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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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 [skyfall] 쪽지 캡슐

2000-06-27 ㅣ No.1271

안녕하세요 ? 가을하늘입니다.

어제 영화 재미있게 보셨나요 ?

혜진님께서 보기드물게 사회문제를 다룬 글을 올리셨군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게시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와 더불어 가끔은 사회문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이 다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바램입니다.

 

혜진님께서(혜진, 혜진 하니까 갑자기 ’허준’의 예진이가 생각나네요. ㅎㅎㅎ)

퍼온 글에도 동감하는 바가 없지 않지만 저는 아래 글에 더욱 동감을 느끼게

되네요. 한겨레신문의 권혁철기자의 글을 퍼온 것입니다.

글이 매우 깁니다. 관심있으신 분만 읽으셔요.

 

권혁철입니다. 오늘부터 의사들이 1주일간의 집단폐업을 끝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며칠전 의사 친구를 만난뒤 답답한 마음에 이 글을 적습니다. 개인적 감상이 많이 섞인 글이란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 친구와는 대학 다닐때부터 알고 지냈지요.

의대를 다니던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에대해 `알레르기에 관한 논문을 쓴 의사’라고 주장하면 경제학과를 다니던 저는 `쿠바혁명뒤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관료를 지냈으니 경제학자라고 봐야 한다’고 맞서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게바라 논쟁’이지만 그 친구는 사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많았던 친구였습니다.

 

의대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던 그도 우여곡절끝에 의사 선생님이 됐고, 저도 어울지도 않게 기자가 됐습니다.

요즘도 그 친구와는 허물없이 지냅니다.

가령 제가 그 친구에게 "너같은 돌팔이에게 속아 진료받는 환자가 불쌍하다"는 농담을 던지면 그 친구는 "너 같은 돌대가리가 쓴 기사를 읽고 믿는 독자들이 더 불쌍하다"는 응수를 하곤 하지요.

 

그런데 며칠전 그 친구와 크게 싸웠습니다. 싸움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한겨레 창간독자이나 주주인 친구가 <한겨레>의 의약분업과 병의원 집단폐업 보도태도를 세차게 비판했거든요. 그는 이렇게 말했지요.

 

"요즘 <한겨레>가 어디로 가는거냐. 우리 의사들이 돈에 눈먼 살인마냐. 왜 의사들이 환자들 곁을 떠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된 한국보건의료시스템의 구조적이고 본질적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 문제에 대해 흥분하느냐. 이게 마치 <조선일보>가 학생시위나 민중시위을 다룰때 화염병피해나 교통불편 등을 부각시키는 것과 뭐가 다르냐. 이런 피상적이고 왜곡보도를 하는 <한겨레>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게 낫다."

 

이때까진 꽤 기분나빴지만 참았지요.

의사처지에서 최근 <한겨레> 집단폐업 보도에 대해 서운하고 화가 날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제가 보기에도 <한겨레> 보도가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결국 참지 못하고 대판 싸움이 시작된 것은 다음 대목이었습니다.

 

"우리 의사들은 사회적 약자다. 아무리 언론이 우리를 매도해도 결국 역사는 우리의 투쟁을 정당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이 말을 듣자 그전까지 `그래 그런 면이 있지’하며 참고 있던 제 머리 뚜껑이 갑자기 확 열리더군요.

"의사가 사회적 약자라고. 아니 사회적 약자가 지난 겨울에 집단동사라도 했나. 역사가 너희 투쟁을 평가해. 복날에 몽둥이 맞아 자빠져 숨넘어가는 개소리하고 있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지만 학생때도 아니고 30대 중반이 된 처지에 피차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데 `아차 심했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뭐, 개? 그래 난 개다. 그래도 촌지받아 처먹고 보건복지부 지시받아 앵무새같이 X같은 기사쓰는 너같은 기자XX보다 몇배 낫다. "

"촌지라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 가지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네. 그래, 일부 정신 나간 기자놈들이 촌지받는다고 치자. 너희 의사들이 받는 약값 장사나 랜딩비에 비하면 기자들 촌지는 정말 껌값이야. 지금이 뭐 전두환 시대냐. 기자가 정부에서 하라고 한다고 따라 쓰게. 배에 기름끼가 끼기 시작하더니 보이는게 없나 보네."

