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동성당 게시판

박은종신부 죽음의 의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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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 [imichaelin] 쪽지 캡슐

2000-02-19 ㅣ No.401

 

통신광장 자유게시판에서 퍼온글

 

 

 

박은종 신부님 선종에관한 글들을 모았습니다.(무척 마음이 아

픈 내용들입니다)

 

 

 

오늘 오전 강남성모병원에서 박은종신부 영결미사가 봉헌되었습

니다.

 

 

 

뒷 자리에 앉아 미사를 지켜보았습니다.주로 서품동기들과 입학

동기들,그리고 가까운 선후배가 함께 집전한 미사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은종신부님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

다.

 

 

 

그런데 그는 저렇게 제대 앞에 그것도 낯선 강남성모병원의 강당

에 누워 있고 저는 그분을 지켜 드리지도 못하고,말 벗도 되어

드리지 못하고,그저 멍하니 그분을 보내 드리는 영결미사를 지

켜보았을 뿐입니다.

 

 

 

미사 끝나고 여러 사람들과 그저 눈인사 정도 나누었습니다.몇

몇분은 다가와 이건 교회가 쇄신되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메세

지가 아니냐고 하기도 하였고,제게 위로를 건네는 분도 있었습

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은이야기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

니다.

 

 

 

무엇이 한 젊은 사제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저도 정말이지 모르

겠습니다.

 

 

 

누구도 그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영결미사 강론 때,강론을 맡은 동기신부는 평소 고인의 강직한

성품을 전해 주면서,그 강직한 성품이 힘에 겨운 짐을 스스로

지게 하였고,이렇게 싸늘한 시신으로 우리들에게 돌아오게 만들

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박은종신부님의 죽음을 통해 교회 장상들은 물론이고,우

리 모두가 회개의 징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모든

것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고,모든 것이 발전되는 것처럼 보이고,

모든 것이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한 사제의 죽음을 가져올 만큼 커다란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박은종신부님을 다른 사제들처럼 명동성당에 모시지 못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주교인 교구장이 영결미사에 참석했느냐

의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순결한 영혼을 지닌 사제중의 한분인 그가

왜 저 먼 지리산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굳어져 우리에게 돌아왔는

가 하는 점입니다.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박은종 신부님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너나 할 것없이 우리 모두 그분의 순결한 영혼을 통해 우

리 자신을 성찰하고,또 우리 자신을 쇄신할 기회를 갖도록 합시

다.그게 한많은 생을 마감한 박은종신부님의 뜻에 가깝게 가는

길이고,또 그분께 진정한 위로를 드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상도 참으로 무서운 것이지만,저는 오늘 영결미사를 통해 신

앙도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박

은종신부님에게 있어서 신앙은 또 사제의 길은 그의모든 것이었

습니다.

 

 

 

그의 영혼이 이제라도 안식을 누리기 기도합니다.

 

 

 

 

 

 

 

게시자: 오창익(hrights) 박은종신부죽음의 의미2

 

게시일: 2000-02-08 17:52:43

 

본문크기: 4 K bytes 번호: 8561 조회/추천: 469/21

 

주제어: 박은종

 

 

 

어제 오후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어제 장지까지 다녀온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많은 신부님

들,평신도들이 박은종신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구도의 길에 들어섰던 한 젊은

사제가 어처구니 없게 죽었고,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번 기회를

우리 모두의 성찰의 기회로,한국 교회의 거듭남의 기회로 삼아

야 한다고 하지만,막상 저 다음에 글을 올리신 분들은 없군요.

 

 

 

박은종신부님은 사제서품 이후 시흥동,해외 사목,명일동,잠원동

에서 보좌생활을 하셨고,삼각지성당에서 주임신부로 봉직하셨습

니다.

 

 

 

주변 분들은 박은종 신부의 기일을 일월 오일로 하기로 했다더군

요.장례는 어제인데 기일은 일월오일이라니 이건 이상해도 참

이상한 일입니다.

 

 

 

쉬쉬 하면서 소문은 꼬리를 잇는가 본데 책임있는 발언은 나오

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박은종신부를 그냥 보내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라도,누구라도 다만 추도의 목소리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

닙니까?

 

 

 

십년 가까운 세월을 사제로 살았는데,그래도 나름대로는 원칙

에 충실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았는데,그러다 그렇게 싸

늘한 시신으로 우리에게 잠시 돌아왔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갔는

데.

 

 

 

그의 부모는 그를 가슴에 묻고 회한의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왜 그 흔한 추모의 글조차 없는 것입니까?

 

 

 

 

 

 

 

게시자: 이근백(ylkb6804) 진정한자유인-박은종신부님

 

게시일: 2000-02-09 07:22:43

 

본문크기: 4 K bytes 번호: 8574 조회/추천: 395/15

 

주제어:

 

 

 

+.찬미예수님.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인으로 사시다가 가신 그 분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없는 저는 죄인일수 밖에 없습니다.

 

박은종 신부님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가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 진정한 진상을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유족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저도 어떻게 할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신부님들도 신부님 나름대로 앞으로의 생각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평신도들이 그와는 별개로 진상위원회라도

 

구성할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유족들과 협의하여 신중하게 이 문제를

 

풀어 나갈수 있으면 더욱 현명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에 하나 고인의 뜻에 누가 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만도

 

못하리라는 저의 짧은 생각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확실한 사실이 밝혀지면

 

여러 뜻 있는 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만,

 

아직까지 사실이 아닌일들도 인해

 

여러가지 구설수가 오르내리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

이 듭니다.

 

 

 

 

 

 

 

게시자: 심규태(gwingsun) [박은종 신부님]수유동 신자입니

다.

 

게시일: 2000-02-09 07:51:36

 

본문크기: 4 K bytes 번호: 8575 조회/추천: 378/17

 

주제어:

 

 

 

안녕하십니까.

 

 

 

저는 돌아가신 박은종 신부님의 출신 본당인 수유동 본당의 심

규태 베드로라 합니다.

 

 

 

방금 새벽미사를 보고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박은종 신부님의

어머니를 뵙게 되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를 껴안고 울고 계시더

군요. 코끝이 찡했습니다.

 

 

 

제 나이 스물 넷이고,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복사를 하고 있

었을 때, 박은종 신부님은 ’요한 학사님’이셨습니다. 또, ’

실버벨’이라고도 불렀지요. 중학교 때부턴 주일학교도 제대로

나가질 않아서, 박은종 신부님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항

상 검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계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리고, 안경 뒤의 눈이 반짝반짝 하셨지요. 또, 웬지 모르게 장

난치고, 친하게 지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 나이 차이가 많

이 나서였겠지요. 그 후로, 간간이 신부님 소식 -좋은 일 많이

하신다고- 을 들었는데, 솔직히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죄송합니

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고, 부끄럽게

도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신부님께 죄송

한 마음 뿐입니다.

