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성당 게시판

어머니의 기도...[결] 그리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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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jekl20] 쪽지 캡슐

2001-04-13 ㅣ No.579

[그리움들]

 

 

"선 한 사 람 아흔아홉보 다 회 개 하 는 죄인하나를

하 늘 나 라 에 에 서 는 더 어 기 뻐 하알것이다..."

나는 성가를 부르다 울고 말았다. 눈물이 멈출 것 같지 않아, 닦지 않았다.

링겔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맨 뒤쪽 넓은 자리에 앉아서, 그렇게 울고만 있었다.

신부님이 환자들을 위하여, 성체를 가지고 직접 내려오시는데도,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

신부님이 내려주신 성체가, 눈물뒤로 아롱거린다.

"아멘."

두손 고이 받아든 성체위로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나는 얼른 성체를 영했다.

 

미사 후에, 나는 묵주 기도 바치시는 아주머니 몇 분을 두고 나왔다.

성당 문 밖에, 신부님이 서 계셨다.

두팔을 벌리며, "요셉" 하신다.

"아이, 요한이라니까요. 요한."

"하하하, 요한."

신부님이 어깨를 토닥거려 주신다.

성가병원의 원목실에는 외국인 신부님이 계신다.

발음이 서툰 우리말로 미사를 집전하시는데, 신기하게도 말씀이 쏙쏙 들어온다.

하루 한번씩 병실을 돌아보시며, 내게도 방문하시어 기도와 축복을 주셨다.

아무리 요한이라고 알려드려도, 만날때마다 요셉이라고 하신다. 재미난 분이시다.

 

점심때쯤, 어머님이 오셨다.

어머님은 옆에서 간호를 하시다가, 가끔 집에 다녀오신다.

이제 병실에서 혼자 생활이 가능한데도,

어머님은 내말을 무시하시고, 꼭 불편한 보호자용 간이 침대에서 주무신다.

나는 움직일만 하자, 어머님과 매일미사를 빠짐없이 드렸으며,

그렇게 병실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갈 즈음, 그리움들이 하나씩 고개를 든다.

그러면 나는 바로 연락을 한다.

"여기로 와라. 보고싶다." 병실생활의 즐거움이다.

 

경영이 왔다.

"어머님은 잠깐 쉬세요. 제가 간호하겠습니다."

"그럼, 난 성당에 가볼까?"

"다녀오세요."

우리는 서로 그동안 일들을 얘기하다가, 내가 기도를 해달라고 했다.

경영은 내 손을 꼭 잡았다. 눈을 감더니, 가만히 있다. 손으로 친구의 따스함이 스며든다.

10분이 더 지난 듯한데, 경영은 손을 놓을 줄을 모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너, 재경이가 아직 순수하니까, 주님께서 빨리 데려가시라고 기도 했지?"

경영이 갑자기 흐느낀다. 웃음으로 끝내려던 기도가 울음이 되었다. 손이 더욱 꽉 쥐어졌다.

더이상 못 울것 같았는데, 우는 친구를 보니, 또 눈물이 난다.

우리 둘은 10분을 더 울었다. 앞으로 절대로 울지 못할 정도로 실컷 울었다.

경영이 갔다.

 

은정이 왔다.

"그간 안녕하셨으요?"

"광주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어머님이 더 놀라셨다.

"멀어서 오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그래, 얘기들 나누거라." 어머님은 성당으로 가시는 듯했다.

"...."

"좀, 괜찮아요?"

"네. 미안해요. 갑자기 아플 줄 몰랐어요."

"...."

"가족들은 잘 지내세요."

"네."

"...."

이어질 듯하며, 자꾸 중단되는 대화가 서로를 무척 불편하게 했다.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나서 병이 발견되었다면, 얼마나 미안했을까?’

은정이 갔다.

 

어머님께 여쭈었다.

"어머님, 치료를 받으려면 1년은 걸린다는데, 은정씨에게 뭐라해야 할까요?"

"안그래도, 가멜라 형님께 얘길했었다. 수술전에 네가 입원해 있을때, 안부전화가 와서,

네가 너무 많이 아프다고, 암이라고 얘길했다. 그리고 은정이는 다른 좋은 자리가 나면,

우리 생각말고 결혼시키라고 했다."

"그랬더니요?"

"네 치료 잘 받길 기도해 주시겠데. 그러더니, 오늘보니까, 은정이 기운이 많이 없네."

"아까 서로 불편했었어요. 특별히 할말이 없더라구요."

"잊어버려라. 다 잊어버리고, 빨리 완치되도록 마음을 편히 가져."

"어머님, 그러고 보면 다행이예요. 결혼후에, 발병했으면, 참 미안했을텐데요. 그쵸?"

"이 녀석아, 지금 네 아내가 할 간호를 내가 하고 있는데, 이 어미한테는 안 미안하냐?"

"하핫, 어머님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집안에 친척들과 회사동료들과 친구들과 선후배들, 어머님 친구분들까지...

나의 모든 그리움들이 순서대로 다녀갔다.

나는 덕분에 빠른 쾌유를 보였다.

강재흥 요셉 신부님의 건의로 항암치료는 여의도 성모 병원에서 1년동안 받기로 하고,

외과 수술상처가 아물자마자, 이곳 부천 성가 병원을 걸어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은 군대에서 휴가나올 때 만큼이나, 즐겁고 흥분되었다.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잔잔하게 내가슴으로 들어온다.

 

’아, 자유. 이 신선한 공기. 살고 싶다.’

 

집에 돌아왔다.

책상위에는 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월간지며, 신문이며, 우편물이며, 청구서에, 홍보물까지...

소중한 내 삶인 것 같아, 정성스럽게 하나씩 훑어본다. [끝]

 

 

 

[후기]

 

끝까지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천한 몸을 항상 돌봐주시는 주님과 어머님께 감사드리며,

특히 기도나 선행으로 성인과 공을 통하시고,

저에게도 나누어 주신 여러 교우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며...

 

이재경 세자요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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