"이XX, 기자생활 몇년하더니 겁대가리 상실하군. 눈에 보이는게 없냐. 너 완전히 맛이 같구나. "

 

이렇게 한바탕 욕설과 독설이 오간뒤 결국 처참하게 자리가 끝났습니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는데 왜 서로에게 상처를 줬는지 너무 후회됐습니다.

그래서 미처 못한 이야기를 담아 긴 편지를 썼습니다.

아래는 그 편지입니다.

 

 

 

 

체 게바라를 좋아했던 친구에게

 

 

미안하구나. 우리가 다툰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왜일까. 이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일까.

 

그 자리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려고 펜을 들었다. 지금 의약분업과 집단폐업을 바라보는 의사들의 시각과 일반 시민들 생각과 상다한 거리가 있어.

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먹이고 허준이 어떻고 仁術 운운하는 소리는 하고 싶진 않아. 아무리 의료서비스가 공공성이 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가 진료활동의 결과로 정당한 대우받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야지. 의원이나 병원이 이윤이 남아야 의사들이 새 기술, 새 지식을 익히고 좋은 장비를 도입하겠지.

그래선 의사가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수준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난 의사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아. 이건 의사들이나 대다수 시민들도 같은 생각일꺼야.

 

그러나 `여전히’ 최상류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나 의학도가 없는지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겠니. 내가 피시통신상에서 본 글에는 어떤 의대생이 의사 수입이 대기업 임원보다 못하다고 비판을 하더군. 물론 너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기업 임원수준같은 엉뚱한 기준을 의사 생존권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기회에 의사의 평균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

어떤 사람은 의사 수입에 대해 왜 제3자가 왈가왈부하느냐는 반론을 펴기도하지만, 보건의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국민의 세금을 생각해보면 다른 문제야.

 

국립의대에 정부지원금, 이번 정부 대책에 들어있는 전공의 처우개선, 병의원에 세제,금융지원 등은 누구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니. 이번에 의료집단폐업 명분의 하나로 내세운 의료보험제도를 개선하려면 결국 정부 지원금을 늘려야 하는데, 정부 지원금이 결국 국민이 내는 세금 아니냐.

의사들이 받는 각종 사회적 지원은 당연한 권리라고 여기면서 의사들 밥벌이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알고나 국민세금을 지원하자는 논의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는 불거죽죽한 색깔론까지 들고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어.

의약분업뒤 대책으로 꼽히는 보험수가 인상이나 정부재정지원이든 뭐든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인데, 돈 내는 국민에게 `무식한 너희들은 자세한 사정은 알 것 없고 돈이나 내라’게 말이나 되니.

 

의사들도 의약분업이 되면 생존조차 어려운 동네의원이 속출할 것이라고 하지말고 가능성을 강조하기전에 자신들의 수입구조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해 이 정도 수입으론 정상적 의료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대국민 설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 인터넷게시판에서 어떤 개업 15년차 의사가 솔직히 털어놓는다고 밝힌 글을 보니 감가상각비용과 투자비용, 각종 경비를 빼고 자기 주머니에 챙기는 돈이 4백만원이라고 하던데 이게 사실이라면 의사 양성에 드는 총비용과 수련비용, 투자비용, 생애소득 개념에 비쳐 다른 분야 사회 직능에 비쳐 적정한지 사회적 논의를 해 보자는 것이야.

 

그래서 의사수입이 부족해 안정적 의료서비스가 어렵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보험수가를 인상하든지 공적 자금을 투입하든지 해야 할 것 아냐.

나는 개인적으로 안 먹어도 되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내몸이 항생제로 찌들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보험료나 치료비를 더 낼 용의가 있어.

 

의사들이 이런 식의 의약분업을 하면 그냥 막연히 동네의원은 문을 닫는다고 하고 이걸 벌려고 그 고생하며 의사가 됐겠느냐는 울분만 늘어놓지말고 각 과, 지역별로 병의원 모델을 가지고 의약분업이후 병원 경영 변화. 이것이 환자들에게 미칠 악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며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말야 이런 글을 쓴 친구가 의대생이나 의사라고 차마 믿고 싶지 않지만 최근 내가 한 의사단체 인터넷사이트에서 본 글들을 소개하마. 이런 유치원생 같은 생각을 하는 자가 의사 중에 있다면 난 정말 화가 날거야.