 

 

 

더욱 죄송한 것은, 신부님 죽음의 이유나, 의미에 대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생전의 신부님

과 친하지도 않았고, 죽음의 순간에 함께 하지도 못했고, 하느

님이 나타나서 뭔가 알려주지도 않았으니까요. 다만, 하느님이

부모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신부님을 데려가신 데에는, 제가 알

지 못하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고,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일까 하

고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가신 신부님과 남은 우리들과의, 죽음도 뛰어넘는 아름다운 인

연이, 역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박은종 신부님, 안녕히 가십시오.

 

 

 

 

 

 

 

게시자: 윤경일(rocker66) 죄송합니다.신부님

 

게시일: 2000-02-09 10:37:46

 

본문크기: 4 K bytes 번호: 8579 조회/추천: 313/15

 

주제어:

 

 

 

정말 죄송합니다. 신부님

 

 

 

저는 신부님께서 계셨던 삼각지 본당의 교사를 하고 있었고 또

지금도 교사를 하고 있는

 

 

 

윤 대건안드레아입니다. 지금 당신이 계셨던 성당에서 당신이

쓰셨던 컴퓨터로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희 본당에서 1년동안 그렇게 많은 완고한 사람들로부터 괴로

움을 당하시고 미사 강론중에

 

 

 

도 눈물을 보이시던 당신의 얼굴이 계속 생각납니다.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뿌리를 뽑겠다"던 당신은 이제 주

님의 뜻대로 일하시다가 주님의품에 잠드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매도당하실 때 저는 조금의 힘도

되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우리 본당을 떠나셨을 때 한동안

당신과 당신의 뜻을 잊고

 

 

 

있었습니다.

 

 

 

더더욱 죄송한 건 건방진 생각일 지 모르겠으나 그 후로도 본당

엔 그다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그리고 올

바른 것을 생각하셨던 당신앞에 그저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2000년 2

월 대건안드레아 올림

 

 

 

 

 

 

 

게시자: 이종수(jslaura) 안녕히 가세요.. 박은종 신부님!!

 

게시일: 2000-02-10 08:27:08

 

본문크기: 7 K bytes 번호: 8592 조회/추천: 362/28

 

주제어: 박은종

 

 

 

떠 오르는 기억 몇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언제였더라....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일겁니다.

 

그때 가졌던 궁굼한 점 중의 하나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요한 학사님은 어찌해서 편입시험 안 보시고 다시 학력고사를

보셨나요?"

 

 

 

대학 졸업을 얼마 안 놔둔 시점에서 학력고사(그때는 수능이 아

니라 학력고사였으니까요)를 다시 준비해서 신학교에 입학했다

는 게 잘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지요

 

 

 

거기에 대한 학사님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하느님의 신부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되고 싶어서..."

 

 

 

부제서품을 받으시고 주일 학생미사 강론을 하실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주일학교 교사였기에 청소년 미사를 참석했었지요.

 

정확한 문구 등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

다.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서 고문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

다.

 

인간이하의 악랄한 고문을 담당형사는 가했지만 결국 그에게서

어떤 죄를 알아내지 못했고

 

결국 그는 풀려 났습니다.

 

 

 

어느 오후, 그는 자신의 아파트 테라스에서 자유로움을 느끼

고 있었지요. 문득 쳐다본

 

아파트 아래 놀이터에는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어느가정 - 아빠

와 엄마 그리고 어린 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미소를 띄우던 그의 얼굴은 그들의 모습이 좀더 자세히 보였을

때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저기! 한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사람...

 

그는 지울 수 없는 악몽을 심어준 고문 경찰관이었기 때문이었

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해 주셨던 그때의 그 강론!

 

들은지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성탄예술제를 준비하던 어느 겨울!

 

무대장치를 위해 중앙제단 옆의 제의실에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

었을 때(그 성당의 제단은 대리석으로 바닥이 굉장히 차가왔습

니다) 부제님은 그냥 신발을 신고 올라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대인데...."

 

그러자 부제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야.... 인간이 더 중요한 법이지"

 

 

 

몇해가 지나고 (지금도 그런 것 하는 지 모르지만) 혜화동의 정

의구현 사제단 사무실에서는 매 화요일(이었던가?)에 미사를 했

습니다.

 

 

 

그 미사에 참석하던 그 어느날 미사를 집전하러 오신 신부님을

다시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명동에서 시국관련 미사있을 때 약속한 것도 아닌데

도 우연히 뵙곤 했었고, 이것저것 의문나는 것들 있으면 묻곤

했었고(주로 교회에서는 답해주기 꺼려하는 그런 것들이었죠)

 

 

 

해외선교차 골롬반 수도원에 가 계시다는 말씀 전해들었습니다.

 

한국어 발음 유창하신 외국 신부님과 통화한 후에

 

 

 

"잘 다녀올게"

 

하는 신부님의 넉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너 결혼 안 하냐?" 하고 물으시면

 

"그땐 신부님이 홈배미사 주례 서 주실거죠?"했었는데...

 

이제 그 바램은 영원히 깨어졌네요..

 

 

 

 

 

예전에 어떤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어느 신부님이 그랬다지요?

 

’518 광주에서 신부 하나가 죽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아마

도 그러면 광주의 아픔을 더 일찍 밝혀 낼 수 있었을 텐

데..."라고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올 곧게 살았던 사람의 죽음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고발이 될 수 있을겁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속된 표현으로) "살만큼 산" 후에 따라온 죽

음이 아니라 "아직 할 일이 많은데..."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하

는 죽음이라면...

 

 

 

그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반역이고 올바르지 못한 것

에 대한 저항일 테니까요..

 

 

 

시대의 징표!!!

 

그런 것 잘 모릅니다,

 

어차피 일이 생기면 주보를 통해서

 

 

 

가톨릭 정론지 "평화신문" 평화방송 그런 것 통해서 다 풀이되

어 나오고 설명해 주니까요.

 

 

 

아마도 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사는 게 바빠서 한 신부님의 대한 기억을 잊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안타까운 얘기들,

 

이것들은 사실이 아니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미처 하지 못 했던 말씀을 고백해 봅니다.

 

"안녕히 가세요 박은종 신부님.....

 

 

 

그리고 사.랑.했.어..요..."

 

 

 

 

 

 

 

게시자: 오창익(hrights) 박은종신부 죽음의 의미3

 

게시일: 2000-02-10 14:18:34

 

본문크기: 7 K bytes 번호: 8603 조회/추천: 487/27

 

주제어: 박은종

 

 

 

제가 일하는 곳은 서울 삼각지에 있습니다. 조금 전 점심을 먹

고 산책(?)삼아 삼각지성당에 가보았습니다. ’산천은 의구한

데 인걸은 간데없고’

 

 

 

성당이 뭐 어디 가겠습니까? 들어가는 입구고, 성당어귀에 서있

는 성모상이고 간에 뭐든지 그대로 더군요. 당장이라도 사제관

에서 강아지 한마리와 함께 박은종신부님이 나오셔서, "어서 오

세요, 바둑 한판 둡시다."라며 말을 걸어 올 것만 같았습니다.

