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100년간 꽃피운 佛신부의 '포도나무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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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광균 [rokmc7407] 쪽지 캡슐

2000-08-29 ㅣ No.439

  †100년간 꽃피운 佛신부의 ’포도나무 선교’

 

 

벽안의 성직자에 의해 이땅에 심어진 포도나무 한그루가 백년간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다.

 

1900년 프랑스 신부 공베르(1875∼1950·안토니오·한국이름 공안국)는 가난한 농촌마을 안성에 보따리짐을 풀었다.

 

외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낯설던 시절에 ‘천주학’이라니. 그것도 세상물정 모르고 소처럼 일만해온 촌동네 사람들에게,주민들의 눈길이 고울리 없었다.

 

그러나 공신부는 소처럼 일만해온 그 가난한 동네사람들보다도 더 묵묵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병든이들을 찾아가 간호했고 굶주린 이웃들에게 따뜻한 정성을 베풀었다.

 

그리고 고국 프랑스에서 지니고온 포도나무 한그루를 심어 그들에게 신기하고 낯선 열매를 보여주었다.

 

씨앗을 받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 씨앗이 열매를 맺을 무렵, 안성동네에는 이미 공신부의 사랑이 깊게깊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적했던 성당에 신자들이 모여들었고 1906년에는 영세자들이 생겨났으며 1914년에는 성체대회를 열었을 정도로 포도나무에서 시작한 사랑은 번창해 나갔다. 1921년에는 신자수가 1616명에 달했고 이듬해에는 2층규모의 ‘안성성당(경기도 지정문화재)’을 완공할수 있었다. 성당 옆에는 아직도 당시 조성된 포도밭이 가꿔지고 있다.

 

공신부는 이와함께 1919년 3.1만세때 성당에 프랑스기를 내걸고 치외법권지역임을 내세워 많은 가담자들의 목숨을 구해주는 등 독립운동 후원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안법학교(안법은 안성의 ‘안’자와 프랑스를 뜻하는 법국의 ‘법’자를 합성한 것)를 세워 이지역에 신식교육을 도입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당땅을 무상임대해 포도나무 경작을 정착시켰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6세의 공신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땅에 남아 있다가 납북돼 추위가 살을 에는 중강진까지 끌려가 그곳에서 임종을 맞았다.

 

사인은 학질과 이질. 그의 동생으로 역시 한국에 파견됐던 줄리안 신부도 함께였고 그들의 시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공신부가 이땅에 포도나무를 들여온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안성시(시장·이동희)와 안성성당(주임신부·이상돈)은 공신부의 포도사랑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와 사업을 펼친다.

 

시는 9월 1일부터 1주일간 ‘안성포도 100년 페스티벌’을 열어 각종 문화공연과 이벤트로 포도알리기에 나서며 성당측은 오는 10월 3일 100주년 기념 성전봉헌식을 성대히 개최할 예정이다. 안성시 김종원(金宗源)문화공보실장은 “포도 100주년 행사를 통해 공신부의 업적을 기리고 내고장 안성을 널리알리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행사문의는 안성시 031-670-1060, 안성성당 031-672-0701.

 

 

<문화일보 8월 28일 기사내용>

 

 

 

[안성시 포도 100년 페스티벌행사 시내버스 운행계획]

 

ㅇ 운행회사 : 백성운수

 

ㅇ 운행회수 : 1일 220회

 

ㅇ 운행노선 : 5노선

 

 * 공설운동장 - 중앙대 : 107회

 * 터미널 - 공설운동장 경유 - 장호원 : 70회

 * 터미널 -        "        - 삼  성 : 11회

 * 터미널 -        "        - 백  암 : 17회

 * 터미널 -   공설운동장 :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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