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병원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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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아 [ella-0] 쪽지 캡슐

2000-11-16 ㅣ No.1572

 오늘 백발이 성성하신 우리 할아버지가 세례를 받으셨다.

 처음에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퍼런 가운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올때는 손을 씻고 지정된 가운을 입어야 한다. ) 들어와서 ’면회 안되는 데요’  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었다. 그 때 우리 old 선생님께서 날 말리신다. ’할아버지 세례 받으신데 . 그래서 내가 오라고 했어. ’

 

 하긴 그래봤자 목사님 빼고 나면 식구 셋 뿐이다.

 나는 암말도 안하고 그냥 돌아서서 내 일을한다.

 

 중환자실은 면회가 안된다. 아니 아예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간 가족들 속은 걱정으로 다 타버릴 거다. 하루에 세 번 된다. 아닌 곳도 있겠지만 내가 다니는 병원은 그렇다. 그리고 들어올때는 손을 박박 씻고, 지정된 가운을 입어야 한다. 여럿은 안된다. 여럿이 온 경우 교대로 한명씩만 된다. 중환자실은 어수선한 곳이다. 또 생사가 엇갈리는 곳이다. 좋아져서 일반병실로 갈 수 있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몇번의 입퇴원을 반복하는 환자가 있고, 종내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환자도 있다.

 그러니 한꺼번에 네명이라. 이것은 정말 대단한 거다.

 

세례가 끝난후 가족들과 할아버지가 처음 나눈 말을 나는 들었다.

’머리 좀 감고싶어’

 

그때가 매우 바빴다면 나는 할아버지 머리감겨드리는 것은 엄두도 못냈을 거다.

또 남의 머리를 그것도 고개조차 힘있게 들지 못하는 사람의 머리를 감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도우신 건지. 그날은 그나마 한가로운 날이었고, 나는 할아버지 머리를 감겨드렸다. 감긴다고 해봐야, 보통 사람들이 짐에서처럼 물에 훌훌 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할아버지 내 세례 받으신 선물로 머리 감겨드릴게.’

 

머리밑에 매트를 깔고 면수건을 깔고, 물없이도 거품이 난다는 냄새좋은 수입 샴푸를 대뜸 머리에 붓고 소독장갑 낀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면 정말로 거품이 난다. 할아버지는 머리도 별로 없는데 자꾸만 벅벅 문질러달라고 주문하신다.

내가 한마디한다.

’할아버지 머리 다 빠지면 가족들한테 저 혼나요.’

괜찮다신다. 물을 조금 흘려서 마른 수건으로 박박 닦아 드렸더니 숱도 없는 할아버지 백발머리가 말릴 것도 없이 버석버석 서버렸다.

매우 만족하신 우리 할아버지 곧 잠이 드신다.

 

선물이 맘에 드신 것일까?

 

 

할아버진 말기 폐암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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