들을 구별해 내셨다면 지금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가르치시고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고넬리오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이제는 부정한 자와 정결한 자로 나누어져 하느님의 백성들과 이방인들을 상징했던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누어지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약 시대에 정결한 자로 상징이 되었던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정결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따라서 구약 때에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가지고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듯이 신약 때에는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 7:1-4) 1 “주 너희 하느님께서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려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가시고많은 민족곧 너희보다 수가 많고 강한 일곱 민족인 히타이트족기르가스족아모리족가나안족프리즈족히위족여부스족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실 때, 2 그리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셔서 너희가 그들을 쳐부수게 될 때너희는 그들을 반드시 전멸시켜야 한다너희는 그들과 계약을 맺어서도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 된다. 3 너희는 또한 그들과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너희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도 말고너희 아들에게 주려고 그들의 딸을 맞아들여서도 안 된다. 4 그런 짓은 너희의 아들이 나를 따르지 않고 돌아서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만들 것이다그러면 주님의 진노가 너희를 거슬러 타올라 주님께서 너희를 곧바로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들과 세상 사람들은 삶의 방식에 있어서 서로 섞여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성전(처소)인 고린도 교회가 지적당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했던 사례가 무엇인지를 보면 우리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적용해야 할 부분을 쉽게 알 수 있겠지요?

 

먼저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있던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는 일 즉 벨리알(사탄)과 함께 멍에를 메는 짓의 대표적인 것은 거짓 사도의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아주 쉽게 넘어가 버렸던 것입니다.

(고후11:13~15) 13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입니다.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있던 거짓 예언자 거짓 사도들은 자신들을 자랑하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운 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라 가르치던 자들이었습니다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자기는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노라고 하면서 매 맞은 것 도망 다닌 것 감옥에 갇힌 것 풍랑을 만난 것 등을 자랑하지요그렇게 그리스도교는 자신을 자랑스러운 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강함이 증명이 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힘의 원리 안에서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왕 삼아 살길 원합니다그 둘이 어찌 한 멍에를 메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따라서 성도는 세상의 힘의 원리를 쫓아 설교를 하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 거짓 예언자와 한 멍에를 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린도 교회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메는 일에 빠진 것은 우상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고전10:14)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사도 바오로가내 사랑하는 자들아하고 부르는 성도들이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와 함께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우상의 뿌리를 캐보면 그 우상의 심장은 항상 ’ 입니다. 거짓예언자들의 가르침과 우상 숭배는 라는 존재를 위해 살라고 하는 한 가지 목표 지점을 지향하는 것입니다결국에는 같은 것입니다.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있던 믿지 않는 자들의 행태는 믿는 자들이 믿는 자들의 재판을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지고 간 것이었습니다.

(고전6:5~8)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왜 믿는 자들의 송사가 세상 법정에까지 가게 되는 것이지요서로가 자기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심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역시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는 자기 사랑과 자기주장에서 나온 것입니다따라서 하느님의 처소가 된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지나친 자기 사랑입니다.

 

이렇게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처소가 되고 또한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가는 일은 ’ 라는 우상을 비워내고 하나님과 내 형제 자매들을 ’ 라는 우상이 자리하고 있던 자리에 앉히는 일입니다그것은 타락한 죄인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일입니다.

(에페2:20-22)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보세요여기에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교리가 잘 나타나 있지요분명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로 하느님의 자리소가 되어 성령의 거처가 되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자리로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이제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건물이 되어서 다시는 무너질 수 없는 자로 완성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모퉁이 돌이신 예수님이 무너지시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새로운 하느님의 거처 즉 자리로 지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그 일은 실패 되어질 수가 없습니다따라서 우리는 미리미리 항복을 하고 자기 사랑과 자기주장에서 내려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지평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리셨는지를 압니다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함께 멍에를 메고 사는 일을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사랑과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여전히 우리 자신만을 위해 막 살아서야 되겠습니까열심히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져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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