 

 

-------------

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약사협넘들과 무식한 방법만이 최고인줄 아는 정부와 의학용어 하나 모르는 무식한 국민에게 우리의 주장을 확실히 인지 시켜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일어선 기회이니 만큼 우리가 손을 놓을때 어떤일이 벌어지는지 세상 사람들이 똑똑히 알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대가리 나빠서 의대 근처도 못와 본 병신같은 것들이 우리 주장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결정에 대해서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가소롭고 기가찰 따름이다.

저런 무식한 것들에게 우리의 의술은 과분한 것이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우리끼리 뭉쳐서 서로 치료해 주는 공동체나 만들자.

다른 병신들이 아파서 뒈지든 말든..

아프면 그냥 다 나가 뒈져라...우리에게 빌 붙지 말고..

목숨을 구걸하지 말거라..그냥 조용히 다 뒈져..

감히 우리의 주장과 권리를 무시하다니..다 뒈져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생각해 보세요.........

우리밥그릇을 사수하자고 나서는건데......

댁들은 댁들 밥그릇 지키자고 파업 안하나요?

왜 우리는 파업을 하면 안돼지요?

나 지하철 파업할때 걸어서 출퇴근 했습니다.

왜 의사만 매도를 당하지요?

우리가 좀 많이 벌어서?

그건 당신들의 비열한 열등감이죠.....

돈많이 버는게 죈가요?

댁들이야말로 이기주의자야.....

자기 밥그릇만 챙기면 됀다는......

난 집행부에서 1년쯤더 파업을 했으면 좋겠어.

아니면 의사 집단 이민을 추진 하든가 우리같은 고급인력이야

어느나랄가도 환영 받죠 당신들 하곤 달라요......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솔직히 1년 쉰다고 먹고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어디 의사 없는 나라에서들 잘 한번 살아 봐요....

그렇게 의사가 미우면 아프다고 의사를 왜 찾나요...

조용히 죽으면 될것을...죽는것도 다 팔자 소관인데...

정 죽기 싫으면 약국에서 약을 사먹든가 한의원에 가보세요...

일하기 싫다는 우리들 괴롭히지 마시구요...

쯧쯧쯧...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들 정신을 차릴까...

하기야, 제몸아프지 않으면 의사 귀한줄 모르지, 단순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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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글에 대해 한 마디만 하면 이 세상 직업중에 의사 못지 않게 힘들고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게 부지기수야. `나만 똑똑하고 큰일한다’는 우물안 개구리같은 생각부터 벗어나야 할 것같아.

 

그리고 많은 의사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더군.

양복 짜집기 비용보다 사람 다리 꽤매는 치료 비용이 적다는 것을 예를 들며 병원 간판 내리지 않기위해 하루에 수백여명 이상을 치료하고 어쩔수 없이 고가 장비에 의한 검사나 안 해도 되는 수술을 받게했다고.

 

다시말해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 때문에, 곧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때문에 환자들은 2시간 기다렸다 3분 진료 받아 의사들에게 불만이고 의사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진료는 그림의 떡이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버티어 왔다고.

 

난 이게 집단폐업사태때 의사들이 욕을 먹었던 근본 문제라고 생각해.

네가 말한 것처럼 의사들은 한국보건의료시스템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잖아. 1977년인가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됐으니 벌써 23년째 누적된 문제인데 그동안 이문제에 대해 의사들이 어떻게 대처했니.

과잉진료와 하지 않아도 될 검사로 환자의 호주머니를 털고 그것도 모자라 제약회사로 부터 약값 리베이트를 받고 환자들에게 필요이상의 약을 안겨주며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면서 지내왔잖아.

의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왜곡된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잘못해 구조를 고치는 정면돌파 전략대신 이같은 우회전략을 택했어.

 

의사들은 사회적이고 구조적 문제에 대해 아주 개인적이고 임시방편적 방법으로 대응을 해왔지. 구조적 문제를 고치려면 힘들고 꼭 내가 할 일도 아닌 것 같고 일단 의사들은 큰 피해를 보지 않으니 국민들 몸이야 항생제 범벅이 되던 말든 애써 모른체 한 것 아니니.