 

 

 

박은종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명동성당에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강남성모병원에 갔을 때는 아직 소식이 알려지지 않아서인

지 많은 분들이 오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빈소에는 그 흔한 꽃 한송이도 없었습니다. 분향을 하고 넙죽

절하고 돌아서는데, 어떤 자매님이 "어머니, 저는 삼각지 신자

입니다.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저희가 죄인입니다."라는 소리

가 들렸습니다. 쳐다보니 어떤 자매님이 박신부님 어머니의 손

을 잡고 울고 계시더군요. 뭐가 어떻게 되어서 죄인이라는 건지

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곡절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어떤 신부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는 그 신부님과 통화하기 전까지는 박신부님이 정확히 어떻게 돌

아가셨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이 알고 계신 바를 제게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조심스

럽게 여쭈어보았지만, 그 신부님께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제게

당신이 알고 계신 바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

습니다.

 

 

 

 

 

1. 박은종신부는 지난 1월 초 지리산에 혼자 올라 갔다.

 

2.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이 목을 맨 상태로 발

견되었다.

 

3. 지난 2월 1일 발견되었고, 2월 3일 가족과 서울교구의 동기

신부가 내려가서 시신을 확인하였다.

 

4. 서울교구는 사제가 자살을 했고, 또한 이 사실이 이미 소문

으로 신자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에 명동성당에 빈소를 마련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고, 따라서 상주도 교구가 아닌 동기사제

들이 되었다.

 

 

 

이것으로 제 의문은 풀렸습니다. 한 사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

다는 불경스러운 글을 이곳에 올렸다고 삭제를 시키지는 않을 것

이라 믿으며 이글을 계속 씁니다.

 

 

 

교구에서는 자살을 했기 때문에 명동에 모시지 않았다고 하지

만, 교회법 때문에 그렇게 헀다고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교회

법은 잘 모릅니다. 또 자살한 사제를 교구가 나서서 추모했을

때 생기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습니

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한 사제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이지, 그

가 마지막 가는 길이 명동에서 떠나든지 아니면 병원에서 떠나든

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업적으로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죽음

을 봤고, 또 많은 자살사건을 지켜봤습니다. 군이나 감옥, 경

찰 등에서 빚어진 인권침해사건의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꼴로 군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사체도 많이 보고, 부검

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제가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끼고,

또 확신하게 된 것은 "모든 자살은 결국은 타살"이라는 것입니

다.

 

 

 

멀쩡한 아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군에 가서 싸늘한 시신으

로 돌아오게 되었다면 부모는 당연히 "왜?"라고 묻습니다. 그

가 군에 가지 않았다면, 그가 군에서 선임병들로부터 가혹한 구

타나 따돌림, 또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받지 않았다면 그

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그물망 속에서 사는 존재이기에, 어떤 사람이 스스

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건 분명히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많

은 경우의 자살은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전태일, 조성만도 자살을 했지만, 우리는 그를 흔히 이야기하

는 의미로 그냥 ’자살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올해 41세가 된 사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것도 지리

산 골짜기까지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누군가는 책임

있게 그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건 제가 몇

차례 밝혔듯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

다. 그저 느낌입니다만, 저는 박은종신부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

언가를 촉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회개입

니다. 누구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사제가, 누

구보다도 강직했고, 너그러웠으며,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약

자에게 군림하지 않았던 사제가 목숨을 걸고, 아니 목숨을 끊어

가며 외치는 그 한마디의 메시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배달된 평화신문은 박은종신부가 지리산에서 사고로 숨졌다

고 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건 사실도 아니고, 더

구나 진실도 아닙니다. 사고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평화신문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바보

가 아닙니다. 소문에 둔한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제

많은 신자들이 박은종신부 죽음의 진상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저 사고로만 묻어둘 일은 아닙니다. 그 진상을 알리고, 그 죽

음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희년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어디서도 희년의 표징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저 유감일 뿐입니다.

 

 

 

 

 

 

 

게시자: 이동근(andrea-lee) 박은종 신부님 천국에선 편안하시

길...

 

게시일: 2000-02-10 21:18:09

 

본문크기: 5 K bytes 번호: 8609 조회/추천: 296/26

 

주제어:

 

 

 

박은종 사도요한 신부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하느님 품에서 영원

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세상 그 어떤 사제보다도 참다운 사제였고 올 곧게 주님의 정의

를 실천하며 사셨던 진정 한 사제이셨음을 압니다. 불의에 굴복

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항상 사랑으로 감싸고 보

살피셨던 신부님이셨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함도

가지셨지만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시는 자상함을 함께 가지고

계셨던 신부님 이셨습니다.

 

 

 

아이들과 노인들을 유난히 사랑하셨던 신부님의 사제관은 항상

어린아이들의 놀이터 였고 아이들과 함께 하시는 신부님은 아이

들의 친구이셨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유배(?)생활을 잘 알고 있습니다.덥수룩하게 기

른 수염과 색바래고 낡은 옷차림에 우수어린 웃음을 머금고 어려

운 가정들에 위로와 힘을 주셨던 신부님, 그때는 무엇때문에 신

부님께서 그렇게 지내셔야만 되었는지 이유를 몰랐으며 물어도

대답않을 분이시기에 묻지도 않았습니다.

 

 

 

신부님이 그처럼 고뇌하고 힘들어 하심이 무었이었건 그저 신부

님께서 충분히 쉬시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시기만을 기도드렸습

니다.

 

 

 

하느님께 당신이 뽑은 사제 지켜주십사고 기도만 드렸었는데 이

렇게 허무하게 신부님의 죽음을 접하게 될줄은 정말 몰랐습니

다.

 

 

 

신부님의 장례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의 시신이 땅에 묻힌 지금,

여기저기에서 신부님의 죽음에 대해 논란이 된다는 사실이 마음

을 아프게 합니다. 신부님께선 아마도 당신의 죽음을 두고 벌

이는 논란 마저도 거부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

다.

 

 

 

생전에 그러셨듯이......

 

신부님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애통하고, 이세상 이렇게 많은 사

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신부님을 지켜 드릴 수 없었음이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신부님을 잃은 사실을 견디기 힘들지만 신

부님께선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고만 있는 모습을 바라지 않을 것

이라 생각합니다.

 

 

 

신부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들 모두가,교회

가,교단이 그리고 신자 개개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새로워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그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당

신을 믿고 섬기는 교회의 모습이리라 생각합니다.

 

 

 

2000년 대희년에 희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돌아가신 신부님

을 추모하며

 

 

 

신부님!신부님께선 너무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셨기에 불의가 가

득찬 이 세상에선 너무나도 살아가기 힘드셨지만, 천국에선 고

통도 슬픔도 고뇌도 없이 평안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게시자: 오창익(hrights) 박은종신부죽음의 의미4

 

게시일: 2000-02-11 11:21:32

 

본문크기: 4 K bytes 번호: 8619 조회/추천: 472/23

 

주제어: 박은종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또 여러분들이 메일까지 보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나름대로는 책임있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 제가 이렇게 글을 자

꾸 올리는 것은 이미 밝힌대로 무언가 답을 듣고 싶어서 입니

다. 그 답은 반드시 교회 장상의 책임있는 답변만을 의미하지

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 글을 읽고 추모의 글을 올려주신 여러

분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행하는 [빛두레]를 받

아보고, 빛두레 별지에 실린 원주교구 안승길 신부님의 글을 몇

번씩 읽게 되었습니다.

