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교회음악

음악칼럼: 고국을 떠나온 이들의 절절한 노래,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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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26 ㅣ No.3105

[음악칼럼] 고국을 떠나온 이들의 절절한 노래,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Nabucco)> 중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은 세 차례에 걸쳐 유다 왕국을 침략해 귀족과 군인, 기술자 등 약 4만 5천 명의 유다인들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킨 일이 있으니, ‘바빌론 유배’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구약성경 열왕기 하권 24, 2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바빌론 임금의 이름은 네부카드네자르, 이탈리아어식으로 ‘나부코도노소르(Nabuccodonosor)’입니다. 줄여서 ‘나부코(Nabucco)’라고 불리죠. 이 나부코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곡가가 이탈리아의 영웅적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입니다.

 

우리가 아는 오페라의 반 이상이 베르디 작품일 정도로 베르디는 오페라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운명의 힘’, ‘오텔로’ 등 유명한 작품이 수두룩합니다. 그중 ‘나부코’는 합창곡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한 곡만으로도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1842년 초연된 이 오페라는 베르디에겐 일대 전환을 가져온 기념비적 작품이었습니다. 1838년부터 3년간 딸, 아들, 아내를 차례로 잃고 작품 활동마저 저조하여 실의에 빠진 베르디에게 회생의 길을 열어줬기 때문입니다. 베르디는 특히 나부코 대본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민족 히브리 포로들이 부르는 합창의 가사를 보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감을 얻어 이 합창곡부터 작곡했다고 하죠. 실의에 빠진 자신의 처지가 히브리 포로들의 처지에 감정이입 된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오페라는 초연 후 그저 한 오페라의 성공에만 그치지 않고,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 독립과 통일을 열망하던 이탈리아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붙여 히브리 포로들의 합창곡은 이탈리아 전 국민의 애국가, 애창곡이 됐습니다. 1901년 베르디 서거 한 달 뒤, 그의 유해가 그가 은퇴 음악가들을 위해 세운 ‘안식의 집(Casa di Riposo)’에 안치되던 날, 3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820여 명의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하죠. “가거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향기에 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요르단의 강둑과 시온의 탑에 인사하라. 오,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예언자의 금빛 하프여,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 우리 가슴 속 기억에 다시 불을 붙이고 지나간 시절을 얘기해다오! 예루살렘의 잔인한 운명처럼 쓰라린 비탄의 시를 노래 부르자. 고통을 견딜 힘을 주는 노래로. 주님이 너에게 용기를 주시리라!”

 

바빌론에 끌려가 노동으로 혹사당하던 히브리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성경의 시편 137편 ‘바빌론 강기슭’에 묘사된 바로 그대로입니다. 등 떠밀려 고국을 떠나야 했던 한 맺힌 ‘강제 이주민’의 모습이죠. 전쟁,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고향,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기원전 유다왕국이나 현재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웃에도 도처에 슬피 노래하는 오늘날의 ‘히브리 포로’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과연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덜어 줄 수 있을까요?

 

[2022년 9월 25일(다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서울주보 6면, 임주빈 모니카(KBS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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