지나친 표현이라면 사과하겠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거야.

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들에게 의료보건 시스템 개선하는 일까지 떠맡으라고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꺼야. 의사들은 병의원을 경영하는 사람이지 사회사업가나 보건정책 담당자가 아닐테니까.

 

그런데 의약분업으로 그나마 통하던 각종 편법도 통하지 않게 되자 의사들이 들고 일어선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왜 22년은 침묵하다 지금에야 들고 일어났다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세상에 제 밥그릇을 빼았아 가겠다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겠느냐’고 변명해주고 싶어. 나는 의사들이 의약분업에 대해 당연히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차라리 이번에 의사들이 집단으로 병의원 문을 닫으며 `우린 그동안 비정상적 진료상황에서 편법으로 겨우 버티었지만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수입이 얼마나 줄어드니 이 상태론 정상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면에 내세웠으면 했어. 밥그릇 다툼이란 비판을 받더라도 이게 차라리 시민들에겐 솔직하게 비칠거야.

 

그런데 의사들은 `의권쟁취’니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는 삼척동자도 믿지 않을 거창하고 고상한 명분을 내걸잖아.

물론 의사들 중엔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도 많이 있을거야. 하지만 의사협회에서 내건 요구조건이나 정부가 내논 당근을 뜯어보면 대부분 내용이 의약분업이란 보건의료시스템에서 약사의 입지를 줄이고 의사의 입지를 넓히는 내용이더군.

 

그래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덴 약사보다 의사들이 전문가이니 진료권이 보장되어야지. 이를 통해 국민들 건강이 잘 지켜질 수 있을거야. 또 이를 통해 동시에 의사들의 밥그릇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야. 이건 동전이 양면같은 문제니까 일면적으로 볼 수 없을거야.

 

그런데 거의 대부분 국민들은 이번 의료대란을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고 있거든.

이게 왜 그렇까? 네가 말했듯이 언론과 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국민들을 현혹한 탓일까.

 

난 의사들의 자업자득이라 봐.

23년동안 잘못된 보건의료시스템을 정면돌파하지 않고 편하게 우회전략으로 적당히 잘 살아오다, 자기들 수입이 줄어들 것같이 보이자 갑자기 국민건강을 들먹이며 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국민들이 어떻게 볼까.

국민건강을 지키는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위해 집단폐업과 교수직 사직까지 불사하는 의사들이 지난 23년동안 선진국보다 항생제 내성이 3~5배에 이르도록 국민건강이 망가지는 것을 어떻게 참고 보고 있었는지 궁금해.

 

또 내가 화가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의사들의 문제제기 방식이야.이번 집단폐업 결정으로 의사들은 모든 국민을 적으로 만들었어.

모든 병의원이 문을 닫고 환자들이 죽어나가야 정부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지는 모르나 이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설사 이런 방법으로 정부를 굴복시켜 의사들이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번일로 의사집단은 우리 시민사회에서 천박한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왕따당할 거야.

 

노동자들의 파업이란 국민의 불편을 일으켜 정부나 자본가에와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것이잖아. 노동자 파업은 국민의 불편을 줄뿐이야. 지하철이 파업하면 직장이나 학교에 지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이를 피하려면 평소보다 아침에 좀 일찍 나오거나 버스나 택스를 탈 수도 있어.

 

그런데 의사들의 집단 폐업은 국민의 불편을 넘어 생명을 위협했고 몇몇 경우 죽지 않아도 될 애꿎은 목숨들이 죽어갔잖아. 이게 의사협회 간부들이 `국민에게 불편을 끼쳐드려 미안하다’는 립서비스로 끝날 문제인가.

 

그래 의사들이 보기엔 무식한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고 화가난 것은 바로 이 대목이였어.

가령 이런 방법도 있잖아.

의사협회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교과서 진료운동’을 벌이는거야.지금처럼 3분안에 끝내는 게 아니고 의과대학에서 배운 것처럼 환자의 상태를 충분히 보고 한 30~40분가량 진찰해-미국에서 이렇게 한다면서-.