 

 

 

박은종신부님 생전 마지막 몇달동안을 함께하셨던 신부님의 글

은 박신부님 죽음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또한 가장 정확히

표현한 글이었고, 말 그대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글이었습

니다. 첨부자료로 올려 드립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첨부자료

 

 

 

어느 젊은 사제의 죽음

 

 

 

안승길·로베르토 신부 / 천주교 고한성당 주임

 

 

 

새천년 2월 7일 오전 10시에 서울 강남 성모병원 마리아홀에

서는 적막과 같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죽은 어느 젊은 사제의

장례미사가 집전되고 있었다. 그 장례식에는 500여 명의 조문객

들과 그와 함께 서품을 받은 동창사제들과 생전에 그와 정을 나

누던 선후배 사제 등 150여 명의 사제들이 함께 하였다.

 

분명 그의 사제 장례미사는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성직자 장으

로 치러야 하건만 그의 죽음의 과정과 원인이 불투명하여 공개적

으로 장례식을 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교구청 고위 성직자들

의 의견이 반영되어 비공개적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교구 성

직자 묘역에 안장시키는 것으로 장례식을 마쳤다.

 

이 젊은 사제의 죽음의 양상은 한국교회 사상 초유의 일이었

고, 왜? 이런 죽음이 고인에게 왔느냐? 하는 문제는 개인적인

생존의식으로 탓하기에 앞서 사제공동체, 교회공동체에게도 책

임과 반성의 내용이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고 본다.

 

지난 2월3일 그의 주민등록지가 있는 강원도 상동(원주교구

황지성당 소속)읍사무소를 통하여 황지성당 본당사제에게 그의

죽음과 신원확인을 하는 연락을 받았을 때에 당혹감과 괴리감!

그가 아니기를, 착오이기를 바랐지만 분명 그의 시신은 지문확

인을 통하여 서울교구의 젊은 사제로 상동공소에서 6개월간 휴

양하면서 사목자로 있었던 한 젊은 사제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의 시신은 지리산 등산 코스의 어느 산중에서 등산객에 의

해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와 함께 그 지역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

어 그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증명서는 전혀 없었기에 지문을 통하

여 그의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그의 시신에서 증명서가 전혀 발견되지 못한 이면에는 그 자신

의 신원이 알려지기를 전혀 원하지 않았고, 사제로서의 죽음이

교회공동체에 그릇된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도 속에서 신

변 정리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가 있었다. 또한 다른 측면으로 보면 엄동설한의 폭한 중에

홀로 산행의 길을 간 것을 보면 어떤 고뇌의 질곡 속에서 방황하

다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의 길을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이 맞아야 할 죽음의 의미는 생존의 가치성을 전제

로 하여 그 실존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육체적 질병으로 맞는

죽음, 정신적인 고뇌와 번민 속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자의에 의

해 맞이하는 죽음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필자가 이 젊은 사제의 죽음의 의미를 피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인이 6개월 동안 살고 있던 곳(상동)과 나의 본당과

는 가까운 이웃이었기에 유일하게 같은 사제로서 선배, 후배

로서 만남의 시간이 많았고 10번 이상 태백산맥의 산들을 같이

동반하면서 내면적인 실존의식과 40년간 살아오면서 그중에 9년

간의 사목생활의 의미를 신앙과 교회체계와 실존의 가치적인 측

면에서 고뇌로서 고백하는 의식들을 듣게 되었고, 지난 11월 21

일 상동공소를 떠나기 전날 태백산 천제단에서 5시간 등정과 하

산하면서 "사제직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뇌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 그간 선배님으로, 때로는 아버지처럼 저를 아껴주

시고 사제직의 고유성을 체험을 통해 확인시켜 주신 것은 너무나

도 감사합니다. 저는 능력도 없고 의욕도 없어요. 제도교회에

폐만 끼친 것 같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대

로의 삶의 방식이 있기에 내가 다시 찾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등산한 시간들을 고귀한 아름다운 삶의 일상으로

간직하겠어요."

 

이런 인사와 함께 그와 헤어졌다. 그로부터 전혀 소식이 없

던 그와 우연히 만난 것은 12월 22일 서울에서 태백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였다. 밝은 표정 속에서 남쪽 해안가에서 노동을 하

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고 안착하는대로 연락도 하고 찾아 뵙겠다

는 말과 함께 헤어진 것이 생전에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는 9년간의 사목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순수 하고 자신의

위상을 들어내지 않는 우직한 모습이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

된 이들에 대한 삶의 투신을 사제의 덕목으로 여기고 생활하여

온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우직하고 내성적인 성정이 주어진 현실여건과의

마찰을 하면서, 많고 깊은 상처를 안게 된 것 같다. 사제 생활

초년기에 남미의 선교사로 지원하여 1년간 남미에서 언어 수학

중에 교회 장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너무나도 컸고, 귀국하여

서도 받은 상처가 그의 정서감에 혼란을 준 것 같다. 몇 년간

의 보좌신부로서 사목을하면서 만났던 신자들은 그의 때묻지 않

은 희생심과 그의 성품의 하자를 뛰어넘어서 정말 성실한 사목자

라고 칭송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이상은 첫 본당신부로서 소임을 시작하면

서 치유가 힘든 상처로서 만나게 되었다. 수도자들과의 마찰,

사목위원들과의 의견대립, 그리고 교구청 장상과의 문제… 이

런 상처를 안고 그는 본의 아닌 휴양의 시간이 이곳 태백산 계곡

에서 있게 된 것이다.

 

등반하면서 고인이 내 놓는 화두가 회상된다.

 

"신부님, 인간으로 형성된 모든 조직체계는 기득권 보호가 우

선인 것 같아요. 교회도 마찬가지죠! 문제제기를 만들지 않고

주어진 환경하에 현명하게 처세하면서 장상에게 잘 보이고 사제

직을 기본적으로 지키면 되는데,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요. 제도교회의 위선이 복음의 진실로 선포되는 인상을 보기가

힘들어요! 희생, 투신, 정의, 참 나눔이 교회의 본연의 모습

인데요! 나의 성격으로 상처 준 모든 이에게 죄송해요! 내가

이곳 산골에 와서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찾는 듯 해요! 나는 현

대에 안 맞는 성직자인 것 같아요! 내 생활비도 내가 직접 노동

해서 벌어야 하는데…."

 

 

 

그는 제도 교회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교

회 장상에 대한 원망은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자신의 부족성

과 현명치 못한 처세에 대해서 자학적인 정감을 표출하기도 했

다.