이렇게 느림보 진료가 이뤄지면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거나 늦게 온 사람은 다음날로 밀리는 등 국민들이 불편해질거야. 그래도 생명이 위협받진 않고 좀 기다리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으니 시민들 불만은 커진 않을 거야. 의사들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이게 우리가 하고 싶은 진료라고 설명하고 잘못된 의약분업제도가 시행되면 국민 건강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설명하는 대국민 홍보도 벌이고 말이야.

 

투쟁기간중에 하루 날잡아 온나라 모든 병의원에서 무료 진료를 벌여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집중 홍보도 했다면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을 거야.

 

그리고 병의원 집단폐업을 하더라도 단계와 절차가 필요했어.

병의원들이 과목별로 조를 짜 구와 동별로 당번 병원 1~2개정도만 문을 열고 닫는 거야. 그리고 모든 병의원에는 문 연 곳 연락처와 지도를 붙여놓고. 이러면 국민들이 불편하지만 지금처럼 병의원을 찾아 헤매다 심지어 죽진 않았겠지.

 

그리고 어떤 상황이라도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기능까지 정지시킨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모든 병의원이 폐업을 하더라도 각 시군구별 의사회별로 비상진료신청을 받는 비상진료단을 만들어 응급환자, 산모 등은 항상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어야지. 물론 집단폐업기간중 자원봉사로 참여한 의사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의사들의 집단폐업은 무대뽀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어.

 

의사협회가 국민에게 `불편만’ 주는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며 단계적으로 투쟁의 수준을 높혔더라면 의사들이 지금처럼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았을거야. 이렇게 대책없이 집단폐업을 강행한 의사들이 `우리는 국민건강 지키는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하자는 것이다’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국민들은 믿지 않아.

 

그리고 조금전 의사들이 폐업을 철회하고 진료에 복귀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의사들의 승리를 보며 지난해 4월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패배가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난 지난 4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서울지하철 파업지도부들의 농성투쟁을 취재했단다.

너도 알다시피 지하철 파업은 처참하게 깨졌지.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다는 언론의 융단폭격과 정부의 강경진압 방침에 1주일만에 파업은 끝났고 노동자들은 대량징계와 구속바람에 내몰렸지. 지하철 사업장엔 전투경찰 등이 상주해 행여 다시 파업 선동을 하는 노조원이 있을까봐 경찰이 두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말이야. 시민들은 지하철이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고 역사무실로 몰려가 기물을 때려부수고 역무원들은 습격하기도 했었지.

 

내가 기억하기엔 그때 우리사회는 지하철 노동자에 대해 집단 테러를 가했어. IMF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자기 혼자 잘살겠다고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을 벌여 죄없는 시민들이 직장에, 약속시간에 10~20분 늦는 불편을 줬다고 말이야. 그래도 난 지금까지 지하철 파업으로 지하철 못타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어.

 

그런데 의사들은 집단폐업 1주일만에 정부를 굴복시키고 `빛나는 승리’를 거뒀어. 대신 죄없는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했고 재수나쁜 사람은 죽기도 했지만 말이야.

 

대책없는 정리해고 중단과 신자유주의정책 철폐란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내건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은 처참하게 개박살나고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 진료권 보장 등을 요구한 의사들은 승리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도 앞으로 4살된 내 아들놈에게 `공부못해 지하철 노조원같은 공돌이 되면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사회적으로 짓밟힐 뿐이고, 열심히 공부해 의사되고 판검사 되야 한목에 힘주고 사람대접 받고 산다고’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이게 우리가 20대때 그토록 바랐던 `사람사는 세상’일까.

 

이번 병의원 집단폐업을 잘못된 의약분업을 의사들이 투쟁으로 바꿨다는 의미 부여를 하고 그동안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했던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지키기위해 정치세력화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차마 이같은 주장에 동의할 수 없구나.

 

마지막으로 10여년전 우리가 같이 좋아했던 체 게바라 이야기를 하지.

`의사’ 게바라가 쿠바혁명이 성공한뒤 1959년 11월 쿠바 중앙은행총재로 취임하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자신의 급료를 5천페소에서 1천2백페소로 줄인 것이라고 하더군.

 

이만 줄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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