 

상동공소 생활에서 그는 노동의 시간을 많이 가졌고, 특히 노

인들과 어린이들에게는 참다운 이웃이고 벗이었다. 그의 찬 온

돌방은 동네 꼬마들의 놀이방이었다. 첫영성체 준비 아동들을

위해 본당 교리반에 교통편을 제공하는 고마운 운전수이기도 했

다.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기도 했다. 상동공소의 생활이 그에

게는 참 평화와 안정의 시간이었다. 그는 자립해야할 방법으로

대형 자동차 면허증을 얻는다고 자동차 학원에도 다녔다.

 

가끔 다른 본당의 초청이 있으면 성심성의껏 성사를 집행했

다. 그는 두달간 모 본당 사제관에서 식복사 노릇까지 기쁘게

하면서 지냈고 나와의 대화중에는 음식 만드는 솜씨까지 자랑도

했다. 그는 가난한 삶을 즐기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물질의 풍

요를 지닌 이들의 삶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런 성품의 젊은 사제에게 왜 죽음이 왔는가? 죽음을 스스

로 선택한 것인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다면 그 강한 의지

로 사제직의 올바른 정체성을 보일 수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

문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다면 그는

하느님의 뜻과는 상반된 것이고 생명의 고귀성을 파괴한 이로서

사제직에 부당했던가? 그렇다면 회교도의 강압종교정책에 항의

하면서 스스로 권총 자살한 파키스탄의 한 주교님(퍼온 이

주 : 파키스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존 조셉주교를 지칭)

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1970-80년대 민주화와 인권회복

과 노동자의 권익을 부르짖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33명의

젊은이들의 희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에서 "통일"을 외치면서 투신한

고 조성만 군은 "지금, 이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

굴 차마 길을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천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하고 유서를 남겼다.

 

비록 자신의 죽음의 소식까지도 거부하면서 세상을 떠난 이

젊은 사제는 유언의 언어는 없었다. 그러나 제도교회의 모순성

을 쇄신해야 한다는 무언의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간 것이 아닐

까?

 

 

 

오늘의 교회, 오늘의 사제의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제

단 25주년 기념 사제헌장에서 선언한대로 십자가 없는 교회와

사제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과 같이 십자가의 고뇌를 안고

가야 한다는 대명제의 교훈을 주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났다. 죽

음을 전제로 한 교훈은 최고의 가치와 힘을 갖는다. 예수의 십

자가상의 죽음과 희생이 이 모든 의미를 종합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젊은 사제가 죽음을 선택한 것을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지녔던 사제로서의 고뇌와 그가 택한

죽음에서, 보다 큰 의미와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

에 그 선택과 원인이 그 개인만의 것이라고 치부해서도 안된

다. 그가 사제가 아니라면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

었다는 자명한 사실에서 우리는 이 아픔의 의미를 안고 희망과

기쁨의 미래를 형성하기 위해 현주소를 찾아야 한다.

 

 

 

이글을 마치면서 필자는 그와 함께 가장 기쁘고 청순한 마음

을 그러나 지독히 피곤하고 힘들던 두위봉 산길을 그의 영혼과

대화하면서 다시 가보련다

 

--- 끝 ---

 

 

 

 

 

또한 가능하다면 이곳 저곳 우리 신앙공동체가 함께 하는 홈페이

지 등에 퍼다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어제 저는 평화신문을 보고 사고사라고 쓴 평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밤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해할 수는 있

지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나 가톨릭이 제도교회의 입장만을 어설프게 대변하는 관보

의 성격에서 벗어나려면 작은 진실이라도 그것이 진실이면 포기

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진실을 위한 크고 작은 싸움을 외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평화신문은 의도적인 오보를 냈으며, 이

는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반면, 오늘 배달된 가톨릭신문은 그저 "지리산 등반중 선종했

다."고 썼습니다. 그대로 쓰지 못할 바에야, 아니 그대로 쓸 생

각이 없었다고 해도, 최소한 사실에서는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평화신문의 정정보도를 요구합니다. 아울러, 정말 가능하

지 않겠지만, 밑에 첨부한 안승길신부님의 글을 다음호에 게재

해 줄것도 요구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시자: 김윤선(qhfkRhc) 박은종신부님을 사랑하는 분들

 

게시일: 2000-02-11 11:48:01

 

본문크기: 1 K bytes 번호: 8622 조회/추천: 329/14

 

주제어: 회개, 진실, 저항, 그리고 부활

 

 

 

굿뉴스에 이제사 들어와 보았는데, 반가운 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요, 박신부님은 죽으셨습니다.

 

사랑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는것입니다라는 신부님의 말씀처

럼,

 

그분은 죽으셨는데,

 

그럼 그분을 누가 죽인 것인가요?

 

 

 

함께 아파하고, 함께 합시다..

 

우리가 함께 회개하고 진실을 밝히고, 그리고 저항함으로써,

 

그분의 삶을 바로 여기에서 부활시킬 수 있도록,

 

그분을 사랑하는 분들과 동참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서, 힘을 모아서 함께 하자

고..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기존의 불의와 부패에 저항하셨듯이,

 

이제 우리도 그분의 그 죽음을 그냥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회개와 교회 어른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지켜보는 이들, 비록 큰 소리 치지 못하지만,

 

지켜보면서 침묵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침묵이 때로는 또 하나의 힘이 되어

 

일어날 때가 있다는 것을

 

.....

 

 

 

신부님을 존경합니다...

 

 

 

김윤선, 정혜란 ...

 

 

 

 

 

 

 

게시자: 이종우(ljw2000) 박은종 신부님을 추모하며

 

게시일: 2000-02-11 17:55:48

 

본문크기: 4 K bytes 번호: 8634 조회/추천: 269/18

 

주제어: 정의

 

 

 

박은종 신부님에 대한 오창익님의 글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그래도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군요.

 

 

 

그런분이 계셨다는 것으로..

 

 

 

대희년이 되어도 희년의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진정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만..요사이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도

 

마음은 자꾸 무교회주의로 갑니다.

 

 

 

어느 사제가 100만원짜리 양복을 얻어 입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서 참으로 낙담하였는데... 아무리 무심코 하는 말

이지만..

 

 

 

이제 교회도 평신도가 운영하는 교회신문이 나올때가 되었습니

다.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전해줄 수 있는

 

그러한 언론이 있어야 합니다.

 

 

 

사소한 교회 사제들의 동정은 빠짐없이 신문에 나오고

 

세상과 교회를 위해 외쳐야 하는 소리는 침묵을 지키는 그러한

관보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언론이 정론이 아니고 사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고민하는 교회언론이 있어야만 이번 박신부님 경

우도

 

진정으로 교회를 위해서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하는 교회언론은 이제 더이상 언론이 아닌 관보에 불과 한

것입니다.

 

교회 언론에 종사하는 모든이가 선지자 이사야와 같은 마음으로

 

봉사하지 않는다면 진정 대희년의 희망은 없을 것입니다.

 

 

 

박은종 신부님을 추도하며...

 

 

 

 

 

 

 

게시자: 이종수(jslaura) 박은종신부님! 왜 그렇게 떠나셨나

요!

 

게시일: 2000-02-11 22:46:55

 

본문크기: 5 K bytes 번호: 8638 조회/추천: 226/17

 

주제어: 박은종

 

 

 

6월 항쟁을 기억하시는지요!

 

탁하고 치니까 억소리를 내며 죽었다던 그때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미사가 명동에서 있었습니다.

 

 

 

주례를 맡으신 당시의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께선

이렇게 강론하셨다고 합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시니 카인은

 

’모릅니다. 제가 동생으르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발뺌했습

니다.

 

 

 

창세기의 이 질문을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던지고 계십니

다.

 

"네 아들, 네 제자, 네 형제, 네 국민의 한사람 박종철은 어

디있느냐?"

 

 

 

며칠전 설 연휴때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 본당 교사할 때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후배였지요.

 

 

 

’설이고 하니까 새해 인사를 하려고 전화했나 보다’ 하는 짐작

은 완전히 틀려버렸습니다.

 

’오빠 그거 알고 있어요? 박은종 신부님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월요일 오전에 장례미사가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

다.

 

 

 

월요일... 회사 출근하느라 미사에 못 참석했지요.

 

바로 그날 오후

 

"그래도 참석해야 되지 않았느냐는 질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4일이 지난 지금까지 무기력감과 허탈감에서 헤어나오

지 못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과연 정말로 열심히 살고 있기에 신부님의 마지막을 보지 못

한 것일까?"

 

 

 

지금 이순간! 하느님께서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네 사제 박은종 신부는 어디있느냐?"

 

생각하고 있을려면 마음이 답답해져 옵니다.

 

아니, 너무나도 속이 타서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차라리 신부님을 몰랐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텐데....

 

 

 

그대 살아있어 아름다운 세상인데...

 

---------------------------------------------------

 

꽃상여 타고..

 

 

 

꽃상여타고 그대 잘가라

 

세상의 모진 꿈만 꾸다 가는 그대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 숲 사이

 

 

 

그대 잘가라 꽃상여타고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 어이 큰 눈물을 땅에 뿌리고

 

 

 

그대 잘 가라 꽃상여타고.....

 

 

 

그대 잘 가라 꽃상여타고.....

 

 

 

 

 

 

 

게시자: 이유진(esperansa) 박은종 신부님의 죽음에 대해..

 

게시일: 2000-02-12 03:00:14

 

본문크기: 5 K bytes 번호: 8639 조회/추천: 215/9

 

주제어:

 

 

 

전. 생전에 박은종 신부님을..알지 못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신부님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글이 많이 올라오기에 관

심을 가지게 되어 이리 저리 찾아 보았지만. 별다른 기사가 없

이 궁금증만 더해갔답니다

 

 

 

그러다가 평화신문에 나온 부음 기사를 보았고

 

신부님 얼굴이 참 맑아보여 그 젊은 죽음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기사에는 다른 분들이 이미 말씀하신것처럼 등반하다 실족사하셨

다고 나왔지요

 

그 글을 읽고 사인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다른 어떤 이유가 있길래 그분의 죽음을 특별히 애도하

는 것일까 하는...

 

그리고는 아래 오창익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놀랐습니다...

 

 

 

왜 그렇게 돌아가셨을까...

 

자살을 어떻게 실족사라 했을까...하는...놀람과 의문이 머리

를 자꾸 때리더군요..

 

 

 

여러분들의..글에서...알 수 있듯이..

 

박신부님은 참 좋으신 분이었을거란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위신(?) 때문에 병원에서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는 것이..

 

무척 화가 났습니다..

 

평화신문의 왜곡보도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런데..한가지 알 수 없는게 있는데..묻기가 .굉장히 조심스러

워 집니다..

 

신부님께서 왜 그러셨는지..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이유라도

 

자살은 교회법상 금지되어 있는게 아닌지요..?

 

요즘은 자살한 사람도..교회 안에서 장례미사를 할 수 있기는

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알기로는 가장 큰 죄라고 들었는데요....

 

평신도가 그러해도 큰 죄인데 사제라면...정말 문제가 아닌가

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저로써는..좀 막연합니다..

 

박은종신부님을 추모하는 많은 분들께는..제 글이 무례할꺼 같

아...죄송스럽다는

 

생각입니다.

 

 

 

다만..한 평범한 신자가..(개인적으로 그 분을 모르는...)

 

사제의...자살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건지...

 

답답하답니다...제 글이 기분나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고....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시자: 오창익(hrights) 박은종신부죽음의 의미-5, 마지막

 

게시일: 2000-02-12 12:47:59

 

본문크기: 9 K bytes 번호: 8642 조회/추천: 215/25

 

주제어: 박은종

 

 

 

어젯밤, 오늘 오전에 모두 세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

분은 박신부님이 함께하셨던 공동체에서 일하시는 분이고, 다

른 한분은 신부님이었고, 마지막 전화는 박신부님과 매우 가까

웠던 어떤 선배였습니다. 세분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제 글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고, 저는 전화통화를 통해 세분의 말씀에

대체로 수긍한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지난 며칠동안 썼던 글이

이곳에서 파장을 일으켰고, 그 파장이 제가 원래 의도했던 바

와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세분

은 제게 전해 주셨습니다. 전화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

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는 박은종신부님에 대한 글을 그만

올리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올리면서, 제가 왜 박은종신

부님 죽음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고 했는지, 저의 생각

을 밝히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증언하신 것처럼 박은종신부님은 보기 드문 강직한

분이셨고,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순결하게 살아오셨습니

다. 정말로 강자앞에 비굴하지 않았고, 약자에게 군림하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박은종신부님에 대한 기억은 주일학교 학생들,

교사들, 장애인들, 본당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각

별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올라온 글중에서 삼각지성당 교사의 글이 있었습니다. 맞

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삼각지성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

다.

 

 

 

가끔 대학로를 걷다보면 신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스님처럼 머

리를 깍지도 않았는데, 한눈에 신학생임을 알아보는 경우가 있

습니다. 그건 구도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 특유의 어떤 향기 때

문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땅의 사제들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평신도들은 수도성직의 길을 가지

못하고(또는 않고) 있다는 것 때문에 컴플렉스를 갖기도 합니

다. 그것은 어떤 사제나 수도자가 특정공동체에서 행사하는 권

력의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

고, 또 진리에 대한 삶을 건 탐구의 자세, 남을 위해 사는 이타

적인 삶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평신도들에게는 그런 수도성직자들을 단지 자기 입

맛대로 재단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저도 예외는 아

닙니다. 제 머릿속에 정리된 좋은 사제, 그렇지 않은 사제는 단

지 제 기억, 또 어떤 이미지의 산물일 뿐입니다. 좋다고 생각하

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 그건 단지 좋고 싫음에 대한 기억

일 뿐이지, 정밀하게 한 인간에 대해 탐구한 결과는 아닙니다.

 

 

 

어떤 성당이든 열심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평소 몸이 편찮으시

다가도 성당에 가야할 때만 되면 거짓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서

는 저희 어머니도 그런 분들 중에 한분입니다. 정말로 신심이

깊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으며 하느님께로, 하느님께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성당

이든 성당을 사유화하며, 토호화된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예수께서 질타하신 성전의 장사치들처럼 자신의 영달을 위

해 성당의 온갖 시스템과 심지어 사제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고 싶어합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사제를 유혹합니다. 돈으로 골

프로, 어떤 경우에는 무슨 근사한 정보를 들려주며 유혹합니

다. 그리고 사제에게 "당신은 곧 떠날 사람"임을 주지시키며,

자신의 이익에 복무할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런 요구는 그렇

게 천박한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지역 토호들의 성격이

교묘하고, 그들의 네트워크가 강고한 것만큼 매우 교묘한 형태

로 나타납니다.

 

 

 

삼각지성당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권력을 향한 지

역토호들의 집념은 올곧게 살려고 하는 한 사제를 궁지에 몰아넣

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평신도 간부는 신부의 멱살을 잡기도 했

고, 교구청에 쫓아가 말도 안되는 험담을 일삼았습니다. 그리

고 소문은 소문을 낳았습니다. 저는 우연히 제 어머니께 "삼각

지 성당 신부가 미쳤다며"라는 이야기를 박신부님이 삼각지 주

임으로 계시던 때 들었습니다. 어머니께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

씀드리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다

른 성당의 교우인 저의 어머니도 이렇게 한 사제에 대해 무책임

한 말씀을 보태고 있습니다.

 

 

 

소문은 무서운 것이고, 소문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저는

박은종신부님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 평신도들의 이기심이, 본

당을 사유화하고, 사제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고, 맘에 들지

않으면 "젊은 사람이 버릇이 없다" "성격이 이상하다"고 아무

런 가책도 없이 쉽게 몰아세우고, 매도해버리는 풍토가 박신부

님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 사제들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어떤 사제도 개인의 영달

을 위해 사제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벅

찬 감격으로 신학교 문을 들어서던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존재

를 온통 내던지겠다는 강한 의지와 순결한 영혼 뿐, 다른 어떤

불순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공동체에서 사제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지 성사를 집행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자기 삶을 내어던지는 사람들이 없다면

교회공동체는 더이상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박은종신부님은 자신을 내던진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신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의 순수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이후 사제생활을

통해서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삶을 통해, 그분이 철저

하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내어 놓고 있고, 자신을 비우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벽에 부닺쳤습니

다.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지역 토호를 비롯한 우리 평신도들이

었습니다. 하느님이든 본당공동체든, 또 사제든 간에 자기 것으

로 만들어 버려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 성당에서 경제적, 정치

적 이득을 구하는 사람들, 성당에서 명예를 쫓는 사람들, 성당

에서 단순한 심리적 보상만을 바라는 사람들, 자기 것은 눈꼽만

큼도 내놓지 않으며, 이웃의 것을 빼앗으려 드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이 박은종신부님을 죽여버렸습니다.

 

 

 

정말 예수처럼 살고자 몸부림쳤던 착한 신부님, 우리의 착한 목

자를 우리가 죽였습니다.

 

 

 

그동안 제가 글을 쓰면서 박은종신부님 죽음을 둘러싼 몇가지 생

각을 쓰다가 본질이 왜곡되게 해석될 수도 있는 일부 표현에 대

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 장상이든, 교계언론

이든, 또 다른 누구든 모두 이 죽음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갖

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제 생각에 종범이고, 주범은 우

리 평신도들입니다.

 

 

 

평신도들이 사제를 성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정신병자로 만들기

도 하고, 죽음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내일은 또 주일입니다. 내

일 우리는 또 성당에서 우리의 사제들을 만납니다.

 

 

 

누군가 좋은 마음을 갖고 공동체를 위해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니, 최소한 자기 멋대로 재단하며

사제를 밀쳐내지는 말아야 합니다.

 

 

 

박은종신부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우리들 모두에 대한 회개

의 촉구입니다. 박신부님 죽음을 보고서도 회개의 기회를 찾지

못한다면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컴퓨터 통신에 익숙하지 못

해서, 미리 다듬은 글을 올리지 못하고, 그냥 단박에 글을 쓰

게 되면서 제 글 때문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으신 많은 분들

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게시자: 김희정(agneskim) 주범은 바로...

 

게시일: 2000-02-12 13:27:14

 

본문크기: 5 K bytes 번호: 8643 조회/추천: 130/15

 

주제어:

 

 

 

†찬미예수님

 

 

 

박은종신부님의 명복을 빕니다.

 

 

 

[주범은 우리 평신도들] 이라 하신 오창익님의 표현에 전 너무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그 동안 무심코 던졌던 한마디의 말과 생각만으로도 우리 신부님

들을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골짜기로 보냈는지...

 

 

 

저는 그 동안 찬미예수님을 말로만 떠들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정하신 그 분의 일꾼인 박신부님과 같은 좋으신

우리 신부님들(모든 수도자)의 힘이 되어드리는 것으로부터 찬

미예수님이 시작된다는 것을 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저는 박은종 신부님의 이름 석자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분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이제 알게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창익님께서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준 상처가 있다고 말씀

하셨지만 저처럼 단지 눈을 뜨고 있다하여 무엇을 보았다고 떠들

어댄 사람들에겐 많은 교훈의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젊음!

 

그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주님께 모

두 내어 드렸는데...

 

결코 그 분들 앞에서는 아름다울 수 없는 저희가 우스운 모습으

로 잘난 채를 했습니다.

 

 

 

칼릴지브란의 모래물거품에 나온 글이 생각납니다.

 

 

 

개구리는 황소보다 크게 울 수 있지만

 

그는 쟁기를 끌 수도 없으며

 

그의 가죽으로는 신발조차 만들 수가 없다.

 

 

 

마치 평신도(개구리)와 사제(황소)의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사랑 그 단 한가지 이유로 언

제나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주님께서 늘 박신부님과 함께 하시

길 빕니다.

 

 

 

 

 

 

 

게시자: 김윤선(qhfkRhc) 박은종신부님! 많이 읽어주세요.그

리고 나눠주세요.

 

게시일: 2000-02-12 14:50:58

 

본문크기: 7 K bytes 번호: 8645 조회/추천: 121/10

 

주제어:

 

 

 

오창익 님의 글을 읽고 감사하는 맘과 함께 몇 자 덧붙입니다.

 

아마 님은 다른 세 분의 충고?때문에 이제는 여기 게시판에 글

을 올리시는 것을

 

삼가하시기로 하신 거 같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분의 죽음을 놓고 왈가왈부하면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소

란스럽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 그분의 뜻을 더욱 훼손시키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말이에

요.

 

그러나 그게 다일까요? 그렇게 하고 나면 끝나는 것일까요?

 

 

 

저 역시 박 신부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제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사제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같

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는 언젠가부터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를 나누어 생각하

고,

 

그런 역할의 다름이 또한 서로에 대한 불일치의 기회가 되는 경

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기는 이렇게 살면서 수도자는 사제는 저렇게 살아야한다는

둥,

 

평신도들은 저렇다는 둥.

 

 

 

이번 일에서도 마찬가지 비슷한 방식으로 이끌어지고 있는 것 같

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그분을 죽게 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평신도들이라고 하기 이전에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이 그분을 죽게 했다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요?

 

평신도는 죽게 했고, 같은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은 그분을 살게

했는지요?

 

 

 

저는 그분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그리고 잘못을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행동으로 어떤 표현

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가리고, 마치 없던 일로 덮어두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

리고, 잊어버리고,

 

쉽게 말해버리는 것...

 

 

 

글쎄요...

 

 

 

저희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저희는 평신도로서의 저희가 아니라,

 

사제로서의 저희, 주교로서의저희, 수녀로서의 저희, 친구로서

의 저희, 사목위원으로서의 저희, 평신도로서의 저희이고, 그리

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어쩌면 박은종신부님 자신으로서의 저희일

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모든 저희의 회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저희의 회개 안에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다른이들의 아픔에는 민감하지 않고 둔감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니까요..

 

 

 

문제가 일어나면, 왜 그런 문제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여러 과정

을 통한 검토보다는

 

한마디로 단죄하고, 단정해버리면 그뿐입니다. 문제를 일으킨

것 그 자체만이 나쁜 것이 되어버리지요..

 

 

 

얼마안있으면, 아마도 1월 5일이 신부님의 선종일이라면,2월23

일이 49제가 되나요?

 

그때까지는 무엇보다도 기도와 회개 속에서 그분을 위해 함께해

야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앞에서 가장 상처 받으셨을 우리들의 주님

을 위해서말입니다.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49제가 되는 2월 23일 (수) 쯤에 함께 미사를 드리고,

 

다시는 이땅의 한 그리스도인이 우리와 조금 다르고 유별라다는

그런 속단 때문에

 

죽음의 그 외로운 길을 걷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구 차원으로 49제 미사를 드리는 것

이 어떨지요?

 

우리는 교황을 위해 주교를 위해 전 교구인들이 기도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함께 이 신부님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하지 않나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돌아가신 그분과함께 하느님께 회개와 감사

의 미사를 드려야하는 게 아닌가요?

 

 

 

다음, 그 다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우리가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 조직은 어떠했는지.. 누구를 소외시키고 누구를 두

둔했는지..

 

 

 

정말, 2000년대에 맞는 한국교회인지...

 

이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이곳에서 나누어지고,

 

함께 찾아가는 것이 필요한게 아닌가요?

 

 

 

더구나 부모님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시켜드릴 건가요?

 

제가 신부님 빈소에 갔을 때, 부모님이 너무 맘이 아프실까봐

사람들은 어려운 와중에도

 

돈을 모아 부조를 했는데, 그것이 이미 신부님은 하느님께 바

친 분이라 교구로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는 괜히 부조함에 넣었다고, 어머님께 직접 드릴

걸...하고 후회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목소리를 교구에서는 듣기나 한 건가요? 자신의

아들을 하느님께 교구에 바친 그 부모님께 우리는 어떻게 용서

를 청해야 하는 건가요?

 

 

 

또 하나, 우리들의 이런 모든 글들과 신부님의 글, 정말 너무

감동적인 신부님의 강론들을 모아서 유고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단지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삶을, 우리들의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래서 새천년에는 정말 아름다룬 그리스도 공동체의 한국 천주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들이 힘을 모아 그런 유고집이라도 내야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들의 목자는 이런 멍청한(?) 양들을 어떻게 인도해 주실 건

가요?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돌아가시지 않았습니다.

 

박은종 신부님은 저희와 함께 하시고 계시니까요..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게시자: 배대식(eotlrdldml) 박은종신부님의 죽음을 보면

서...

 

게시일: 2000-02-14 09:49:30

 

본문크기: 7 K bytes 번호: 8654 조회/추천: 4/0

 

주제어: 신자들의 신앙태도

 

 

 

신자들의 잘못으로 한 사제를 죽음으로 까지 몰아야하는 교회

의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글을 올립니다.

 

 

 

박신부님께서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을때는 개인의 모든 영화

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대리자로써 세상속에서 어두운곳의 빛이 되고자 힘들

고 고난의 길인

 

사제직을 선택하였을 것 입니다.

 

 

 

그런 사제를 이기심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우리 모두가

한 사제를

 

죽음으로 몰았습니다.우리 모두의 신앙인들은 통회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을 개인소유화 할려고 하는 평신도들이 있기 때

문에 교회안에

 

서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난다고 봅니다.

 

 

 

사제가 자기들만 알아주어야 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사제

를 위해서 봉사

 

하는 양, 생색내기 다반사이고 신앙은 뒷전이고 교회안에서 파

벌을 만들고 사

 

조직화하여 교회를 무대로 자기들의 이득과 기득권만을 생각하

는 신자들이 많

 

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 납니다 삼각지 성당 신자들

이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교회안에서 사목회장이나

각 단체장을 많

 

이했다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박신부님께서도 삼각지본당의 주임신부로 계실 때 그 본당의 신

자들과 수도자

 

가 합세하여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 중의 대부분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간부를했

 

다는 사람들이 사제를 모함하고 교구에 고발하고 여러사람이 한

사제를

 

멱살을 잡고 심지어는 정신병자로 몰아 세웠다하니 참으로 비통

한 심정입니다.

 

 

 

삼각지 뿐 아니라 다른 본당에서도 신앙인들이라면 해서는 안되

는 짓을

 

사제에게 하고있습니다.사제는 예수님의 대리자로 사시고자

한 그 고결한

 

모습만 보고도 우리 신앙인들은 사제를 존경해야 합니다.

 

 

 

문제를 일으켰던 삼각지 성당 신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자신들

이 싫어하는

 

신부님이 가셨으니 성당에서 간부도하고 성체를 받아 모셔도 된

다고 생각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박신부님이나 지금오신 신부님이나 사람모습만 다를뿐 사제직

은 다 같습니다.

 

신앙인들이 사제를 괴롭히고 모함하면 하느님과 사제직에 도전

하는 것 입니다.

 

고백성사를 보았다고 해서 죄가 사해졌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사

제를 괴롭히는

 

장본인 들은 가슴을 찢는 통회가 있어야 하고 회개하는 마음으

로 반성해야하며

 

하느님과의 화해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한 사제를 죽이는 엄청난 결과

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모든 신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특히 신부님을 모함하고 괴롭힌 신자들은 회개하고 자숙하는 모

습을보여야하며

 

몇 사람때문에 열심히 봉사하고 겸손 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많

은 신자들의

 

고통도 생각하고 본당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도 져야합니다

 

 

 

- 천주교를 사랑하는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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